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원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정도가 조금씩 덜해졌다. 아마도 길에서 으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많이 본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주로 잘 마주치는 편인데 나와 딱하니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빼꼼이 쳐다보기만 한다. 아마 사람에게서 별다른 상처를 받은 경험이 없는 고양이들인 듯 하다.
이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보고서도 피하질 않고 으슬렁거리면서 주차되어 있는 차 밑으로 걸어간다. 막둥이 때문인지 최근에는 그들의 움직임에도 조금씩 관심이 가는 편이다. 걸음걸이는 강아지와 비슷해 보인다. 조금 뒤,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아까 그 고양이 곁으로 가기 위해 차 밑으로 들어간다.
잠시 생각했다. 쟤들은 뭘 먹고 살기에 저렇게 통통할까...
몸을 굽혀 고개를 숙여 그들을 살펴보았다. 별 다른 움직임은 없어 보이고 그냥 왔다갔다만 할 뿐이다. 남몰래 연애라도 하나보다. 그들끼리의 만남이 흥미롭게 보였다.
사람의 보살핌 없이도 그들은 잘 살아간다.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에 맞는 그런 생활을 하며 고양이다운 한 생을 살아갈 것이다.
가끔 막둥이에게서 독특한 개들의 행동양상을 볼 때가 있다.
공이나 인형을 던지면 마치 적을 무찌르는 용감한 전사처럼 맹렬하게 달려가서 머리를 흔들며 싸우는데 그 모습이 사냥개 흡사하다.
혼자 물고 흔들고 난리를 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신이 씨름하던 대상을 물고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제 생각엔 자기가 적을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나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쭐해 보이는지 가관이다.
뿐만 아니다. 먹을 것을 주면 누가 뺏기라도 할 듯 쏜살같이 자기 집으로 달려간다. 나는 속으로 웃는다. 얘야, 줘도 안 먹네~
밤에 자려고 하면 막둥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이불을 박박 긁는 것이다. 저는 제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 눈엔 너무 어이없고 우습게만 보인다. 개를 키우는 아이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잘 자리를 마련하느라 하는 행동이란다.
처음 막둥이를 데려오며 나름대로 꼭 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이 있다.
개가 먹는 사료나 간식만 먹일 것. 그리고 잠은 꼭 개집에서 재울 것.
처음부터 먹는 것은 길을 잘 들여서 그런지 개치고는 사람 음식을 별로 탐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잠은 처음부터 길을 들이지 못했다. 남편이 막둥이는 아직 개 아기라서 그렇게 매몰차게 하면 안 된다며 침대 위로 올려놓는 것이다.
아무래도 찜찜한 맘에 나와 막둥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남편은 망설이지도 않고 막둥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침대 위에서 자고 남편은 바닥에 요를 깔고 막둥이와 함께 잤다.
그 때문일 것이다. 낮에 침대 위에 있으면 막둥이는 침대 옆에 와서 박박 긁는다. 저를 침대 위로 올려 달라는 것이다. 모질게 굴어야지. 결심하며 못 본 척 했다. 막둥이는 포기하고 힘없이 제 집으로 들어간다.
혼자 집안에서 웅크리고 자는 막둥이를 보니 괜스레 가엾게 보인다.
자고 있는 막둥이를 살포시 안고 다시 침대에 올려주었다.
그때부터 막둥이 잠자리는 침대로 바뀌었다.
자다 일어나면 막둥이가 옆에서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말 아기 모습이다. 개같지가 않다.
하루는 막둥이가 내 손을 살짝 물었다. 혼을 냈더니 제 딴엔 화가 나서 나를 향해 짖는다.
그 소리가 참 맑다.
그래도 길은 들여야지. 짖지 못하게 해야지.
그때 갑자기 나도 막둥이처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엎드린 자세로 막둥이 눈높이를 맞춰서 멍멍 짖었다.
막둥이는 혼비백산하며 귀를 펄럭이며 도망친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질겁하는 모습이다.
남편이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막둥이를 안아주며 다독인다.
-이 놈 너무 충격 먹었네. 벌벌 떨어.
내가 뭘 어떻게 했지? 그냥 엎드려서 막둥이를 향해 한번 짖었을 뿐인데...
막둥이는 어쩜 자기가 개인 줄을 모르나 보다.
날 보며 해괴망측한 것을 본 양 소스라치는 것을 보면...
그때부터인가 막둥인 나를 피할 때가 간혹 있다.
그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놈이 나를 피하면 난 악착같이 따라 가서 잡고 안아준다. 그러면 막둥인 가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몸부림친다.
그 눈빛이 몹시 두려워 보인다.
이젠 막둥이를 내게 보낼 때마다 남편이 하는 말이 있다.
-귀양살이 갈 시간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좀 심하게 한 경우가 있긴 하다.
다리미질 할 때마다 가까이 오고 스팀청소기 돌릴 때마다 따라 오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가둬둘 수는 없다.
할 수없이 이놈에게 예방주사를 놓기로 했다.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다리미판을 뜨겁게 한 뒤, 막둥이를 살짝 올려놓았다.
처음엔 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가만있더니 조금 뒤 펄쩍 뛰어 내린다.
스팀청소기에 뜨겁게 달궈진 걸레 위에도 막둥이를 올려놓았다. 다리미판에서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막둥인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저를 위한 것임을 저도 깨달아야 한다.
어쨌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관계는 처음과 반대가 되어 내가 개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놈은 남편만 좋아한다. 맹목적 충성이다. 남편 발소리만 들려도 복종의 자세로 그곳을 향해 앉아 있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남편이 샤워를 하면 욕실앞에서 남편이 나올 때까지 부동의 자세로 기다린다.
어쩌다 내가 잘 달래서 내 품에 안겨 있다가도 남편 목소리만 들으면 환장하며 달아난다.
그런 막둥이가 남편은 얼마나 이쁠까...
지금도 글을 쓰는 내내 막둥인 내 허벅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만약 일어나면 나대신 저가 자판을 두들기려 할 것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막둥이도 네티즌이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점점 개의 본성을 잃고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막둥이에게 더 좋은 일일까.
나는 왜 갑자기 길 위에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의 자유가 더 좋아 보이는 걸까.
그래서 때론 막둥이의 눈을 보며 측은한 맘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