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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7)


BY 선물 2006-06-07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손끝까지 저리다. 팔꿈치도 쑤시고...

어머님이 늘 그렇게 이곳저곳 아프다 하시는데 난 그저 반 형식적으로만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제 조금은 알겠다. 아픔이 정말 실감난다.

병원에 가서 손까지 저리다는 증상을 말하니 목 디스크라고 한다.

디스크. 그런 계통은 나완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교만했다.

다른 어떤 치료보다도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이 좋은 치료라고 한다.

그 핑계로 정말 틈만 나면 누웠다.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 시어머님이건만 난 혼자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내 몸 내가 챙기자 생각하고 스스로도 뻔뻔스럽다 생각될 만큼 내 몸을 챙겼다. 원래 잘 그러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청소기를 돌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칼질을 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양의도 한의도 모두 내게 무조건 쉴 것을 권했지만 그렇게 쉴 수 있는 팔자를 가진 사람이 그런 병에 걸릴까.

아무리 병 핑계대고 쉬려고 해도 최소한 움직여야 할 몫은 분명히 있다. 게다가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내겐 그 최소한의 몫이 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막둥이가 왔다.

막둥이는 내게 어느 정도의 일거리가 될까 하는 삭막한 생각을 하면서 심드렁해 하며 막둥이를 맞았다.

그런데 꼬물꼬물거리는 막둥이가 예쁘게 보이면서 막둥이 돌보는 일도 조금씩 덜 힘들게 생각되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릴 때면 막둥이는 흥분을 한다. 특히 스팀청소기를 돌리면 더 그렇다.

아마 소리를 무서워한다기보다 청소기에 끼인 흰 수건과 씨익하며 뿜어져 나오는 김에 대해 더 경계를 하는 것 같다.

때문에 청소를 할 때 막둥이를 안고 일을 했다. 왼손에는 강아지를 오른 손엔 청소기를!

역시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은 큰 무리가 되었다. 침을 맞아가며 물리치료를 해가며 일을 쉬어가며 조리를 하던 몸이었는데 강아지 한 마리로 인해 엉망이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막둥이는 구석을 좋아한다. 몸이 작아서 바닥에 납작하니 뻗히면 웬만한 곳은 다 기어 들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

분명히 막둥이가 옆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놈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방 침대는 바닥으로부터 틈이 오 센티미터가 채 안된다. 그곳에 막둥이가 들어가리란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다.

그래도 이놈이 있을 곳이 더 이상 없다는 판단을 했을 때 혹시나 하고 몸을 굽혀 컴컴한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침대 밑으로 막둥이의 것이 틀림없는 까만 동그라미 하나가 쏙 튀어나왔다 들어간다. 울 막둥이 예쁜 코였다. 순간 너무 놀라 막둥이를 애타게 불렀다. 이놈이 어찌해서 들어가긴 했는데 나올 방법이 없어 저리 애를 태우나 걱정하면서 내 아픈 어깨도 잊고 침대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이놈이 세상에 나오질 않고 다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는 침대를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혹시 이놈이 깔리면 어쩌나 걱정되어 쉽게 내려놓을 수도 없다. 혼자 삐질삐질 땀을 흘려가며 힘을 쓰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침대를 내려놓았다.

힘쓰기보다 꾀쓰기라고 내 머리 속에 만화처럼 전구 하나가 반짝 켜졌다.

막둥이가 쉬를 잘 가려서 눌 때 주는 과자가 있는데 그것으로 놈을 매수하기로 작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막둥이는 그 미끼에 혹하여 침대를 쏙 빠져나온다.

괜히 나만 힘쓰다가 골병만 깊어졌다. 그날은 아침엔 목 디스크 때문에 침을 맞고 오후엔 침대를 드느라 무리를 한 허리로 인해 또 침을 맞았다. 내가 침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런 사건은 다시 한번 일어났다.

이제 침대라면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장롱 밑이다. 청소를 할 때였다. 한참 청소기를 돌리는데 잠시 하얀 걸레 같은 것이 장롱 속에서 살짝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난 꿈에도 막둥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뭔가 허연 것을 본 것 같긴 한데 그게 뭐였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허연 물체가 장롤 아래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역시 막둥이의 까맣고 예쁜 코도 보였다.

내가 아무리 놀랐어도 이번엔 침대처럼 들어줄 수가 없다. 처음 막둥이가 그랬을 때 침대 아닌 장롱이었다면 아마 난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막둥이는 그런 시련에 미리 대비해서 나를 시험하고 연습시켰던 것이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한번의 경험을 달디 단 교훈 삼아 난 훨씬 여유롭게 막둥이를 유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과자를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요놈은 저가 잘하는 줄 알고 또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미끼는 과자였다. 막둥이는 재빠르게 튀어나와 과자를 물고 도망가려 한다.

그러나 나도 그에 못잖게 재빠른 동작으로 과자를 빼앗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유인했다. 역시 이놈 아직 나보다 한 수 아래다. 또 다시 튀어나온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물론 과자는 주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 그랬을 것이다. 줬다 빼앗는 법이 어디 있냐고, 정말 치사빤쓰라고...

난 막둥이를 보며 화를 내야 하는데 그만 웃음이 튀어나왔다. 장롱 속 그 고요한 곳을 휘젓다 나온 막둥이의 턱과 몸엔 먼지 수염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