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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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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4)


BY 선물 2006-05-30

부산형님 댁에는 개가 두 마리 있다. 그들의 이름은 철수와 영희다.

종자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철수는 우직하게 생겼고 영희는 얍상하게 생겼다.

막둥이가 그들과 얼마간 생활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조카가 데리고 간 막둥이는 원래 자신이 지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 곁에서 안정을 취하게 해주려 했지만 그곳 주인이 다시 데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카는 출근시간이 늦어 다시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가 무리였고 결국 그날 부산으로 내려가시는 형님에게 맡겨져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막둥이는 개들이 있는 집에서 잘 적응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좀 더 튼튼해져 올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어머님과 내가 꾸민 엄청난 계략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테지만...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애완견을 기르는데 사람도 없어서 못 먹는 고기를 강아지에게 먹인다는 이야기였다.

속으로 별일도 다 있다며 못마땅해 했다. 내 생각은 절대적으로 인간이 우선이다.

물론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강아지가 아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때, 혹시나 하며 고기를 넣은 음식을 먹였더니 잘 받아먹더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강아지는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지더니 다음부터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마음 약한 주인은 강아지를 굶길 수도 없고 해서 사람들은 안 먹어도 강아지는 늘 고기를 해서 먹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빈정거리려 하고 있다. 그런 강아지 내쫓으면 그만이지.

그러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장담해선 안 되는 법.

내가 어떤 상황에 직접 놓여보지 않고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부산에 종종 내려가는데 그 때 그 비슷한 경우를 다반사로 보게 되었다.

소갈비를 먹는데 나는 며느리입장이라 쉽게 고기에 젓가락을 가져가지 못 한다.

그런데 조카아이가 갈비를 몇 점 따로 그릇에 담더니 그것을 철수와 영희에게 주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며 물었다. 그야말로 엄청 바보 같은 질문을...

-넌 외숙모가 좋니? 개가 좋니?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내 입을 내가 꼬집고 싶었다.

조카아이의 눈은 동그랗게 커진다. 그 눈에서 난 답을 읽었다.

철수와 영희는 내 식군데... 혹시 우리 외숙모 바보 아냐?

아, 나의 유치찬란함의  극치여. 개들에게 질투를 하다니...


그런 이유로 막둥이가 걱정되었다.

난 솔직히 강아지가 크게 자라는 것이 싫다. 그리고 나름대로 배운 바에 의하면 개는 사료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음식을 먹으면 냄새도 나고 피부병도 생기고 또 돼지 같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둥이는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결국 내가 키우게 될 거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길이 들어야 한다. 부산의 철수는 얼굴은 개인데 몸은 정말 돼지다. 시커먼 몸살까지 딱 돼지 모습이다. 순하고 착해서 귀엽긴 하지만 모습은 정말 형편없어졌다.

형님께 그 부분에 대한 부탁을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다짐을 받았다.

우리는 2, 3주 후에 막둥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막둥이는 그 낯선 곳에서(하긴, 우리 집도 낯선 곳일 테지만...) 너무도 잘 지내고 있었다.

난 그래도 우리 집 막둥이란 이유로 철수와 영희가 혹시 막둥이에게 해꼬지라도 할까 걱정했는데 그 곳에선 오히려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철수와 영희가 막둥이를 오히려 두려워하며 슬슬 피하고 스트레스를 몹시 심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찌 그런 모함을... 난 믿지 않았다. 정말 한주먹 밖에 안 되는 강아지이다.

하지만, 얼마 후 그 믿지 못할 일을 내 눈으로 낱낱이 확인하게 된다.

딸아이 학교에서 체육제가 있어 담양에 내려갔다가 곧장 부산으로 향했다.

막둥이는 보름 정도 지나서인지 조금은 더 큰 것 같았다. 이놈이 우리를 알아보는지 그래도 반갑다고 달라붙는다. 그런데 철수와 영희의 반응이 이상하다. 우리가 가면 좋다고 길길이 날뛰던 놈들인데 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지켜보니 막둥이는 영희와 철수에게 다가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철수는 그 조그만 막둥이를 몹시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막둥이가 철수에게 밟히기라도 하면 큰일을 당할 것 같은 판국인데...

아, 이래서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구나.

막둥인 한번도 자기의 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얼마나 작은지 결코 모를 것이다. 그래서 어쩜 철수보다 제가 더 큰 줄로 알고 그렇게 덤벼드는 것이리라.

영희는 가끔 자기에게 덤벼드는 막둥이를 물기도 했다는데 그 때문에 완전히 모든 사람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자유로운 활동을 금지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 곳에서 꼼짝 않고 그저 원망의 빛이 서린 눈길로 이상할 만큼  조그만 강아지의 까부는 형국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형님은 막둥이 외출용 집을 사서 주셨다. 떠나는 막둥이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 맘은 나도 잘 알지.

막둥이는 그 속에 갇혀 우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난 앞으로 이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이 들고 또 얼마나 행복할지를 모른 채 강아지 집만 흔들거리며 차에 올랐다.

후일 목 디스크로 팔과 어깨가 무진장 아픈 나에게 막둥이는 더 엄청난 시련을 선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