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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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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3)


BY 선물 2006-05-28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상가 록을 뒤져 열군데도 넘는 가축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단 한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그 시각에 강아지를 의사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병원에 갔더니 온통 강아지와 고양이 천지였다. 그래도 우리 막둥이처럼 작고 귀여운 동물은 없었다.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중 파보장염 검사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남편과 내가 인터넷에서 주의 깊게 보았던 것이 이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이 올린 글이 있었는데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툭하면 파보장염 검사를 권한다며 툴툴거리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며 남편과 나는 우리도 주의하자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우린  강아지에 대해 무지했으므로 그저 의사의 지시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체기가 좀 있는 것 같고 특별히 다른 이상은 없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막둥이가 엄살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말에 잠시 웃음이 났고 또 마음이 놓였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더니 그렇게 진료하고 나오는데 응급료로 계산되어 7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다. 잠시 아찔해졌다.

어른 한주먹 정도 되는 크기의 막둥이를 한 손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남편과 나는 이마트에 가서 막둥이 물건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도 마치 신생아용품을 고르는 것처럼 설레고 재미난 느낌을 갖게 했다. 샴푸, 린스, 개 껌, 빗, 밥통, 구강청정제, 손톱깎이, 사료, 배변용 깔개, 탈취제 등등 개 한 마리 키우는데 소소한 것들이 제법 많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렇게 막둥이 물건을 구입해서 돌아왔는데 저녁이 되면서 막둥이는 또 다시 시름시름 앓는다. 사료를 빻아서 먹이기도 하고  설탕물을 주사기에 넣어 먹이기도 하며 간호에 정성을 기울였는데 이놈이 영 시원치가 않다. 늦은 밤, 막둥이는 또 다시 토하기 시작했고 마치 발작하듯이 몸을 뒤척였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집에 범띠가 있으면 개가 잘 안된다던데 아버님이 범띠라서 막둥이도 키우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다른 가축은 다 잘 길렀는데 개는 좋은 끝을 보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이러다 가여운 생명 하나 놓치는 게 아닐까 몹시 걱정되었다.

우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막둥이를 다시 자기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서 한달 정도 더 자란 뒤에 데려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편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막둥이를 얼마간 데려가야겠다고 말했다. 조카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막둥이를 데리러 출발했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을 어머님이 하신다.

내가 막둥이를 전부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그냥 이번 기회에 막둥이를 아주 돌려보내자는 말씀이셨다. 남편에게는 그냥 막둥이가 잘못 되어 못 온다고 속이자는 말씀이셨다. 조카에게 확실히 말해 놓으면 그리 할 수 있으니 결정을 하라는 것인데 그 순간 내겐 혼돈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머리 속에서 잡다한 계산들이 오고 갔다.

며칠 사이에 든 정으로 그냥 키우자고 하면 내가 막둥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할 것이고 정말 그럴 자신이 없으면 지금 서운함을 무릅쓰고 막둥이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며칠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쏟은 마음이 어느새 정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해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게는 아무래도 막둥이가 큰 부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조카가 왔다.

어머님이 간곡하게 부탁하신다.

-외숙모 몸도 약한데 막둥이 키우는 일까지 하면 큰일 나겠더라, 네가 그냥 원래 주인에게 데려다 주고 삼촌한테는 몸이 너무 약해서 다른 곳에서는 못 키운다고 말하면 되지 않겠니?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에미야, 네 생각도 그렇지? 빨리 말해라. 그렇다고...

-그래, 정말 내가 많이 힘들어서 키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잠시 조카의 눈에 서운함과 원망 같은 것이 스쳐 갔다.

-알았어요. 자, 막둥아. 가자.

조카는 자기 잠바 앞주머니에 막둥이를 넣더니 출근 시간 늦었다면서 급히 집을 나섰다.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잠시 내 곁에 머물렀다가 그렇게 떠났다.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하더니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 모습을 어머님께 보여 드릴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새삼 눈물을 보인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속으로만 소망했다.

-막둥아, 어딜 가서라도 잘 살아라. 부디 건강하게...

하지만, 얼핏 어머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어린 것을 나는 보고 말았다.


그것이 우리 인연의 끝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