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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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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1)


BY 선물 2006-05-28

어릴 때 단독주택에 살았을 적에 잠시 개를 키운 적이 있다.

이름이 발바리였고 잡종 똥개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마당에 있는 개집에서 우리들이 먹고 남긴 찌꺼기인 개밥을 먹고 살던 발바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어쩌면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발바리는 우리 집에서 지낸 마지막 날 처음으로 우유를 먹었다.


이후로 개를 키운 일은 없다.

개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나는 애완동물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한 편이다.

그래도 개 냄새나 분비물은 질색인 편이다.

가끔 친지들이 우리 집에 올 때 강아지를 데리고 올 때가 있다. 

사실 드러내놓고 표는 못 내지만 속으로는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들이 오줌이나 똥을 싸면 짜증이 치민다.

그것을 개 주인이 닦고 치워도 자꾸 찜찜한 맘이 된다.


남편과 아이들은 강아지를 무지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 쫄랑거리며 걸어가는 강아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강아지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눈길이 가긴 한다.

그런데 그렇게 조금이라도 강아지에 대한 호의를 보이면 남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조른다.

강아지 한 마리 구해서 키우자고 절절히 호소한다.

스트레스 잘 받고 툭하면 우울해지는 남편을 보면 사실 조금 맘이 그렇긴 하다.

강아지만 보면 금세 아이처럼 얼굴이 환해지는 사람이라 그의 정신건강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난, 단호하다.

애완동물은 몸도 맘도 편하고 한가로운 사람이 기르는 것이다.

시부모님 모시고 살며 여섯 식구 건사하는 내겐 너무 큰 짐이 될 것이다.

집안 살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살림에 보태느라 쉬지도 못하면서 다른 일도 하고 있는데 거기에 강아지까지 기르라는 것은 정말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뿐인가, 강아지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파마 하나 하는데도 잘하는 집을 찾지 않고 값싼 집을 찾는 형편에 무슨 강아지 타령인가,

나는 툴툴거리면서 괜스레 울컥 서러워진다.

게다가 아들아이 아토피로 고생하는데 애완견 기르면 더 심해질 수도 있는데 더 이상 강아지 운운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딱 잘라 거절을 했다.


이 정도면 내 생에 강아지 기를 일은 없으리라 안심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큰 시누님 아들인 조카가 외삼촌이 부탁한 강아지를 구했다며 갖다 주겠다고 했다.

아주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정말로 그런 일이 내게 현실로 나타나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날, 꿈을 꾸었다.

커다란 개 두 마리를 그 조카가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경기를 일으켰다.

진땀을 흘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꿈이 너무도 실감이 나서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약 강아지 데리고 오면 난 못 살 거라고 징징거렸다. 그건 절대 엄살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워낙 심했던 내 반대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남편이 갑자기 버럭 화를 낸다.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하는데 그거 좀 못 참아 주냐면서 진짜로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아, 진짜 이렇게 강아지를 키우게 되는구나.

정말 정말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해야 하는구나.

신경질이 나고 만사가 싫어졌다.

동생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강아지를 구하라고 아들에게 시킨 큰 형님이 정말 야속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난, 절대 똥도 안 치울 것이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시어머님도 나와 같은 맘이라서 따님과도 언성을 높이셨다.

며칠 뒤에 강아지가 온다는 말을 들었던 날, 어머님은 포기 상태셨고 나는 더 짜증을 내며 강아지를 내 손으로 만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우리 집에 오는 강아지는 무지 불행해질 거라고 악담을 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안할 거라고 하자 처음에 강아지 싫다는 데 뜻을 같이 했던 어머님이 슬슬 불안해하신다.

이왕 강아지가 온다는 데야 어쩌냐, 그래도 에미 네가 해야지 누가 하냐, 하시며 불안해 하셨다.

전 절대 못해요. 어머님. 전 비위도 약하고 개털도 싫어요. 다 에비가 할 거예요. 어머님과 전 그냥 아무 신경도 쓰지 말아요. 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몹시도 걱정스런 모습이시다.


드디어 강아지가 왔다.

2개월 된 말티즈인데 정말 주먹 만해 보인다.

그러나 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불쌍한 놈... 하며 난 아무런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며 찬바람이 나도록 강아지를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