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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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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 2005-10-16

모처럼 하늘을 보았다. 언제나 머리 위에 이고 있는 하늘이건만 마음을 담아 바라본 적은 드물었다. 가을인 만큼 시리게 푸른 하늘을 기대했다. 바닷물 머금은 듯 선명한 쪽빛 하늘을…….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하늘은 칙칙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실망은 잠시, 하늘은 뜻밖의 귀한 그림을 선물해 주었다. 한 무리의 철새들이 창공을 질서정연하게 날아가는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준 것이다. 그들의 힘찬 날갯짓을 보노라니 내 맘에도 어느새 간질간질 날개가 돋는 느낌이었다.

철새들은 떼를 지어 어디론가 힘차게 날아가고 있다. 그들의 여행거리는 대개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가 된다고 하는데 그 작은 날개로 멀고 먼 거리를 날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생존을 향한 길고 긴 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서 새삼 감동을 받는다.
새들은 기역자 모양으로 열을 맞춰 날아간다. 여행경험이 제일 많은 새가 선두에 서서 무리를 이끌고 다른 새들은 줄지어 따라간다. 줄을 지어 나는 것은 뒤에 있는 새들이 앞의 새들로부터 위로 뜨는 힘을 전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먼 거리를 날아야 하는 철새들에게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공기의 저항을 줄여서 힘을 덜 들이고 오래 날 수 있는 그들의 활공 법은 참 지혜로운 것이다. 그러나 선두를 날던 새는 서서히 지치게 된다. 그러면 다른 새가 그 역할을 맡게 되고 지친 새는 가운데 자리로 배정받아 몸을 추스를 기회를 갖는다.

그럼에도 맨 앞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면 왠지 비장감이 느껴진다. 가녀린 날개 위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산이 되어 그를 누르는 듯 보인다. 갑자기 울컥 슬퍼졌다. 새의 날개 위로 소복이 쌓인 삶의 고단함이 서러워 눈물이 목으로 차오른다.

남편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꼬박 밤새우는 날이 늘어만 간다.
아내의 잠을 깨울 새라 조심조심 방문을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느새 익숙한 그림이 되었다. 뒤척이는 남편 곁에서도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하고 있다.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이는 무게의 차이 때문인지 나는 남편의 불면에 함께 동참하지 못한다.

삼년 전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업이란 것이 절대 만만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정말 성심을 다해 노력한다면 작으나마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희망을 가졌다.
남편은 열심히 일했고 나는 열심히 그를 도왔다. 그러나 남편은 원리 원칙에 어긋난 것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라 사업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익을 위해 대충 넘어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남편은 철저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틀린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그런 남편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리석어 보였다.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타협도 할 줄 아는 융통성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쪽을 택했다.
한 때 남편의 그런 성격이 매력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 내 삶이 곤궁해지고 초라해지자 남편의 소신이란 것도 한낱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남편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아내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느낌은 그를 참으로 외롭고 고달프게 했으리라.

결국 우리는 그동안 해 오던 일을 접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사무실을 정리하던 날 남편이 얼마나 허허로웠을지 짐작되었지만 그는 애써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음 뒤에 가려진 눈물을 읽는 사람의 마음은 몇 곱절 더 아프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듯 했다.

남편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담배를 피운다. 흡연할 때 그의 표정을 보면 담배연기를 통해 걱정을 날려 보내는 듯 하다.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도 연기와 함께 조금씩 흩어져 그의 고단함이 덜어지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그는 몇 차례 금연을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고민거리가 더 많아지고 짊어져야 할 짐이 더 무거워진 시점에서 금연을 하기란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가족들의 엄청난 만류 때문에 한 개비의 담배조차 마음 편히 태울 수가 없다. 어느새 그의 흡연자세는 아주 옹색해졌다. 그것 때문에 나는 더 속이 상하고 서러워진다. 남편이란 자리는 언제나 강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를 의지하는 내 마음은 그의 약한 모습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건강이란 명목으로 그를 초라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흡연하라고 권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오늘도 남편은 선두의 새가 되어 날고 있다.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쉼 없는 날갯짓을 한다. 그의 날개는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러나 오로지 그만 믿고 의지하는 가족 때문에 힘든 내색조차 할 수가 없다.
새는 앞서 가던 새가 지치면 다른 새가 대신해서 선두를 맡아 지친 새로 하여금 쉴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아내라는 이름의 옆 지기로서는 여간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아니다.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곁에 있어주는 것 밖에 없는데 그조차도 언제나 따뜻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스물 네 시간도 더 되는 시간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낸 남편이 겨우 잠이 들었다. 드르렁거리며 코 고는 소리가 참 고맙게 들린다.
그의 얼굴을 마음으로 훑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사람의 반듯한 이마에 깊은 주름이 골을 이룬 것은…….
슬픔인지 사랑인지 모를 비릿한 아픔에 잠시 울렁거린다.
남편의 뺨 위로 내 뺨을 갖다대었다. 그는 움찔거리며 돌아눕는다. 아주 힘들게 이룬 잠이 깰까봐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살짝 일어나 방을 나왔다.

멀리서 한 마리의 새가 날고 있다. 혼자 하는 비행이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남편은 자유롭지도 못하면서 외롭기까지 하다. 그 외로움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비록 그를 대신해서 선두를 날 순 없다 하더라도 그의 곁에서 함께 날 수는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의 맘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가 택한 길은 언제나 바른 길임을 믿기에 당장은 힘들어도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당신은 여전히 매력 있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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