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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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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


BY 선물 2005-09-05

좋은 인연으로 만난 이웃들이 있다.

둘째 아이 친구 엄마들이다.

공적인 일로 학교 모임에 가면 늘 십여 명 남짓한 엄마들이 있었는데 그 중 편안한 느낌의 두 엄마가 눈에 띄었더랬다.

그런데 그들도 내게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나중에 이사 온 내게 그녀들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고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다.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스침에도 놀러오라는 말을 꼭 건네주던 그들이 난 고마웠다.

그러던 중, 남편이 새로이 시작하는 일에 마침 그녀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일로서도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얼마 전, 어머님이 따님 댁으로 가시고 안 계셨던 적이 있었다.

그녀 중 한 명이 전화를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 집에서 갖는 모임을 자신의 집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아버님과 남편이 집에 있는 터라 우리 집에서 그녀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했는데 차라리 잘된 것 같아 흔쾌히 응했다.

남편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사무실을 정리하고 얼마 전부터 집에 있게 되었다.

경제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생활은 여러모로 좀 더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사무실 정리를 하느라 지친 남편은 그도 아랑곳 않고 아이들과의 휴가를 무리하게 감행하더니 결국 몸 상태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초대를 받아 이웃의 집으로 가던 날 아침에는 안타깝게도 아버님과 남편 모두 몸 상태가 안 좋은 형편이었다.


몹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일찍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늘 하던 대로 일단 사무적인 일을 끝마친 뒤, 우리는 따끈한 차와 부드러운 빵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 나는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을 중간 중간 내비치며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음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야기는 자꾸 길어졌고 칼로 무 베듯 자리를 박차기 힘든 나는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앉아있기가 불편해졌을 즈음 양해를 구하고 과감히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를 초대한 엄마는 난감한 표정이 되어 잠시만 더 있다 가라며 나를 억지로 붙잡았다.

그녀는 후닥닥거리며 가스 불을 켜고 프라이팬을 꺼낸 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가며 뭔가 요리를 시작했다.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언제나 외출을 하면 한 쪽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다. 빨리 집으로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고 일부러 점심 준비를 하고 우리를 초대한 그녀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가기엔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렇게까지 남편과 시부모님께 얽매여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 자신 초라해지기도 하고 또 괜스레 우리 가족들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 불안한 맘인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내 심장은 콩알로 이루어져있는지 그렇게 앉고 나니 온몸이 화끈거리며 좌불안석이 된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들로부터 좀 멀찍이 자리를 옮겨서...

점심준비를 다해놓고 날 불렀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냥 가기 곤란하다고 말했더니 남편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음성으로 그냥 알았다고만 답한다.

입맛이 없는지 통 먹지를 못해 이틀을 거의 굶다시피 한 사람 앞에서 밥 먹고 가겠다는 말을 하기가 정말 미안하긴 했다.


그녀가 준비해 준 밥은 오징어 덮밥에 미역국이었다.

그녀는 요리를 참 잘하는 사람이다. 예쁜 그릇에 고슬고슬한 밥을 얹고 발갛게 먹음직스런 오징어볶음을 얹어주었다.

황태와 조개를 넣어 끓인 미역국은 담백하고 맛있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은 맛을 몰랐던 거다. 마음이 불편하니 아무런 맛도 느껴지질 않았다.

내가 서두르는 바람에 오전 11시에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도 그녀는 오히려 미안해한다.

남편 병원에 가는 것은 오후 진료를 가라면서 밥이나 많이 먹고 가라고 한다.

어찌어찌 먹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엄마들 앞에서 참 민망했다. 조금만 더 참지.

나는 아픈 남편 생각보다 내 체면이 더 신경 쓰였다.


차를 가지고 바로 앞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녀들이 아직 식사를 덜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리를 뜨는 실례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무슨 열병에라도 걸린 듯 몸이 뜨거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의 퀭한 눈을 보자 내가 오히려 한심스러워졌다.

그래도 만약 남편이 내게 짜증을 냈다면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맘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기운이 하나도 없이 12시가 다 되어가서 오전진료를 못 받을까봐 서둘렀다고만 말했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서 간신히 진료접수를 하고 남편은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특별한 말  없이 그냥 처방전만 발행해주고 계속 죽을 먹으라고 지시를 했다.

집으로 와서 죽을 끓여서 아버님과 남편에게 드리고 나니 그제야 제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내게 점심을 차려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내가 가고난 뒤에도 자기는 밥을 한 공기 더 먹었으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고 그냥 나에게 밥 한 끼 직접 해서 먹이고 싶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나를 위해 직접 따스한 밥을 해서 불러주었던 그녀가 너무 고마워 뭔가 뜨끈뜨끈한 것이 내 몸을 찌르르 휘감는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차려내야 하는 사람이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외며느리로서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입장에서는 내가 대접할 위치가 아닌 대접 받을 위치에 앉을 기회란 더더욱 없는 것이다.

며느리는 며느리의 고단함을 안다.

때문에 친정에 가서도 그냥 앉아  밥 먹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 친정에 갈 기회조차 나로선 너무도 드문 형편이지만...


밥이란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훨씬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식구라는 것도 그러하다.

한 집에서 살면서 함께 밥을 먹는 관계를 가진 사람이 바로 식구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식구이고 가족이다.

밥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은 바로 생명을 함께 하는 인연이다.


내가 남편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인내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이 먹지 못하고 힘없이 있는 모습을 보며 느낀 미안함 때문이었고 이웃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함을 가졌던 것도 나를 위해 먹을 것을 대접해준 인정 때문이었다.

가끔 요리를 잘하는 여자를 보면 존경심과 함께 생겨나는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묘한 적개심이다.

장보기에서부터 다듬기 요리하기 등의 과정을 거쳐 설거지하고 정리하기까지 우리는 먹기 위해 정말 시간과 돈과 노동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그런 능력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면 알게 모르게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가끔씩은 맛있는 것, 특별한 것을 먹는 기쁨을 선물해주고 싶기도 하다.

내 능력이 모자란다면 어떻게든 배워서라도 정성껏 먹는 행복을 선사하고 싶다.

먹는 기쁨은 사는 기쁨이기도 하기에 기꺼이 수고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다만 그것이 의무가 아닌,  정말 의욕적으로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주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가 삶에 덜 지치고 마음이 생기 있도록 배려를 받고 싶다.


나를 위해 밥을 지어준 그녀는 어쩜 그동안 나를 연민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한결같이 내 입장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준다.

말수도 적고 누가 보아도 쌀쌀해 보이는 외모이지만 조금만 그녀를 가까이 대해보면 얼마나 매력 있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가족이 아닌데도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위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마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의 넉넉함이 얼마나 향기로운지를...

복되게도 나는 가끔 그렇게 향기로운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젠 내게도 그런 넉넉함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항상 힘들다고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내게 그 길은 아직 멀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