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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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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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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


BY 선물 2005-03-25

어제부터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삼일 전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수난받으심을 기억하며 사순시기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미사 때는 세족례 예식을 치루었지요.

‘발을 씻어주는 예식(세족례)'은 예수께서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최후만찬에서 스승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시며 당신이 하신 행위에 대해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지요.“스승이며 주(主)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일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고 당신을 모두 내어주신 주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해 보는 이 예식을 어제 행하는데 성당 뒤쪽에 앉아 미사를 보던 저는 어떤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세족례에 직접 참석하는 분들이 제대 위에 앉아 계시고 신부님께서는 손수 그들의 맨발을 씻어주셨지요. 거의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노인 분들이신데 어떤 권세와 교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아주 평범하고 수수한 분들이셨답니다.
한 할머니의 발을 씻겨 드리는 모습을 보고있는데 멀리서도 그 분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신부님의 손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는 것이었어요.
그저 형식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 할머니의 지극한 겸손을 발견하는 순간 제 마음마저 겸허해졌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신부님이 손수 비천한 발을 씻겨주신다고 생각하시는 기색이 역력하여 제 몸마저 할머니 발이 된 양 그렇게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나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무시한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생에서 못 입고 못나고 못 갖추었다 하여 혹 누군가를 업신여기는 눈빛을 보낸 적은 없었던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황송해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도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분명 겸양의 미덕 때문이었을 거예요.
정말 작고 작아져야 할 사람은 저였는데 그래서 돌아보면 제가 섬겨야 할 사람들을 오히려 무시했을 수도 있겠다 하는 반성을 해 보았습니다.

성당 맨 앞쪽에는 또 청각장애인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수화도우미님들의 수화가 바삐 이루어지고 있었지요.
그들이 움직이는 손은 정말 맑게 보였습니다.
성가도 손으로 부르고 기도도 손으로 드리는 그들의 손은 빛이었고 소리였고 노래였던 것입니다.

언제라도 그들의 손을 지켜보세요. 환한 빛이 그 손을 감싸고 있는 듯 하답니다.
정말로 아름답고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움직임이랍니다.
아,,,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닌  소외 받은 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나를 낮추어 남을 섬기는 손, 소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귀가 되고 입이 되어주는 손.
지금 이렇게 반성하고 눈물 떨구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되지도 않는 교만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겠지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눈물이 기억나면 좋겠습니다.
제가 더 낮은 사람임을 깨닫도록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