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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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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


BY 선물 2004-05-31

길을 가다 물을 만나면 절로 가슴이 설렌다. 잔잔한 호수라도 좋고 파도 넘실대는 바다라도 좋다.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청정한 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난히 물이 내 눈길을 붙들고 내 마음을 끌어안는 이유는 그 자신의 몸을 커다란 흐름에 온전히 맡기고 거스르지 않는, 절대적 받아들임에 있는 듯 하다.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는 것. 그것은 내게 참으로 감미로운 평화로 다가온다.

물론 그 때문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나는 어릴 적부터 흐르는 물을 좋아했고 또 그만큼 물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었다. 두려움이란 다름 아닌 물 속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 것 같은 충동감 때문이다.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어느 틈에 깊은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 것 같은 묘한 느낌은 사실 늘 두려웠다. 그 때문에 때때로 한강 투신 자살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면 어쩜 그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이 그 사람을 끌어 들였으리란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다른 귀신들보다 물귀신의 존재는 늘 현실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물에 대한 그런 느낌 때문인지 차를 타고 가다 이름 모를 호수나 잔잔한 강을 눈에 담게 되면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나도 너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싶어.
너처럼 몸과 마음 다 내어 맡기고 그저 출렁이며 떠다니고 싶어.
그 부러움이 어찌나 강하던지 가슴속에 고여있는 간절함이 찝찌레한 눈물로 꾸역꾸역 떠밀려 나올 때도 있다.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는 것이 그렇게 평화로와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나를 휘감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얻고 싶은 것. 생각을 비우고 아니, 비우겠다는 생각조차 없는 무의 상태로 빠져들고 싶은 유혹. 그 마음이 물과 하나가 되어 끝없이 흘러가고파 몸부림치려하니 어찌 가슴이 쿵 내려앉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늘 그것을 추구한다 하면서도 내 인생의 강에서는 과연 그 도도한 흐름에 맘과 몸을 온전히 맡기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면 심한 모순을 들여다보게 된다. 받아들인 것보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았던 것도 같다.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어깨 위에 내려앉은 짐을 억울한 마음으로 느낄 때가 더 많았던 것이다. 주어진 아픔이 있어도 거부하지 말고 차라리 감사하고 웬만한 슬픔쯤은 삶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라 여기며 순명해야 하는 것을.... 때때로 가파르게 흐르면 이리저리 출렁이면서도 또 그렇게 흘러 흘러 길을 가는 물을 배워야 하는 것을...
그러면서도 물과 하나 되고저 염원하고 있었으니 그 엇나감에 생채기가 생길 밖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면 항상 묻게 되는 말이 있다.
별 일 없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된다는 것이 고통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가끔 별 일을 겪게 되면 그 날이 그 날 같은 세월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된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아파야 할 테지.
그러니 내가 아픔이라 느끼는 것, 고통이라 여기는 것. 내 인생의 강물 위에 얹어 놓고 나와 함께 흘러가야 함을 받아들이라고 나를 채근한다.
거부하고 싶어 펄펄 끓는 내게 보듬어 안으라고 열을 식히라고 담금질한다.
반짝거리는 물빛에 눈부셔하며 시린 눈으로 그 찬연한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도 많았는데 내 생의 강물도 그런 물빛을 가질 수 있으리라 소망해 본다.

오늘도 가슴에 새긴다.
짐을 내려놓으려 애쓰지 않으리라.
묵묵히 짊어지리라.
받아들이고 순명하리라.

내 몸담은 강이 질곡의 강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