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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BY 선물 2004-04-09

어스름 저녁이 내릴 즈음이면 가끔씩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딱히 분명한 이유도 없으면서 한없이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당혹스럽다. 그리고 스스로가 안쓰럽다.
몸 속의 모든 기운들이 손끝으로, 발끝으로 연기처럼 흔적 없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어진다. 맥없이 대롱대롱 몸 끝에 매달려 있는 내 그림자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그럴 때는 나를 철저히 혼자로 만들려 한다. 마치 고독과의 게임이라도 한판 벌리려는 양, 그 감정을 즐기려 한다.

불빛에 반했던 그 때도 해가 제법 짧아지고 있던 가을 초입의 어느 어둑한 저녁이었다.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친 늦은 시각 지친 몸으로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피곤이 느껴진 까닭에 나는 잠시 쉴 요량으로 걸음을 멈추고 무의미한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의 불빛들이 꼬리를 물며 날아와선 내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해질 녘, 으슬으슬 한기가 소름을 돋게 하며 잔뜩 움츠려 든 몸에 그 불빛은 모닥불처럼 파닥거리는 열기를 건네주었다.
 
불빛으로 인해 가슴까지 훈훈해져오는 것이 무작정 고마워졌다. 생각을 담지 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던 불빛이 느닷없이 내게 온기로 다가오게 된 그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불빛이 생명으로 화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불빛이 내게 꽂힌 순간 어디선가 보글보글 맛있는 찌개냄새가 느껴졌던 것도 같다. 까르륵 웃는 아이들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한없이 자상한 엄마의 따스한 미소도 언뜻 보았던 느낌이다. 그 시각, 마음도 함께 위축되고 외로웠을 그 때, 불빛 그것은 참으로 살가운 인사가 되어 날아온 것이다. 그 때 느낀 따스함은 기억의 강 저 편 어딘가에 위치한 태초의 따스함, 바로 엄마의 자궁 속 한없는 평화로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런 생각은 어쩜 내 어린 시절 솜털 같은 폭신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처음으로 내 집 장만을 하셨을 때 보여준 가슴 뿌듯한 행복 빛 환한 미소와 그 집에서 귀여운 동물 새끼 마냥 걱정 모르고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그리운 풍경으로 내 가슴속에 따뜻하게 자리잡은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쩜 그때 우린 가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가난을 느끼지 못했고 늘 듬직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그 안에서 평화롭게 뒹굴 수 있었다. 부모님의 존재가 나에게는 바로 불빛이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꼭 그만큼의 순수한 행복을 잃어 가는 것 같다. 고민해야할 것은 점점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것도 무한정 늘어나면서 자꾸만 덜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젠 정말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을 접할 때가 많아진다. 내 작은 몸뚱어리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짐은 점점 무게를 더해가고 얄팍한 내 다리는 휘청거린다. 그런데도 힘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오히려 많아지고 그들의 요구는 참으로 절박하기만 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내가 짊어진 짐은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고 짐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지는 날은 내 삶도 함께 내려놓게 되는 날이란 것을 어렴풋이 그러면서도 섬뜩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덜 행복해지고 아파하는 지금의 내 마음과 눈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삶의 무게가 감당키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나는 거기에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고 싶어진다. 지친 내 어깨에 실린 아픔과 눈물은 씨가 되리라. 그리하여 힘겹게 내딛는 내 한 걸음 한 걸음은 빛으로 발하게 되리라. 그 빛을 보고 가슴에 꽃을 그리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그렇게 스스로 위무(慰撫)한다. 하지만 이것은 머리가 지시하는 생각이다. 가슴은 자꾸 다른 생각을 충동질한다.

아,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하고 감추려해도 금세 드러나는 나의 철없는 이기(利己)여!
엄마가 스며든 따뜻한 집의 은혜의 불빛이고 싶었고 쓸쓸한 길가의 나트륨 램프 속, 친구가 스며든 우정 빛깔 친절한 가로등 불빛이고 싶었다. 또한, 하늘거리며 영혼을 정화시키는 사랑이 스며든 희생의 촛불, 그 향긋한 불빛이고 싶었는데 어느새 그런 마음은 먼지가 되어 어지러운 세상을 부유할 뿐이다. 아니, 아직도 기댈 수 있는 불빛을 찾고 싶은 어리광쟁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어디론가 떠나는 차량들의 불빛이 가슴에 와 닿는다. 눈길이 자꾸 그 빛을 따라간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내 세계에서는 그 불빛을 자유를 향한 불빛이라 규정짓는다.
떠나는 불빛,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는 그 불빛을 보며 나는 시멘트 속에 갇혀 있는 몸에서 마음을 이탈시켜본다. 그리고 어느 결에 그 불빛과 함께 일상을 떠나 한없이 자유로워진 내 한 조각 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불빛은 떠나고 불빛을 좇던 눈만 허허로이 남는다.

결국은 한 발짝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을 왜 자꾸 뱅뱅 헛걸음질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제 내가 빛이 되어야 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끌어준 그 불빛처럼 나도 빛이 되어 아이들이 길 아닌 길로 헛디디지 않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위치에 와 있는 까닭이다. 내가 빛이 되어 주어야 할 이들이 어디 아이들뿐이랴.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를 추스른다. 변변치 않은 존재이지만 미약하나마 그래도 나를 녹여 빛의 강을 이루어야 한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 그 생각은 오늘의 내게 차라리 빛이 되어 나를 다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