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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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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짱! 짱!


BY 선물 2004-02-03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짱'이라는 말이다. 하긴 어디 인터넷뿐일 것인가, 이젠 매스컴에서도 공공연히 오르내리게 된 말이니 솔직히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

사실 처음 이 말을 듣게 된 것은 약 십여 년 전, 딸아이 친구로부터였다. 아마 여섯 살 꼬마 아이는 위로 오빠가 있었던 까닭에 귀동냥으로 알게 된 말을 무심코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귀에는 아주 좋지 않은 비속어로 들려왔다. 그 말 이외에도 예전에는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던 `변태'라는 말까지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화들짝 놀랐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 말까지도 이젠 애교스런 표현으로 들릴 때가 있으니 그것이 세상변화에 대한 적응이라면 적응이로되 왠지 바람직하지 못한 적응인 것 같아 찜찜한 마음이 된다. 그러나 세상변화에의 이런 찜찜한 적응이 어찌 언어에만 국한되겠는가! 나름대로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갖고 살고 싶었던 나였건만 어느새 불지 않는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벼운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가 점점 많아져 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스스로 반성할 마음은 별로 갖지 못하고 그저 `요즘 아이들'이란 말이나 운운하며 혀나 끌끌 차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아이들에 대해 내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민망스런 옷차림이나 얄궂기 그지없는 몸 동작들을 보며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부터이다. 옛날에는 섹시하다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말을 한 연예인이 방송금지를 당하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너도나도 배꼽을 훤히 드러내 놓고 그런 섹시한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 별난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마 이조시대 조상님들이 그 광경을 보았다면 세상이 망할 조짐이라고 개탄할 여유도 없이 먼저 혼절부터 하게 될 일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어떤 면에서 생각해보면 수요자가 있으니 공급자도 있다고 그들이 누리는 인기를 보면 그런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한 친구는 남편이 어떤 여가수의 현란한 몸짓에 반은 넋을 잃은 모습으로 힐끔거리며 보면서도 안 보는 척 딴청을 피우기에 눈치 보지말고 맘껏 보라는 말까지 해 주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예쁜 사람이 보기 좋고 멋진 사람이 근사해 보이고 더 나아가서 섹시한 사람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그들을, 그 문화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영글지 못한, 이제 가치관을 정립해 가기 시작하는 아이들조차 무방비상태로 그런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여간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내 부끄러운 경험을 하나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얼짱이다, 몸짱이다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킹카와 퀸카라는 말이 있었다. 학창시절 잦은 미팅으로 어느 정도 이성과의 만남에 식상해 있을 무렵, 한 친구가 소위 킹카라는 남학생을 소개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 표현대로라면 정말 끝내주는 킹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쩔 것인가, 더 이상은 남자를 소개받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던 내 귀가 그 한마디에 번쩍하고 말았으니 내 속물근성이 못내 부끄러웠으나 그냥 받아들이게 되고 말았다. 나는 있는 대로 멋을 부려 약속장소에 나가게 되었고 큰 키에 멋진 외모를 갖춘 그 사람은 단박에 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주 거만한 모습으로 폼을 잡고 있던 그 모습이 어찌나 눈에 거슬리던지 친구가 먼저 손을 흔들지 않았다면 바로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남자는 역시 짐작대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사람이었다.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겉멋만 잔뜩 든 인간적인 향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킹카라는 그 한마디에 아무 생각 없이 혹했던 내가 참으로 한심스러웠던 일이다. 그런 경험은 그 뒤로도 많이 겪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겉모습만 보고는 속이 꽉 차 있는 껍질인지, 텅 빈속을 가진 껍데기에 불과한 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점점 더 외모를 최고로 생각하며 가치관을 그릇되게 정립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얼짱, 몸짱이 세상으로부터 갈채를 받고 엄청난 소득을 얻게 되니 아이들은 은연중에 우선은 예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잘난 사람들이 각광을 받기는 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그렇게 대놓고 그쪽 손을 들어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탈바가지 같은 온기 없는 웃음을 흘리며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연예인을 보면서 아이는 성공한 인생으로 단정짓는다. 그들의 삶을 닮고싶어한다.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하고 연기자는 연기를 잘 해야 하고..." 라는 말로 가르치려는 나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끝내는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라는 말로 매듭을 지으려 했던 내가 제 풀에 기가 죽어버린다. 별로 현실적이 아닌 말들을 책임감 없이 뱉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잘못된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 역할을 자꾸만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다다르게 되는 어느 시간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초침과 분침, 시침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세월은 그렇게 흘러서 쌓여 가는 것이다.'
아이에게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누르기만 하면 반짝하고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의 아이에게 내 말은 이제 아날로그적 낡은 가르침으로 허황하게 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도 진실로 통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쉽게 양보하고 뒤로 물러 설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반짝하고 얻어지는 것은 생명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목청껏 외쳐야 할 일인 것만 같다.

세월이 가는 것을 허무해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흐르는 세월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람들을 많이 겪게 되고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 많아지니 헛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넉넉함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정말 신명나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은 얼짱, 몸짱이 아니라 웃음짱, 성실짱, 신뢰짱, 사랑짱, 봉사짱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는 투명한 마음의 눈도 얻게 되었다.

사람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에 아이는 툭하고 한마디 내 던진다. 잘난 사람 질투하느냐는 말이다.
그래, 나는 어쩌면 정말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질투는 예전에 잘나 보이던 사람들에 대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보다 훨씬 부족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너무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들, 자신의 한 몸 사리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상의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수양이 덜 되고 인품이 모자라는 나로서는 아직 엄두를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하는 진짜 짱인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끄러워지고 또한 그들이 부러워지면서 그 마음 넉넉한 부유로움에 한없는 질투가 생겨나는 것이다.

짱이 되려면 그런 짱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다. 또한 세상이 그런 짱에게 조명을 비추어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인간미 넘치는 짱이 되고 싶어하는 그런 멋진 세상은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정신차린다면 그리 절망적인 일 만은 아닐 것 같다. 여전히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의 외침일망정 그래도 그것이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