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78

나를 물들이고 싶다.


BY 선물 2003-10-15

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가 내 시야에 잡힌다. 햇살 머금은 수면은 보석 가루를 뿌려 놓은 듯 잔잔하게 반짝이고 하늘 빛깔 따라 물 빛깔도 새롭게 옷 갈아 입는다. 가끔씩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멍하니 창 밖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내 눈길은 어느 새 호수를 따라 걷게 된다. 그렇게 눈길 따라 여행하던 내 가슴은 며칠 전부터 잔뜩 신이 나 있다.

호수는 늘 그 모습 그대로인데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풀이며 나무들이 고운 단풍 들며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어서이다. 여름 내 싱그러운 초록으로 마음을 프르게 해 주었던 고마운 신록은 이제 단풍이 되어 다음 세대의 푸르름을 위해 자신의 찬란했던 삶을 갈무리 할 준비를 미리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더욱 붉고 고운 빛깔로 자신이 지닌 극치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다 드러내 보이는 단풍이 나는 좋다. 그런 처연한 아픔이 스며 든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단풍을 보면 숨이 멎은 것처럼 느껴지고 끙끙대며 앓는 소리까지 내게 되는 것이다. 그 탄성은 아름다움에 대한 경배이고, 절로 새어 나오는 긴 한숨은 그 숭고함에 대한 깊은 새김질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나 울긋불긋 단풍 든 가을 길을 지나며 내 두 눈에 그 풍경을 담기를 즐긴다. 더구나 유난히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룬 단풍은 마치 흐드러진 잔치마당처럼 보여 나를 초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그러면 나는 기꺼이 그 유혹에 응한다. 그들 속에서는 철없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 감정을 추스리려 애쓰지 않고 새는 대로 흘리고 다녀도 다 이해 받을 수 있을 곳 같은 넉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속에 파 묻혀 가까이에서 그 이파리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응시하다  보면 노랑, 빨강,주황, 갈색 등의 각양 각색의 자신 만의 고유한 자태를 뽐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름의 초록이 한 가지가 아니고 그 짙고 옅음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들을 머금고 있었듯이 단풍 또한 그러하다. 각기 다른 빛깔이 한 데 어울려 환상을 빚어 내는 절묘한 아름다움은 새삼 신비로운 자연에 대해 찬탄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런 단풍의 아름다움이 욕심난다. 그렇게 한 번 나 자신을 아름답게 불 태우고 싶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단풍을 닮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잎에 단풍이 든다는 것은 신록의 푸르름을 잃는다는 뜻이며 얼마 안가서 자신의 낡은 잎을 떨구어 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삶의 이파리는 이제 막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닮아 보인다.
군데 군데 남아 있는 초록도 보이고 빨강, 노랑색의 농도도 결코 고르지 않아 아직은 아름답지 못한 단풍잎. 그 엉성한 잎을 닮아 보인다.

곱게 단풍 들려면 햇빛 속의 자외선을 많이 쬐어야 하고 습도가 알맞아서 잎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는데 내 인생을 곱게 물들이기 위한 알맞은 조건들도 있을 것 같다. 햇살처럼 따스한 마음으로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넉넉한 사랑으로 인생을 촉촉하게 적셔 주면 그리 될 것 같다. 주변에서 자신을 곱게 물들이는 사람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언젠가는 서산 너머로 지는 햇빛 받으며 곱게 세상 물들이는 노을빛 닮은 고운 단풍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