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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나에게 쓰는 편지


BY 선물 2003-10-02

안녕? 나는 네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을 지가 참으로 궁금하구나.
65세 이상을 노년이라 생각해 보면 이 시간의 나로부터 적어도 25,6년의 세월이라는 강을 헤엄쳐 나아가야 너를 만나게 되는데 아마도 지금의 너에게는 지나온 그 시간이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나는 네 건강한 모습을 만나고 싶어.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런 너를...
나는 가끔씩, 아주 가끔씩 너를 생각해 보곤 한단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네가 너무 실감나게 다가와서 `너'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져.
그래도 넌 다 이해해 주겠지? 원래 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뭐라고? 아니라고? 그럼 너는 변했구나. 이해심도 없어지고 자기 고집만 생겨 미운 모습이 되고 말았구나. 젊어서 너는 절대 그렇게 늙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치더니만 왜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말았니? 나는 그게 걱정되고 겁이 난다. 그래서 서둘러 너에게 미리 이 글을 보내니 자주 자주 꺼내 보며 스스로를 다스리기를 바래.

나에게는 노년의 네가 조금은 아프게 그려져. 너는 아마 딸, 아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과 함께 손주 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 가고 있을 것 같다. 특히 다른 어떤 역할보다도 시어머니 역할에 많은 신경을 쓰느라 조금은 마음이 고단할 테지. 그래도 내 생각에는 며느리일 적 네가 가장 갖고 싶어 했던 것들을 네 며느리에게 아낌없이 주고 스스로를 뿌듯해 하고 있을 지혜로운 시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는데...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마 너는 네가 가장 애타게 원했던 `자유'라는 굉장한 선물을 아무런 댓가도 없이 며느리에게 주었을 거야. 그러나 그 자유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아무런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고 받아 들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너무나 젊고 예쁜 며느리를 조금은 서운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연연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 옛날 네가 누리지 못했던 그 자유는 실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이니까...그리고 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며느리라는 자리의 틀에 너를 가두어 둔 것도 모두 네가 원해서 한 일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생각해 보렴! 누가 너를 강제적으로 구속했니? 네 맘껏 자유롭게 살고 그깟 따가운 눈총 쯤이야 하고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의 네 인생도 무척 달라져 있을 거야. 그러나 너는 따가운 눈총에 맞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피하려고만 했었지. 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라는 명분아래 결국은 네가 그런 인생을 선택한 것이지.
그러니 혼자만 희생양이 된 것처럼 억울해 할 일은 하나도 없음을 잊지 말아라.

지금도 여전히 넌 그렇게 살고 있지? 내 생각에는 여전히 이 머리 저 머리 굴려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만 결국엔 제 것 하나도 못 챙기고 속상해 하는 못난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안 봐도 비디오' 란 표현 그대로 내게 그려진다. 그러니 부디 당연한 것을 주고 황송해 하는 모습을 기대하다가 상처 받는 어리석은 시어머니는 되지 않기를 바래.

그리고 젊은 날 네가 시어머님께 원했던 것들과 고마움을 가졌던 것들을 잘 생각하며 그렇게 처신하길 바래.

자녀들의 교육은 시대의 흐름대로 젊은 며느리에게 맡길 것. 정 도와주고 싶은 맘이 생기거든 절대로 간섭이라 생각지 않도록 조언자의 역할로만 만족하고 결정은 전적으로 며느리에게 맡길 것.

시부모님께 잘 해야 함을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친정부모님께도 잘 해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 들일 것.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을 다 쏟아 붓고 그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서운해 하지 말고 차라리 적당하게 자기 감정을 조절하면서 베풀고 그 대신 어떤 기대도 하지 말 것.

둘만 사이좋게 화목하게 잘 살아 준다면 그 이상의 것은 덤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들일 것.

네가 해 줄 일이 생기면 기꺼이 아무 말 않고 해 주되 해 주지 않을 양이면 본 척도 아는 척도 하지 말 것.

그리하여 스스로 어른다운 덕을 보여 강요된 시부모님에 대한 효가 아닌 절로 우러나는 존경스런 어른으로서 아랫 대의 마음을 받는 지혜로운 시어머니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물론 이 생각은 젊고 건강했던 날 며느리 입장에서만 꿈처럼 원하며 생각했던 것이라 지금 몸도 마음도 지쳐서 약해져 있을 네가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이 걱정되어 이렇게 각서처럼 너에게 미리 편지를 보내는 것이겠지.

혹시 아픈 곳이 있니? 마음 편치 않은 일이 있니? 아무래도 이젠 점점 더 늙어질 생각만으로도 서러워질 것이고 네 젊은 날의 결혼생활과 그 마음도 비교하며 속앓이도 많이 하게 되겠지.
그럴 때면 이 편지를 꺼내 보렴. 그리고 젊은 며느리였던 너도 결코 네 시어머님께 만족할 만한 며느리는 아니었음을 가슴에 새기렴. 너로 인해 그 분도 지금의 너처럼 똑 같은 아픔을 겪으셨으리라 생각하면 그저 한 번쯤 쓸쓸히 웃는 것으로 네 아픔도 달래지지 않을까? 입장만 바꿔 보면 위로도 아래로도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혹여 네 며느리에게 서운한 맘이 있다 해도 `후' 하고 한 번 길게 내 쉬는 호흡 속에 그 맘도 같이 내 보내렴.

잘 할 수 있겠지. 잘 할 거야. 널 믿어. 난....
되도록이면 그 때 만나는 네가 계속 글로써 네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스리는 지혜로운 모습이라면 정말 좋겠구나.

너의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비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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