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774

이제 좋은 얼굴을 갖고 싶다.


BY 선물 2003-09-29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여자는 거울을 보면서도 인생을 느낀다. 거울을 통해 때로는 만족도, 불만족도 느끼게 되는데 보통 절대 만족이나 절대 불만족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절대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스스로에게는 차라리 다행이지만 반대로 절대 불만족을 느끼는 경우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삶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즉, 자신의 모습에서 어느 한 곳이라도 만족을 느낄 만한 예쁜 구석을 본능적으로 찾아 가며 행복도 느끼는 존재라는 뜻인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비교적 공감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외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내 경험을 통해서도 그 말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런 단장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갑자기 집을 나설 일이 있으면 왜 그렇게 주눅이 드는 지 일단은 사람을 만나기가 싫어진다. 그런 때는 되도록 고개를 아래로 향하게 푹 숙이고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힘을 쓰게 된다. 반대로 화장도 곱게 하고 머리 손질도 예쁘게 한 날은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자신 있는 발걸음이 되고 활기찬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환한 웃음을 담아 사람들을 씩씩하게 만나게 된다.

얼마 전 이웃 어른 한 분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남편의 일을 돕느라 사무실에 가던 때였기 때문에 항상 옷차림이나 외모에 최소한의 신경을 쓰고 다닐 때였다. 그 어른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내 오랜 공직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얌전하고 참하신 분은 처음이에요. 진작부터 칭찬을 하고 싶었어요."라는 듣기 송구스러운 말씀을 하신다. 그래도 그 말씀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 뒤 차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몇 곱절 부풀려서 `이렇게 칭찬 받고 다니는 당신 아내가 어때요? 자랑스럽지 않아요?'하는 으쓱함을 갖고 허풍을 떨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집에만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잠깐씩 밖에 나가게 될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때 나를 칭찬하시던 그 어른을 형편 없는 모습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 하겠기에 예의 그 주눅 든 모습으로 고개 숙여 인사 드렸으나 나를 힐끔 쳐다 보시던 그 분은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시는 눈빛으로 낯설어 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의 민망함 때문에 그 뒤로는 행여라도 그 분이 엘리베이터 앞에 계시면 나는 편한 엘리베이터 대신 죄인처럼 어두운 계단으로 숨어 들어 숨을 헉헉대며 7층까지 걸어 올라가게 되었다. 왠지 나를 예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는 정말 계속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비록 내가 별로 멋 부릴 줄 모르고 미에 대한 감각도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지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 준 일이었다.

똑같은 사람에게도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있을 때는 외모나 차림새에 따라 호의,비호의가 다르게 적용되기가 쉬울 것 같다. 물론 이런 기준은 잠깐의 만남에서나 적용되는 기준일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갖는 느낌은 참으로 다양하다. 처음에는 뛰어난 외모로 눈길을 사로 잡았던 사람도 그 사람의 내면의 향이 좋지 않음을 느끼게 되면 그 아름다움까지 빛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처음에는 별로 좋은 느낌을 갖지 못 했던 사람에게도 보면 볼수록,겪으면 겪을수록 친근감이 느껴지고 정스럽게 보이다가 결국엔 그 사람의 외모까지도 예쁜 모습으로 받아 들여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떤 경우가 더 아름다운 경우인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금은 충격적인 일을 얼마 전에 겪은 적이 있었다. 딸아이가 학교 준비물을 빠뜨리고 가서 그것을 학교로 가져다 준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딸아이의 한 친구 엄마를 만나게 되어 함께 교실 앞으로 가서 건네주고 돌아왔었다. 그 날 학교에서 돌아 온 딸아이는 나를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엄마, 친구들이 엄마는 예쁜데 너는 왜 그렇게 생겼느냐고 하더라. 엄마는 참 기분이 좋겠네." 라는 말을 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신보다 딸이 더 예쁘길 바랄 것인데 그 말을 신나서 떠드는 딸아이가 자꾸 속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런 와중에 무심코 한다는 말이 "그런데 엄마, 엄마 얼굴이 민성이 엄마보다 예쁜 것은 사실인데...그래도 난 그 아줌마 얼굴이 더 좋아 보이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좋은 얼굴이란 어떤 얼굴을 말하는 것인데?" 하며 물었더니 "음...편안해 보이는 얼굴." 이라고 답한다.
내가 다시 "그럼 엄마 얼굴은?"하고 물었더니 "무서운 얼굴" 이라는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나온다. 내가 딸아이만 할 때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또 제일 좋은 얼굴로 보였었다. 그러나 내 딸아이는 친구아이의 엄마 얼굴을 좋은 얼굴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엄마 얼굴을 생각해 보니 복실 복실한 얼굴에 순진스런 두 눈을 가진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그 동안 딸 아이에게 얼마나 찌푸린 얼굴과 짜증스런 모습을 많이 보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다들 경제가 불황이라고 한숨을 쉬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비교적 잘 되는 사업이 아름다움과 관련된 사업이라고들 한다. 아마도 영원히 아름다움과 관련된 사업은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미보다는 내면적인 미가 더 중요하다고들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외적인 미에 더 집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 지를 잘 알고 그대로만 실천한다면 외모로 인한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이제 마흔을 앞 둔 내 얼굴에도 제법 삶의 흔적들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잔 주름들이 세월 따라 깊은 골을 이루어 갈 것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빛도 단조로운 색깔들로 고정되어 갈 것이다. 늙어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자에게는 예쁘다는 소리가 고맙고 반갑게 들리겠지만 예쁘기만 하고 자기 고집과 심술이 덕지덕지 앉아 있게 된다면 그런 얼굴을 곱게 봐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무섭게 보인다는 말은 어쩜 마귀할멈처럼 심술 맞아 보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젠 좋은 얼굴이라는 말에 욕심이 난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얼굴들. 그 각양각색의 얼굴들 중에서 호감이 가는 얼굴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는데 정말 그런 얼굴을 갖고 싶다. 남들에게 편안하고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얼굴. 그런 진정한 좋은 얼굴을 갖기 위해 이젠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는 시간 만큼이나 마음의 거울을 보며 겸손과 사랑을 마음에 단장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