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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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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慾이 주는 평화


BY 선물 2003-09-25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비교적 순한 편이라도 믿고 있는 나도 유독 신경을 곤두세우고 함부로 대하는 대상이 있는데 바로 내 소중한 아이들이 그 대상이다.
여기 저기서 받게 되는 갖가지 억눌림 들을 혼자서 잘 삭이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들을 모두 아이들에게 분출하고 있다는 것을 가끔씩 느끼게 된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가장 나쁜 최악의 것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큰 아이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큰 아이가 크게 혼이 난 똑같은 상황에서도 작은 아이는 훨씬 관대하게 넘어갈 때가 많아 보인다. 그것은 아무래도 작은 아이가 더 어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리 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두 아이에 대한 내 기대치가 다른 까닭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많은 부모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아이에게 무한한 역량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그 기대는 보통 큰 아이에게 많이 가졌다가 또 큰 아이를 통해 조금씩 무너지게 되면서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직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래도 작은 아이에게는 큰 아이보다 기대치를 조금은 낮추게 되는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기르면서 갖는 기대치가 극명하게 달라 보인다. 큰 아이는 조금만 잘 해도 영재성이 있지 않나 하는 기대를 가졌고 한글도 일찍 깨우치게 하여 많은 책을 읽게 하였으며 그 외에도 이 것 저 것 가르치면서 늘 뛰어나기를 기대하는 내 욕심이 있어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달하는 마음이 되어 속상해 하였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하나라도 틀려 오면 그 틀린 하나 때문에 약이 오르고 더 잘하는 아이와 비교를 하였으니 아이와 나는 서로를 점점 더 힘들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 욕심은 결국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엄마가 되게 하고야 말았다.

어느 날 수학 문제집을 풀며 가르치는데 아이는 잘 풀지도 않으려 하고 자구 짜증만 내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다 못해 체벌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 만으로도 모자라서 나는 아이 엉덩이를 발로 뻥 차고 말았으니 아이는 그런 엄마가 정말 어이 없었을 것이고 질리도록 싫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해 주는 말이라곤 늘 "잘 했어, 애 썼어." 가 아닌 "왜 이것 밖에 못하니?" 라는 기운을 꺾는 말이었으니 아마도 아이는 공부라는 것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받아 들였을 것 같다.

그러나 작은 아이에게는 큰 아이와 달리 큰 기대도 갖지 않았고 그저 제 나이 또래 아이들 정도만큼 따라 가 주는 것 만으로도 크게 만족을 느끼는 엄마였다. 한 번은 수학시험에서 70점을 받아 왔는데 `저 어린 것이 어떻게 이런 문제까지 다 풀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저 대견해 하기만 했을 뿐 틀린 세 문제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님까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종휘랑 종휘 어머니는 정말 꼭 닮은 점이 있어요. 아이가 훨씬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둘 다 현실에 너무 만족하고 있은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욕심을 내시면 훨씬 좋아 질텐데..."
하긴 작은 아이조차 똑같은 시험에서 80점 받은 친구는 자기 엄마한테 혼이 나는데 70점 받은 자신은 엄마한테 칭찬 받고 아이스크림까지 얻어 먹었으니 그게 좀 이상했던지 그 이유를 물어 보는 것이었다.

한 번은 축 졸업이라고 적힌 유치원 졸업사진을 받아 와서는 `졸 축 업' 이라고 읽는 아이를 보며 (축이라는 글자가 중앙 윗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조차 귀여워 하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작은 아이에 대해서는 도를 닦은 무진장 관대한 엄마인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작은 아이에게는 늘 "잘 한다,잘 한다.ㅇㅇ박사다."란 말을 입에 달아 놓고 해 주며 아이의 기를 팍팍 살려 주게 되었다.

그러나 두 아이가 자라면서 보여 주는 모습은 내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늘 못 한다는 말을 들려 준 큰 아이는 정말 그 말처럼 점점 책과도 멀어지고 공부에도 취미를 잃어 가는 것 같고 오히려 책을 싫어 하고 학습능력이 떨어질 것 같던 작은 아이는 몰랐던 능력들을 보여 주며 진짜 박사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신통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직도 큰 아이에게는 더 큰 기대치를 가지고 있어 내가 쉽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마음을 비운 작은 아이에게는 간간이 맺는 좋은 결실에 대한 만족감이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맞듯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이를 두고 미리부터 결론이 난 것처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안달하고 조급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은 아이들의 성취도와는 상관없이 늘 만족하지 못 하리라는 것은 알 것 같다.

더구나 며칠 전 겪었던 일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작은 아이와 성당에서 함께 복사 활동을 하는 친구아이의 형이 교통 사고를 당하여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 엄마를 잘 알고 있는지라 그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라고 먹먹하여 머리까지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한 달 전 쯤이었을까? 그 엄마가 집을 새롭게 단장하였다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작은 아이와 몇 몇 친구들을 하룻 밤 재운 적이 있었다. 그 때 중학교 2학년인 그 아이의 형도 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작은 아이의 말에 의하면 정말 잘 놀아주고 친절한 형이었다고 한다.

위로 차, 몇 몇 복사 자모들과 함께 아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데 그 날 따라 그 또래의 해 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미리부터 눈자위가 벌개져 갔다. 막상 그 엄마를 만나게 되더라도 딱히 어떤 위로도 되어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픔을 함께 하면서 기도라도 해 주려는 마음으로 무겁게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서 먼저 아이의 아빠를 뵙게 되었다. 그저 아무 말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이가 희망이 없음을 알리던 그 아빠는 갑자기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그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감싸 쥐더니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 볼 수 없어 잠깐 자리를 옮긴 나도 언제부터 흘러 나왔는지 모를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 소리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 내고 말았다. 조금 후 아이 면회를 마친 후 혼절하듯 넋이 나간 모습으로 나온 아이의 엄마를 본 순간 아,정말 내 앞에 펼쳐진 아픔이 모두 꿈이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 중 몇 해 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를 그렇게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한 엄마가 그 엄마에게 다가가서는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정말 아주 한참을 그렇게 정지된 화면처럼 울며 서 있는데 너무도 큰 아픔을 겪으며 두 엄마는 마치 길고 긴 통곡의 나라로 빠져 든 것만 같았다.

조금 뒤 정신을 가다듬은 아이의 엄마는 지금의 심각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주섬 주섬 아이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공을 떠도는 그 눈빛은 한숨과,통곡과 함께 간간이 터져 나오는 그 엄마의 말까지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엄마는 그 동안 맞벌이를 하느라 직장과 집만 오가면서 아이들의 학교나 친구들과의 관계에 너무 소홀했던 것이 가슴에 걸려서 최근에야 아이들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큰 아이 학교에도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는데 그 또래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예쁘고 맑게 보일 수가 없어 자신의 아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처럼 예뻐 보이겠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의 자리에 대신 서서 동생을 살뜰하게 챙겨 주고 귀여워 했던 형이었고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하느라 자신을 위한 투정이나 불만은 결코 내 비치지 않았던 고마운 아들이었다고 한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 그저 가벼운 사고이려니 하는 생각을 했는데 후에 상황이 좀 심각하다고 하자 그냥 마음을 비워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생명은 건지겠지 하는 기대를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다 감수할 테니 그저 살아만 있으면 더 이상 바라지 않겠다는...
새로 고친 집에서 자신의 방을 보며 "짱이야!"라고 기뻐 했던 사랑스런 아이를 이대로는 정말 보낼 수 없다며 절규하는 아이의 엄마는 그 순간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아프고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차마 겪지 못 할 일.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산소 호흡기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 하고 있는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그 아이 동생의 말처럼 기도를 드리는 길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우는 엄마를 오히려 달래면서 "엄마, 울지 마.기도를 드리면 기적이 일어 나는데 왜 울어."라는 말을 했다는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형의 생명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부탁했던 모양이다. 작은 아이도 전화를 받더니 촛불을 켜고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병원을 다녀온 뒤 내 아이들을 보니 정말 너무 미안한 생각이지만 내 눈 앞에 아이들이 존재해 준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고맙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빗나가는 아이들 소식을 듣게 되거나 주위에서 아이들로 인해 엄마의 마음을 다치는 경우를 대하게 되면 정말 내가 이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아웅다웅 매달렸던 가치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 지를 느끼게 될 때가 많았다. 그저 건강하게, 올바르게만 커 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것을 욕심 낸다는 것은 큰 탐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나는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냄새 나는 하찮은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털어 내어 본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이러다가도 또 다시 욕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또 어떤 계기가 오면 잠시 마음을 비우게도 될 것이다. 늘 그렇게 우매한 사람 모습으로 혼돈 속에 어지러이 살아 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알 것 같다. 욕심을 부리면 그만큼 고통도 함께 얻게 된다는 것. 그래서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덜 갈구하는 자가 부자라는 말이 너무도 절절하게 가슴에 닿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그 무욕이 내게 주는 평화라는 선물이야말로 한없이 넓고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요 며칠 정말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부족한 내 머리 위에 얹어 두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차마 마음이 마음이 아닐, 세상이 세상이 아닐 그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도 환한 세상을 만끽하는 내 눈의 호사가 죄스런 생각이 든다. 부디 그 엄마에게 맑은 하늘과 넉넉한 대지의 숨결,푸르른 나무의 내음과 지저귀는 새소리의 아름다움을 예전의 세상 그대로 느껴지도록 기적이라도 일어 나기를 빌고 또 비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