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어디선가 살랑거리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이따금씩, 아주 이따금씩 고아한 새소리가 맑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그 소리는 어쩌면 너무나 생경스럽기까지 해서 잠시 뜨악한 기분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려줍니다.
제 마음의 눈은 드디어 그리던 곳을 보게 됩니다.
그 곳으로 저를 데려갑니다.
아주 가볍게, 깃털만큼의 무게감도 느끼지 않고 저는 그 곳으로 가게 됩니다.
눈앞에 제일 먼저 펼쳐진 그림은 노을입니다.
노을빛을 어찌 표현해야 할 지를 몰라 잠시 주춤거립니다.
어떤 색깔로도 그 화려하지 않은 찬란함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노을은 제가 그렇게 아프게 사랑하는 강을 정말 멋지게 감싸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 강이 나타납니다.참으로 고맙게도 말입니다.
잔잔한 물결위로 밤하늘의 별들이 다 내려 앉은 듯,
온통 강 위로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아,드디어 그 강 앞에 제가 서 있습니다.
바람과 새소리와 노을이 함께 하는 강.
제 상상 속의 레테의 강입니다.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 이르는 즉, 저승에 이르는 길에 있는 여러 강들 중 하나인 레테의 강.
그 강을 건너면 이승의 일은 까맣게 잊고 저승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추억의 해독제라고도 불리는 `망각의 강'앞에 제가 서 있습니다.
죽음의 강이 아닌 망각의 강 앞에..
살짝 그 강물에 발을 담가 봅니다.
발끝을 간지럽히는 물결의 감촉이 너무도 황홀합니다.
이제 제 몸을 담그면 잔잔한 물결이 저를 태워 출렁이며 그렇게 아득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지요.
잊고 싶은 기억들,살짝 건드려지기만 해도 소스라치는 놀라움으로 자리잡은 아픔들.
이제 강만 건너면 영영 안녕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우'하고 숨을 고릅니다.
저의 전부를 잊게 될 그 순간 앞에 서 있는 저를...
좀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 봅니다.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제가 조금은 가슴 아픕니다.
누군가 홀로 있는 제게 손 내밀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그렇게 작아 보이는 저를...
좀 더 품어 주는 마음으로 지켜 봅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갑니다.아주 한참의 시간이...
그러다가 눈을 뜹니다.
아름답고 황홀한 그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찰나입니다.
새소리대신 아이들의 종알거림이 있고
살랑이는 바람대신 일상의 분주함이 있습니다.
잔잔한 물결.
그 찬란한 반짝임대신 그대들과 저와의 이해하는 눈빛이 느껴집니다.
영원으로 묻힐 수도 있었던
피하고만 싶었던 기억이
그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았음에
이제는 감사하게 되니...
날고 날아도 닿을 수 없는 하늘보다
누런 흙 묻히며 사는 땅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아프게 사랑하는 저는..
그저 평화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 마음의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