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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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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여자


BY 선물 2003-07-31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웃기는지 뒤로 넘어갈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벽을 타고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에 이끌려 잠시 설거지하는 물소리를 죽여놓고 텔레비젼 앞으로 향한다. 개그맨들이 항상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말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그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은 입까지 헤 벌리고 앉아서 그렇게 넋놓고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그맨들보다 그렇게 그것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 식구들을 보면 그것이 더 재미있고 즐거워진다. 언제부터인가 웬만한 일에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 나였지만 웃음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즐거움을 주는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을 보면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설거지하는 자리로 돌아와서 물소리를 내며 그릇을 씻어내는데 계속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참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둘째아이의 웃음소리는 그야말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이다. 딸랑딸랑 방울소리같은 웃음소리.

옛날 친구들 중에는 웃음소리가 호탕한 친구들이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고 그저 입가만 조금 올리면서 웃고 마는 나는 그렇게 큰소리로 시원하게 웃을 줄 아는 친구가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런 친구 앞에만 가면 어떻게든 그 좋은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기를 쓰고 친구를 웃기려고도 했었다.

어릴 때부터 밖에 나가 사람을 웃기기를 좋아 했었다. 별로 웃기게 생기지 않고 얌전만 떨 것 같이 생긴 내가 가끔 재미있는 말을 불쑥 던지면 친구들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어주는데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이 났던지 늘 어떻게 하면 친구를 웃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웃길 준비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니 내 시시한 유머에 방울소리같은 웃음소리로 답해주는 친구가 그리도 예뻐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라.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리 웃음이 많지 않다. 개그맨들의 재치있는 개그에도 그저 씨익 한 번 눈으로,입으로 웃는 얼굴 한 번 그려낼 뿐, 정말 웃음다운 웃음을 터뜨릴 때는 별로 없다. 웃음을 좋아하면서도 웃음에 인색한 지라 그나마 남을 웃김으로써 웃음과 가까이 하려 애쓰는 편이다.

친구들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특히 여중,고 시절에는 쉬는 시간이나 청소시간이 되면 늘 내 주위는 친구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흠뻑 웃음에 취했었다. 아마도 그 때는 말똥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음보를 터뜨리는 그런 성장 과정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십 대로 접어든 뒤에도 여전히 주위 사람을 웃기고 다녔으니 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를 키가 커서 사람이 싱거운 까닭이라고들 말하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늘 집에만 있다 보니 조금씩 그 좋은 소질을 잃어가고 있었다. 옛날 친구 하나가 자신의 오빠와 나를 맺어주려고 무지 애를 쓴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웃음이라고는 찾기 힘든 냉랭한 자기집에 나같은 아이가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얌전하고 예쁜 올케언니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웃음이 가득한 집이 되었는 지 연락이 끊겨 나로서는는 알 길이 없다.

그 대신 나는 지금의 내 남편을 만나 예의 그 싱거움으로 남편을 곧잘 웃기며 살아 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옛날처럼 스스로는 잘 웃지 않으면서 그저 웃는 남편을 보는 즐거움만 가질 뿐이다. 옛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남편을 웃기는 것이 예전처럼 기발한 생각들이나 재치있는 입담으로가 아닌 좀은 바보같고 어리숙한 모습으로 웃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남편이 그것을 좋아 하니 나는 계속 그렇게 어리숙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젠 주위 사람들을 만나서 내 나름대로 재미있는 말을 내던져도 예전처럼 그렇게 호탕한 웃음으로 답해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히려 `썰렁함'으로 되돌아 와 무안을 느끼기 일쑤이다. 가끔은 나도 정말 잘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예전의 나처럼 그렇게 나를 깔깔거리며 웃게 해준다면 참 좋겠다.

거울속의 내 얼굴을 보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 주름의 모양이 결코 웃음으로 인해 잡힌 그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속상함을 잔뜩 갖고 있는 내얼굴, 짜증을 잔뜩 묻힌 내 얼굴에 나 있는 주름 골을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웃는 얼굴로 주름의 길을 다시 내어 보고 싶다. 이제 갓 자리잡기 시작한 잔주름이니 그 성형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성형술은 다름아닌 `웃음'이 될 것이고 성형의사는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남에게 `웃기는 사람' 아니,`웃기는 여자'가 기꺼이 되어 줄 의향이 있다. 자칫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로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웃기는 여자'가 될 수 있다면 나로 하여금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행복에 젖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월은 옛날에 번득였던 나의 재치를 이제는 `썰렁함'으로 둔갑시켜 버리고 말았으니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세상 사람들이 모두 개그맨이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늘 웃음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져 보는 것이다.

누가 제 앞에서 저를 보며 그렇게 까르륵거리며 웃어 주실 분 없으신가요?
자꾸 울음소리만 들리는 요즘의 세상입니다.
이제 세상의 웃음소리가 그리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