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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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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벼운 나의 미움들


BY 선물 2003-07-30

어제는 매우 바쁜 하루였다. 갑자기 생긴 은행일 때문에 여러가지로 어수선한 마음이되어 바삐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월말의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번호표를 보니 내 앞의 대기자 수가 자그마치 68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난감해졌다. 다른 날과는 달리  어머님도 집을 비우셔서 아이들끼리만 집을 지키게 되었던 터라 바로 전날 앞동에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나로서는 자꾸 맘이 불안해졌다. 비록 아이들이 다 크긴 했지만 어머님께서 집을 지키시는 것이 일상이었던 까닭인지 그렇게 호들갑스런 불안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더구나 집에 아들아이의 친구들이 찾아 온다는 약속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도 빨리 흐르는 시간에 비해 대기자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그 때부터 내겐 미워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을 창구앞에 서서 일을 보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그 아주머니가 왜 하필 이렇게 바쁠 때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볼일을 보는지 자꾸 속상한 맘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태우고 있는 순간 작은 아이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지난 밤에 잠을 잘못 잤는 지 목이 아파서 견딜 수 없다며 내가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나는 금방 갈거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마음이 더욱 급해져서 자꾸만 속이 좁아져 가고 있었다. 얼마 뒤,가까스로 내 차례가 되어 창구앞에 갔더니 은행직원이 절차상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서  나중에 다시 은행을 한 번 더 찾으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순간 갑자기 일을 만들어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남편이 미워졌다. 물론 좀 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결코 남편에 대한 미움을 가질 턱이 없는 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한가지 일조차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속상해 있던 나는 카드로 현금이나 입금시킬 요량으로 자동화기기 앞에 줄을 섰다.
눈치를 보면서 사람이 제일 적게 서 있는 곳으로 찾아 간 나는 빨리 일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줄만 줄어 들고 내가 서 있는 줄은 한참을 기다려도 줄어들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가만히 앞쪽을 보니 어떤 젊은 여자가 수표를 잔뜩 가지고 와서 그것을 한 장 한 장 수표입금부로 넣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아 수십장은 될듯한데 기다리던 우리 줄 사람들은 한결같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 여자에 대한 미움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전화를 두어번 정도 더 했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치의 덜함도 없이 아니,그 이상의 미움을 갖고 앞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 한 여자를 원망스럽게 쳐다보게 되었다.

드디어 내가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저기,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세요? 궁금해서요."
비록 미안해하는듯한 말씨로 물어 보았지만 그 여자는 원망이 잔뜩 묻은 나의 마음을 바로 눈치챘는지  아주 딱딱한 목소리로 "다 되어가요!"라며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언젠가 급한 일로 돈을 송금하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하기 싫은 억지 양보를 하며 속상해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제 그와 꼭 그 반대의 입장에서 내가 그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텔레비젼을 보며 누워 있었다. 더운 물로 아이의 목을 찜질을 해주던 나는 아이의 목 상태가 별로 심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한 편으로는 그렇게까지 나를 급하게 부를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괜히  아이까지 또 못마땅해진 것이다.  내 마음이 바쁘다 보니 하루동안 꽤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하찮은 일로  사람을 미워한 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피곤한 몸으로 버스를 탔을 때 나름대로 용감한 아줌마가 되어 곧 내릴 기색을 보이는 사람 앞에 종종걸음으로 가서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내리지 않고 다른 자리의 사람들만 내리는 경우를 당하면 나는 앞자리에 앉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비록 죄는 없지만 나를 헷갈리게 한 것 자체가 미운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힘들게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을 때  노인 한 분이 저쪽 경로석의 빈자리는 그냥 지나치시고 꼭 내 앞쪽으로 오시는 바람에 결국 자리를 내어 드리게 되었을 때 가벼운 눈인사조차 건네지 않으시며 너무도 당연한 일로 생각하시는 것을 뵈면 나는 또 속상한 맘이 생기며 그 분께도 작은 미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자리 내어드림이지만 옹졸한 나는그렇게 쉽게 서운한 맘을 갖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가벼운 일상에서의 미움들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많아 보인다. 공중전화 앞에서 차례를기다릴 때나,대형할인마트의 계산대 앞에서도  사람을 미워할 경우가 자꾸 생긴다. 때로는 엘리베이터 높은 층에 사시는 분들까지도 별 이유 없이 내게 미움 받을 때가 많다.급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한없이 높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면 나는 자꾸만 애가 타는 것이다.
그렇듯이 마음이 바빠지면 난 그렇게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 여유가 없으면 자꾸만 그렇게 속이 옹졸해 진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느림의 미덕이 왜 필요한지도 알 것 같다. 다른 때는 느려터진 사람이다가도 막상 내가 바빠지거나 애가 타면 꼭 나같은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마니 나 자신에게 비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사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처럼 자기 편의대로 아주 가볍게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고 가장 미운 것 또한 이런 나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미움들이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고 또 그렇게 타인과 물처럼 섞여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의외로 바쁜 하루를 겪으면서 절대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물론 큰 미움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작게 작게 갖게 된 내 미움이 어떤 기운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 좀 더 너그럽게 세상을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