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를 찾는다. 할머니께 "다녀왔습니다." 라는 인사만 드리고는 냉큼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딸아이가 웬 일인가 싶다. 딸아이는 갑자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할머니 품으로 안긴다. 그러고는 "할머니,절대 돌아가시지 마세요.돌아 가시면 안돼요.할머니가 안 계신 집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요." 라며 울먹인다.
어머님은 딸아이의 그런 행동에 무척 감동하셨나보다.여기 저기 따님들께 자랑전화 넣기에 바쁘시다. 가끔씩 어머님은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자꾸 할머니를 멀리 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쓸쓸히 하셨다. 아이들이 아기일 때부터 어머님이 반은 키우셨으니 그 정이 어찌 엄마인 나만 못하실까. 그러나 아이들은 할머니 뿐만 아니라 엄마인 나에게서도 점점 멀어져 갔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친구나 컴퓨터로 대신 채우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오로지 집안에만 계신 어머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오는 것을 그리도 기다리셨는데 막상 아이들의 할머니에 대한 무관심을 느끼시면서 가슴이 많이 허허로우셨는지 그 서운함이 나와는 다르게 더 크신듯 하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할머니께 그런 살가움을 보여 드린 것에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딸아이는 하교길에 어떤 노인분이 다리가 아파서 쪼그리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할머니가 들고 계시는 짐을 들어 드렸고,그러면서 집에 계신 할머니가 갑자기 그리도 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면 어머님은 나에게 조금은 더 상냥해 지신다. 며느리인 나는 그런 계산도 해 보면서 아이들에게 늘 엄마 아빠보다 할아버지,할머니를 더 좋아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어찌 내 잇속만 앞세운 것이라 할 것인가.
어머님은 가끔 아이들에게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 하신다. 입의 혀처럼 아이들을 거두시고 희생하시는 어머님은 다른 어떤 보답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을 갖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솔직히 자식들에 대한 애정의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우리 어머님의 자애는 내가 아무리 폄하하려고 해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시다. 그 자식의 범주에 비록 며느리인 내가 가끔씩은 쏙 빠져 있다 할 라도 나는 내 자식들을 그리 살뜰하게 거두어 주시는 어머님을 결코 서운해 할 수만은 없다.
아이들은 배가 아프면 할머니께 달려간다. 할머니의 손으로 배를 만지시면 정말 아이들의 배는 감쪽같이 낫는다고 한다. 그 약손이란 것은 사실 어머니의 손 아니던가. 나 또한 어릴 때 엄마의 손길만 닿으면 어떤 곳이든 아픔을 잊게 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아이들은 그 부드러운 손을 할머니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아이들이 할머니께 가서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엄마보다 더 좋아요.백 배 천 배나"라고 말씀 드릴 때면 어머님의 입가에선 행복의 미소가 곰실곰실 피어 오른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 보는 내 가슴도 훈훈해진다. 그러면 어머님은 나를 보고 한 말씀 하신다. "아이들은 누구나 세상에서 엄마를 젤로 좋아하는거다.그런데 요놈들이 눈치가 빨라서 날 좋다고 하는거지,그러니 에미야,너무 서운해마라."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반찬이든 내가 만든 것보다 할머니가 만든 것을 더 맛있다고 한다.때로는 맛없다고 하던 반찬도 할머니가 하셨다고 하면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며 "짱!'이라고 하는 영악함도 보인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이 외할머니보다 친할머니가 더 좋다는 말을 해도 나는 그게 당연하게 생각되고 그런 아이들이 오히려 대견스럽다. 그리 멀지도 않은 친정에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은 나로서도 속상하고 남편과 어머님께도 서운한 맘 가질 때 많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이,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은 고마운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렸으면 좋겠다. 그 행복은 나를 편안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