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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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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BY 나의복숭 2003-07-16

한며칠 가슴이 답답하여 집을 떠났었다.
청소년으로치면 가출이 되겠지만
내 군번으로는 아무도 가출이라 불러주질 않으니
걍 바람쐐러 떠났다고 해야겠지. ㅎㅎㅎ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지만
고생이라도 일단은 즐거웠다.
머리를 짓누르는 가사일.
밥 않해도 괜찮고 빨래 않해도 좋고
청소는 더 더욱 생각 않아도 좋았으니...

스치며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나름데로 고민은 있을꺼지만
사람의 겉과 속은 이렇게 다른가보다.
하긴 내 모습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걱정없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지.
일상을 잊고 떠나는건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바람이 부는곳에서 할머니 한분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까만색 굵은실였는데
할머니는 밥줄이라고 했다.
밥줄.
얼마나 피부에 와닿는 살가운 말인가?
그 밥줄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의 모습들이라니...

"할머니 실이 보이세요?"
반쯤 감은듯한 할머니의 눈이 미심쩍어서 물었드니
"보여서하나? 감으로 하지"
간단명료한 대답이 들려온다.
조금 가슴이 시려온다.
저리 뼈가죽만 남은 할머니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치기어린 생각이 들어서 다시 지나가는말로 물었지.
"자제분들이 뭐라 안해요? 힘들다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 총알같은 할머니의
답이 귓전을 때려온다.
"이 사람아. 놀면 머하나? 자식돈은 공돈인가?''''''''

아이구~
뒷통수를 맞은듯 정신이 확 들었다.
세상의 철학이 할머니의 말속에 다 있는거 같았다.
놀면 뭐하나?
도시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이해가 안가는 소리일꺼다.
놀면 좋지.
노는것만큼 즐거운게 어디있을라고...
놀기위해 다들 돈 번다고 아둥 바둥 하는거 아닌가?

자식돈은 공돈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할머니.
솔직히 부끄러웠다.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자식들이 빨랑 돈 벌여서
어미 아비 도와줬으면하고 은근히 바라지 않았든가?
저 연세는 밥을 떠먹여줘도 먹기 싫을 연세인데
놀면 뭐하나라고 하시니...

세상이치는 바로 내 주위의 삶에서 나오는거 같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들 내 스스로가 깨닫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내가 부딪치는 삶 하나 하나가 알고보니 다 공부였는데...

"할머니 이거 드세요"
가방속에 있든 생과자를 꺼내어 할머니를 드렸드니
"이런거 많이 먹으면 몸에 안좋아"
그러면서도 덤석 덤썩 집어서 잘도 드신다.
"맛있지요?"
오물 오물 드시는게 우스워서 한마디 던졌드니
"맛있네. 그렇지만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워"
오래 살고싶은가보다.
자꾸 몸에 해롭단 소릴 하시니...

"할머니 오래 사시고 싶죠?"
풀어진 할머니의 표정에 용기내어 짖굿게 물었드니
"내 나이 되어봐. 오래 안살고 싶은가.."
뛰웅~
내 나이 되어보란 소린 심심하면 내가 잘써먹는 18번인데
할머니도 쓰시네.
그럼 앞으로 난 몇년동안 저 문자를 써먹을라나?

그물망을 손질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서 오는 내 뒷통수가 이때만큼
부끄러운적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란 교훈을
스스로 깨닫게 해줬으며
살고싶은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신 그 솔직함.
나보고 오래 살고 싶냐고 물으면
내가 말할 대답을 뻔히 알기에..
"오래 살긴 뭘 오래 살어. 적당히 살다 가는거지"
이 말만큼 위선적인 말이 어디에 있을까?

여행은 이래서 좋은거 같다.
세상이치를 이곳 저곳에서 깨닫을수 있으니..
이 나이에 이것도 공부가 아니고 뭘까?
머리 싸매고 책들여다 보는것만이 공부가 아님을
피부로 직접 느꼈으니...
돌아오는 발걸음은 갈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왜?
값진 인생 공부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