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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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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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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더 이쁘시네요.. ''


BY 올리브 2003-08-13

낮근무 인계가 시작됐다..

 

아침근무 보다 낮근무는 집에서 준비하는 내내 꾸물거릴 일이 많아지는

근무였다..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아침엔 나름대로 긴장하던 탓에

지각은 있을수 없었고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그래서 깊은잠을 자지 못했다.

지각은 그야말로 일어나선 안되는 대형사고였으니 말이다..

 

근데 그 애매하고 어쩡쩡한 낮근무는 아침에 느긋한 잠도 즐길수 있고

뚜렷한 계획은 없어도 늘 미적거리다 결국은 출근준비를 서두르게 만들곤

했었다..

 

그날은 집에서 음악이나 들으며 꼼지락 거리고 싶은 욕구가 날 미련떨게

해서 그랬는지 아님 전날 일하다 받은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감땜에 그랬는지

서둘러 나왔지만 탈의실까지 달려가면서 늦을까봐 맘이 급했다..

 

그리고 헐레벌떡 인계를 듣는 그 시간... 귀에 제대로 들어올리가 없었다..

 

'' 어제밤 신환인데. 공장에서 불이 났대요.. 이따 오후에 드레싱이 한다고

   하던데 환자가 많이 아파할꺼예요.. 욕조에 한번 들어갔다 나와야 하거든요..''

 

의사건 간호사건 화상환자는 드레싱 할때 시간도 많이 걸리고 환자가 아프고

힘들어 해서 좀 심적으로도 도와줄일이 많고 신경 쓰이는 환자중 한명

이었다.. 드레싱은 대부분 오후에 이루어 지는데 아침엔 회진준비와 환자

처방에 대한 일이 대부분이고 검사가 많아서 오후에 저녁식사전에 주로

이루어지곤 했다.. 그래서 낮근무 간호사들은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그 드레싱이 늘 부담스럽고 버겁고 그랬다.. 오후엔 신환도 받아야 하고

거기에 따른 간호행위가 끝이질 않으니 말이다..

 

인계후 병실을 간호사들끼리 돌면서 그 화상환자를 살폈다..

얼굴만 빼고 거의 대부분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그 남잔 다행히도

밝게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링거액 방울수를 조절하고 계산하느라 만지작 거리던 내게 그 남자가

씩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 어휴.. 오늘은 더 이쁘시네요.. ''

 

'' 언제 저 본적 있으세요?  오늘 전 처음인데.. ''

 

'' 지난달에 여기 입원환자땜에 한번 왔었거든요.. ''

 

'' 아..하..  근데 좀 아플꺼예요.. 이따가 드레싱때 도와드릴께요..''

 

문 닫고 나오면서 대부분 화상환자들 한테 느껴지던 어두움이 그 남자한테선

없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문제의 드레싱을 잘 참아내고 오히려 우리 의료진들한테 수고했다며

여유를 보여줬던 그 남잔 병원근무를 하는동안 우리 간호사들한테

어떻게 살아야 아프지 않게 사는건지 입원해있는 내내 가르쳐주고 있었다..

 

'' 오늘. 또 뛰어왔죠? 말라서 뛰는것도 버거울텐데 좀 여유있게 사세요..

   뛰는것도 이쁘시긴 하지만..  ''

 

링거액을 다른 수액으로 교환하려고 병실문을 열었을때 그 남자가 또 씩

웃으면서 날 부끄럽게 했다..

 

'' 여기서 보여요? 아침엔 안 뛰는데 오후엔 가끔 뛰게되요.. 좀 일찍 나와야

   하는데.. ''

 

통증도 잘 참고 드레싱 치료도 잘 받던 그 남자는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고

퇴원을 했고 나한테 그 남잔 내게서 부족했던 사랑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계하고 또 인계하고 환자들 교육하고 그렇게 바쁘다는 이유로 돌고 돌면서

살아냈던 병원에서 내가 사는동안 그 삭막함에서 어쩌다 우리에게 위안과

평화를 안기고 가는 환자들 때문에 간호사인 난 행복했었던 시간이었다..

 

아마도..

 

'' 오늘은 더 이쁘시네요.. ''

 

그 말이 아니었어도 난 나한테 늘 속삭였을것 같다..

 

'' 나 .. 맨날 이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