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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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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


BY 밥푸는여자 2005-01-08



콤한 동지小寒 팥죽맛이 채 혀끝을 떠나기도 전 얼음칼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추위 소한小寒을 맞게 된다. 얼마나 추웠길래 대한大寒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했는데 바로 그 때가 우리가
영화촬영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어른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울 방학이 시작되고 새해를 넘기면 어느정도 방학살이가 몸에 배인다
아이들의 잰걸음으로 족히 30분 정도 나가면 텅 빈 들판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언제나 허기지고 게으른 볏짚사자들이 보인다 볏짚사자들은 추수철이
지나면서 논을 지키라고 데려다 놓는 것인지 하루 밤 자고나면 하나 둘씩
늘어나고 멀리서 보여지는 긴 행렬은 장관이었다.  볏짚사자들 가까이 가면
잡아 먹힌다는 어른들의 당부에 언제나 우리들은 논두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되도록 멀리 돌아다녔었다 가끔 가까이 가서 쳐다보면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볏짚 속에서 금새라도 사자가 어흥! 하고 달려나올 것만 같았다

은 가을비가 볏짚사자 등에서 흘러 논바닥에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리고
어느새인가 흘러 내리던 빗방울이 차가운 얼음으로 바뀌게 되면서 하늘은
자주 잿빛으로 옷을 갈아입게되고 사자는 늙기 시작하는지 배가 홀쭉해지고
등에 살이 빠져 논바닥에 넙쭉 엎드리고만다. 지나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건네보기도 하고, 가끔 발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털을 쑥쑥 뽑아보기도
하지만 전혀 달려들 기색도없이 노여움도 움직임도 없다. 드디어 사자가 죽었다!
사자가 죽고나면 논은 우리들 차지가 된다. 하늘만 조금 꾸무룩해져도 우리는
혹여 하늘에서 눈이라도 내려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둥글둥글 돌며 고개가 아프도록 긴 주문을 외우곤 했었다.  

울 놀이를 하기엔 가장 넓은 최상의 장소가 논이다.
논 바닥에 야트막히 물이 고이고 얼음이 얼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썰매를 등에 지고 모두 논으로 행진을 한다. 썰매의 모양을 살피자면 굵은
철사를 댄 썰매로부터 시작하여 더 사용할 수 없는 스케이트 날을 굵은
나사로 돌려 꿰 달아둔 고급형 썰매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모양을 한 썰매들이
줄을 선다. 많은 썰매들 가운데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외날 썰매였는데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옆으로 기울어져 옷과 장갑만 물에 젖게된다
그 외날 썰매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동네 큰 오빠들 외에 우리 또래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 나무 꼬챙이 끝에 머리 잘린 긴 못을 달고 얼음을 콕콕
누르며 빨간 털실 머플러를 날리며 달리는 오빠들을 쳐다보며 마냥 부러워하곤 했었다. 썰매타기의 가장 클라이막스는 얼음에 구멍을 뚫어 놓고 달려오다
그 구멍에 빠지지 않고 날아 건너는 것인데 나같은 쪼무래기들은 얼음구멍
근처에서서 구경을 했는데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매타기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물이 어느정도 마른 저수지로
간다 가장 큰 대장 오빠가 먼저 저수지로 들어가고 여기저기 탁탁 밟아보며
안전 점검을한다 점검이 끝나면 오빠가 시키는대로 저수지를 뺑돌아 반대편
으로 줄을 지어 서게되고 한사람씩 저수지 얼음을 건너게된다 그야말로 누가
누가 용감한가를 시험하는 시험대라고도 할 수 있던 놀이였다. 겁이 많은
아이는 두텁게 꽁꽁 언 곳으로 다다다다 뛰어가고 한 발 두 발 쭈욱쭈욱
내딛어가며 미끄럼을 타고 가기도 하는데 얼음이 얇게 얼어 발을 디딜 때마다
얼음이 들쑥거리며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곳을 찾아 살살살 쉬쉬쉭~
그곳을 건너는 용감한 아이들도 있었다

여간 재빠르게 달리지 않으면 어쩌면 얼음 속으로 꼴까닥 수장 당할 수 있는
꽁꽁 언 저수지위를 달려야했다. 나도 덩달아 그 사이를 비집고 섰는데.. 이미
용감한 오빠와 다른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내 가벼운 몸을 버팅겨 주기엔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달았다 뿌지지지직~~ 소리와 함께 얼음판은 가느다란 신음
소리와  사방으로 갈라지며 얼음이 깨지는 스릴이란 대단했었다.  먼저 달려
건너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오빠들은 마른침을 꼴까닥 넘기며 어리버리
여동생의 무사귀환(?)을 숨죽이며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이미 겁 많은 아이로
정평이 나있는 나는 오빠들에게 저수지로 출발 전부터 오빠 다음으로 건너야
하는 거라며 교육을 받았건만 막상 오르락 내리락하는 얼음 덩어리를 보면
나중에 더 어려워질거라는 생각은 저편이고 동네 아이들 한 두 명씩 네가
먼저라며 등을 쳐내며 눈치를 보다 결국 맨 꼬래비 순서가 되는 것이었다.

무리 잽싼 걸음으로 달려봐도 이미 몇차례 결국 갈라진 얼음물 속으로
내 빨간색 에나멜 털신은 푹 적시고 만다.  해가 어느정도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낮시간의 페키지(?)인 겨울놀이 모음은 모두 끝나는 시간이 된다.
몸은 꽁꽁 얼어 말하기도 어벙벙해지고 추워 오돌오돌 떨리고 이빨 부딪히는
소리도 바람소리 만만치않게 들리는데 또 맨 나중에 왔다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오빠에게 한방 쥐어 박히고 홀짝이는 내 몰골 참말로 불쌍타...
다음부터는 건너오지 말고 감자랑 고구마 지키고 있으라고 한다.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끄덕끄덕 다짐하지만 어림없다!!

때 늘 오빠들은 훈련된 조교마냥 저수지 주변의 마른풀섶을 헤치고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나뭇가지를 쌓아두고 돌멩이를 탁탁 부딪혀
불을 지피웠다. 정말 못하는게 없는 오빠들이었다. 추위에 얼었던
꼬질꼬질한 얼굴들이 차츰 말캉하게 풀려갈즈음에 모두들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지라 마주보며 까르르 웃는다. 얼마나 추웠던지 얼었던 콧물이
녹아 흘러 내릴 때 콧등에 힘을 주며 빨아들이는 그 절묘함은 지금도
웃음이 배어나오는 기억중에 하나이다.  불 기운에 녹아 간질간질해지는
얼은 쪼막손들을 엎었다, 폈다하며 불을 쪼이는 동안 젖은신발이 다 마르고
겉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 구워 먹으며 노을을 등에
지고 까르르 웃던 유년의 겨울이 생각난다.

데 이젠 육신의 무게 뿐 아니라 정신의 무게도 두텁고 탁하게 무거워진
탓인지 두꺼운 눈얼음 위를 가볍게 걷는 것은 고사하고  단단한 땅위를
걷는 일 조차 헉헉거릴 정도가 되버렸으니..쯧쯧  며칠동안 내린 눈 탓에
백설기 같은 눈이 보기좋게 쌓였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뚝 떨어졌는지
보드랍던 눈이 꽁꽁 얼었버렸다. 눈밭을 거니는데 뽀드득뽀드득  
귀에 낯익은 정겨운 소리가 났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리에 마음 한 켠이 싸~ 하니 시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저기 유리파편같은 얼음조각들이 햇살에 빤짝거리고 드물게 기웃기웃
얼음눈 사이를 비집고 보이는 초록풀잎이 무척 반가왔다. 몇차레 돌아돌아
운동화 발자욱으로 꽃을 만들고 꽃 흔적을 보다가 문득 무술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 눈을 살며시 감고 얍 ~~~ 단전호흡을 하듯 숨을 가슴
위로 올려보낸 후 살짝 한 발자욱을 내딛고 무게중심을 머리로 ...크 ~~

샤샤..샥..하더니 바지직 눈 속으로 발이 쑤욱 들어가고 어림없지하며
발자국이 보란듯이 꽉 찍혀있다.  몇번을 빌어보며 또 빌며 시도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찍히지 않고 가볍사리 걸어갈 수 있기를..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 드디어 눈을 감으니 햇살이 무지개 빛으로 보이고
머리가 뻥 ~ 뚜껑이 열린 거 같더니만 몸은 둥둥 뜬거같고 머리가 위로
쭈빗하니 오른거같고..

~~
흔적없이 걸었다..비록 두 발자국 지나자 그만 빠찌지지직~ 하고
빠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두 발자국 걸었다. 눈 속으로 발은 빠지지
않았고 운동화 발자국는 없었다..흠흠.. 믿기나 말기나다..  
오늘의 무술영화 촬영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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