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서..
어릴 적 아버지 등에 업혀
어둔 골목길을 걸어 나올 때
아버지 따스한 등에 얼굴을 묻으며
쳐다본 달은 언제나 나를 따라왔다.
왜 나를 따라 오느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지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를 따라온다고.
행여 내 마음에 죄를 이어 나를 때
난 언제나 달을 피해 다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늦은 밤 광화문 거리를 무거운 한숨과 가방에
짓눌려 걸어갈 때도 달은 나를 따라왔지
버거움에 지쳐 하숙방으로 향하는 나와 함께
내 짙은 외로운 그림자 속으로 파고 들어
소망을 나르며 늘 나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지
나는 아직 착한 사람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달콤한 언어의 마술로 벅찬 사랑의 감성을 내뿜은
편지를 손에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을 때도
윤동주 시비 아래로 휘감기는 한숨도 외면하며
돌아서 타박타박 내딛는 발등 위로 언제나 소리없는
부끄러움으로 스며들어 내 작은 위로가 되었지
나는 아직 착한 사람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태중에 움직이는 아이를 어루만지며
페르퀸트의 선률에 행복한 꿈을 맡길때도
죽어가는 아이를 부여잡고 밤 새워
간절한 소망으로 가슴앓이 할 때도
새벽녘 종소리가 들릴때까지 함께 했었지
나는 아직 착한 사람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병 중에 퀭하니 지친 눈을 갖았어도 나를 떠나지 않고
병실 밖 마른가지에 걸터 앉아 나를 보고 있음을 보았다.
독한 주사바늘이 지독히도 차갑게
가는 핏줄을 파고 들 때도 말없이 창밖에서
떨며 바라보고 있는 아주 오랜 벗을 보았다
나는 아직 착한 사람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세월의 붓대가 스치고 간
인생의 허름한 골목에 서서 서성임에도
망가져 늙지도 않은 고운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뿐 아니라 네게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보니
우리는 아직 착한 사람인가...
보편적 은혜 속에 감사한 날들을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축복으로 맞게 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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