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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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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충만


BY 밥푸는여자 2004-09-17


 

 

    이른아침이면
    사슴가족이 물 길러 나온다는 호수가 있다기에
    이른 새벽 두 마음으로 갈등하다 차를 호수로 몰았다

    호수는 지척을 가름할 수 없는 물안개로 채워져있고
    느리게 움직이는 안개의 흐름을 보며 말 그대로 텅빈
    충만을 안아볼 수 있었다 새벽 숲향과 어우러진 안개가
    코끝을 촉촉히 간지럽힌다  쏴~~ 숲의 노래가 들려온다

    여름내 사람 소리로 부산하던 호숫가엔 적막한 나무들의
    눈빛 대화만 있을 뿐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탓에
    새들은 제 깃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안개는 흐느적흐느적
    부드러운 몸짓으로 몸을 휘감는다 싫지않은 한기가 느껴진다  
    쉐타를 어깨에 걸치고는 준비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커피잔 위엔 상념의 그림을 실은 또 다른 안개가 흐른다
              
    한참을 앉았는데 드디어 사슴가족이 등장하고 표현할 수 없는
    설레는 감사함에 가슴이 뿌듯하다 아~ 저렇게 맑을 수가..
    사슴의 눈은 정말 맑고 고왔다 특히 아기사슴 눈에는 새벽의
    고요가 그윽히 가라앉아 있었다 낯선 향을 가진 짐승을 보고도
    두려움없이 어떤 미동도 하지 않은채 그 자리에 서 있다
    아주 천천히 호수로 다가와 물을 마신다..그네가 움직이는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이 새벽 숲엔
    나무가 나무에게 말하지 않아도,
    사슴이 나무에게 말하지 않아도,
    호수가 나무에게 말하지 않아도,
    새가 나무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저 모나지않은 몸짓으로 춤추는 초록안개 건너편에  
    멈춘동작처럼 서있는 각양각색의 존재들만으로 행복함이 있다
    푸드득 새 한 마리 거동을 시작하면 모든 새들은 깨어나고
    금새 숲은 새들의 노래로 충만해진다 물오리 떼가 뒤뚱뒤뚱
    제 자리 찾아오고 막 잡아 올린 은어보다 더 싱싱한 햇살이
    살며시 어깨 위에 앉기 시작하면서 숲은 바빠진다

    우리네 삶 가운데도 이런 아침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네 삶 가운데도 이렇게 고요한 넉넉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번거로이 입술로 관심을 그려내지 않아도 나와 너 사이에
    이른새벽 침묵하는 안개처럼 사랑과 이해가 스미고 흘러
    수채화같은 아름다움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