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유류분 제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75

그 여자 이야기.15


BY 손풍금 2004-11-24

산속의 밤은 고요하다기보다는 쓸쓸함이 넘쳐 비장했고
인적없는 산길은 두려움이 사방 고여 있었다.
밤하늘의 별은 저리도 빛나건만 길을 찾지못하고 어둠속에서 헤메고 있었다.
뒷산에서 들리는건지 앞산에서 들리는 건지
여기 저기서 짐승울음소리가 들리는 비좁은 길에 차를 대놓고 앉아있는 사람은
스케치북속에 4B 연필로 방금 그려낸 목숨이 붙어있지 않는 여자같았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곁에 단발머리의 소녀가 누워 있었고 그 뒷좌석엔 사내아이가 잠들어 있다.
연필로 그린것 처럼 혈색없어 금방 쓰러질 듯한 여자는 한 여름임에도 차창문을 열지 못한다.
잠시 오줌을 놓고온 사내아이를 따라 몇마리의 모기가 달려 들었고 차창문 틈에 복병처럼 숨어있는것 들이 가득해 꼭 닫은 차안은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여자는 표정이 없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고단한 시선을 두고있다.
잠든 아이들은 더위에 뒤척거렸고 여자는 책을 흔들어 아이들에게 바람을 일으켰다.
개울물이 가끔씩 별빛에 흔들렸다.
여자의 눈도 흔들렸다.

도시로 떠나느라 집 주인이 두고 간 오래도록 빈 집이였던 그집은
몸이 큰사람이 들어가 둘이 누우면 딱 맞는 방이 하나 있고 그 옆으로 골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골방은 방과 방사이를 잇는 벽이 허물어져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작은 몸집의 아이들 둘이 누울수 있는 방이있었다.
말이 좋아 집이지... 누군가 오래 전 살았던 반은 허물어 있었던 빈집.
그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셋이 살았는데 그때 참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멀리 떠났던 남자가 돌아왔다.
남자는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술이 취하면 낮이 밤이되고, 여름이 겨울이 되고, 바다가 육지가 되고,
어른이 아이로 보이고, 여자가 보리짚단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이였다.
행복이 순식간에 뒤도 돌아보지않고 달아나 버렸다.
누구도 그 남자를 보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여자의 몫이였다.
여자는 빌기도 하고 애원도 하고 달래도 보고 벼라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망가지는 몸이였다.
술취해 돌아온 남자는 마당에서 무언가 찾는 눈치였다.
여자는 긴장한다.
아이들도 긴장한다.

아이들을 뒷마당으로 내보낸다.
"저 은행나무밭을 돌아 둥구나무밑에 서있어.
만약에 엄마가 오지 않으면 은수네 집으로 가있어.
무서워 하지말고 노래 부르면서 가. 엄마가 곧 갈께."
아이들의 눈망울은 이미 슬퍼져 두려움으로 흔들린다.
그리고는 "엄마도 같이가. 엄마 맞으면 어떡해..."하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자는 너무 아프다.

아이들이 뒷문으로 나가고 여자는 앞문으로 나가 남자를 맞이한다.
남자는 여자를 쳐다본다.
늘 그랬듯이 남자는 여자를 향해 쳐다보는 눈길이 기분나쁘다고 한다.
늘 그랬듯이 쳐다보는 눈길이 기분나쁘기 때문에 버릇을 고쳐야 된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함부로 다루려 무기를 찾는다.
남자의 근육은 달빛아래 무섭도록 단련되어있다.
여자는 달빛아래 서있는데 온몸이 덜덜 떨린다.
남자는 짐승이 되어 버린다.
담도 대문도 없는 집, 마당에서 환한 달빛을 받고 남자와 여자가 서 있다.
여자는 마음 속으로 남자를 향해 욕을 한다.
(미친놈. 나쁜놈. 세상에서 제일 나쁜놈)
남자는 이미 미쳐있었고 나쁜놈이 되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다 떠나가 버린 외딴 시골동네에
빈집의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노인들이 숨죽여 담장위로 또는 소 외양간에서 비닐 하우스에서 숨어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 든 삽자루가 여자를 향해 내려친다.
여자는 피한다.
몇번의 휘두름에 여자의 다리를 쳐버린 삽자루가 부러진다.
남자가 다른 무기를 찾으러 갈때 동네 노인들이 여자를 끌고 숨는다.
없어져 버린 여자를 찾아 마당에 세워놓은 여자의 자전거를 타고 남자는 미친듯이 동네를 향해 달린다.
여자는 담배건조장에 숨어있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린다.
여자는 노인들이 붙잡는것을 떼내고 아이들이 있을 둥구나무밑을 향해 뛰어가는데 한쪽발 밖에 움직여지지 않아 손으로 끌고 간다.
남자가 탄 자전거가 둥구나무쪽으로 다가간다.
여자는 숨이 머리까지 차 올랐다.
'......훅'
남자가 둥구나무를 지나쳐 은점보로 향한다.
여자는 어둠속에서 남자를 향해 뛰어가는데 발이 땅에 닫는건지 몸이 날아가는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여자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다.
둥구나무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없다.
둥구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엄마"하고 아이들이 은행나무 밭에서 뛰어나온다.
넘어진다. 그래도 울지 않고 엄마, 괜찮아? 하고 달려드는데 '하느님 고맙습니다"하는 소리가 여자의 입에서 절로 나온다.
여자는 마당에 세워둔 차로 돌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남자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달린다.

시골의 밤 하늘은 별빛이 밝다.
별빛이 그리도 밝은데 사무치게 아픈사람이 있다.
시골의 밤 하늘에 달빛은 시리도록 곱다.
달빛이 그리도 고운데 사무치게 슬픈사람이 있다.

그래도 달빛, 별빛 가슴에 담아놓고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