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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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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장 가는 길.


BY 손풍금 2004-08-30

경운기를 타고 온 영감님이 복숭아가 든 상자를 내 옆 난전 틈새에 내려놓는다.
  뒤따라 온 할머니와 머리를 밤톨같이 반지르하게 잘 깎은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소년은 할아버지가 들고 온 복숭아 상자 앞에 선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저기 상점에 가서 할아버지하고 남은 복숭아 팔고 올테니까 여기 있는거 묻거든 한바가지에 이천원씩 받거라. 자리 비우지 말고.'하는 말을 내놓는것을 보니 소년은 할머니의 손자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몇 장을 꺼내어 소년의 손에 쥐어주며 '이 돈으로 점심 사먹거라. 빨리 올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움직이는 경운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소년을 두고 멀어져 갔다.
 
  소년은 복숭아는 멀리 두고 전봇대 옆에 기대서서 만화책을 읽고있다.
  다가가 복숭아가 담긴 바구니를 쳐다보니 홍조도 없이 시퍼런것이 맛이라곤 찾아볼수 없게 생겨 담겨져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아주머니 앞에는 잘 익고 말랑말랑한 복숭아가 광주리에 담겨져 팔려 나가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 가끔 소년 쪽을 쳐다봤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복숭아는 거의 다 팔려나가고 소년의 복숭아는 한개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니 묻는사람도 없었다.
  소년은 만화책을 보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 복숭아가 팔려나가면 만화책에서 눈을 떼고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나는 소년의 복숭아를 한바구니 사야겠구나, 생각하고 일어났는데 냉장고에 아직 남아있는 포도며 복숭아, 햇사과가 떠 올라 도로 앉고 말았다.
  점심 때가 지나고 물건 사러 온 손님을 받고 있다 소년쪽을 바라보니 그 옆에서 복숭아를 팔던 아주머니는 다 팔았는지 보이지 않았고 소년도 보이지 않고 시퍼런 복숭아만 천덕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어 흩어지고 있었다.
  소년의 복숭아를 담아놓는데 그 자리에 소년이 보던 만화책이 엎어져있다.
  귀한 가을 볕에 익어가는 농사걷이에 사람들의 일손이 바빠 시골장터는 한산하다.
  나는 소년이 놓고 간 만화책을 들춰보는데 소년이 뛰어와 '그 복숭아 한바구니에 이천원요.'하고 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눈이 초롱초롱 한것이 머리 쓰다듬어 주고 싶게 예쁘다. ' 몇 학년이니?'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중학교 이학년요'
' 좀 팔았니?'
' 아니요.'
'아빠하고 엄마는 바쁘신 모양이구나.'하는 나를 바라보더니 아까처럼 만화책을 들고는 전봇대옆으로 간다.
초등학교 오학년 정도밖에 안되보이는데 중학교 이학년이란다.
'점심은 먹었니?'
'아니요.' 하는데 입주위에 묻은 짜장면이 귀엽다.
  '너 짜장면 먹었잖어, 아줌마는 다 알어.'하니 멋적게 웃으며 주먹 쥔 손을 쓱 올려 입언저리를 닦는데 얼굴이 붉어지는게 복숭아도 소년의 얼굴처럼 예쁘다면야 금새 다 팔려나가겠다.
*
  6년 전
삼양리 교각을 건너 지금은 없어진 풍년 농약사 골목 담벼락에 리어카를 세워 놓고 빵을 구워 팔았다.
  낯선 곳, 낯선 동네에서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빈 집에 먼저 들어가는 길이 어린 마음에도 대책없이 쓸쓸하고 슬퍼 지지 않을까 싶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파하면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있으면 장사 끝나고 데릴러 간다고 했다.
  녀석들은 때때로 내가 빵을 굽는곳에 전학와서 새로 사귄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는데 멀리서 '엄마, 내 친구하고 같이 왔어'하고 뛰어오면 아이들 손에 빵을 쥐어주며 녀석의 귀에 대고
'엄마가 이러고 있는데 안 창피해?'하면 '뭐가 창피해, 하나도 안창피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날, 그러니까, 도서관에 가면 데릴러 간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엄마가 보고싶어서 보고 간다고 빵굽는 리어카로 왔던 그 날.
 
  잠시 비워놓고 문구점에 갔던것 같았다.
문구점에 갔다 급히 뛰어오는데  녀석이 리어카 안에서 어떤 아줌마와 말하고 있다.
  나는 걸어오다 멈추어 바라보았다.
  아마 빵을 사러온 것 같았다.
  맨날 신발주머니도 잘 잊어버리고 학교 가다 가방 안메고 갔다고 뛰어오는 제 앞가림도 잘 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녀석이... 손님에게 빵을 팔고 있다.
  손님은 두 봉지의 빵을 손에 들고 녀석은 손님에게 돈을 건네 받는다.
  인사도 공손히도 한다.
  손님이 돌아가는데 녀석의 환해진 얼굴이 거기가 어디인데 여기서도 다 보인다.
  멈추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뛰어오며
'엄마, 내가 빵 팔았어, 삼 천원이나 벌었어, 엄마, 이거 봐. 천원짜리가 세장이야'하고 귀여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데
'착하구나, 잘했다.'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향하는 분노인지, 불쑥 치밀어 오는 서러움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엾음으로 옮겨지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환해졌던 녀석의 얼굴이 
'엄마, 왜 그래? 왜 울어? 내가 빵 팔았는데 '엄마, 왜 울어, 하는데 제가 먼저 겁을 먹고는 울먹인다.
  '엄마가 여기 이제 오지 마라고 했지, 학교 끝나면 도서관으로 가던지, 도서관 가기 싫으면 집으로 가라고 했지,'하고 녀석의 등을 두들겨 패주었다.
녀석은 그 읍내를 떠날때까지 후로 내가 있는 빵굽는 리어카에 오지 않았다.
 
**
  나는 일어나 냉장고에 과일이 넘치더라도 그 소년의 복숭아를 사야겠구나 하는 결심이 섰다.
  그런데 소년이 있던 그 자리가 휭하니 비어졌다.
  '...언제 갔지?'
  앞에 영진엄마한테 물어보니 조금 전 내자리에 손님있을때 할아버지하고 할머니가 와서 도로 싣고 갔다고 했다.
  '그걸 언니 누가 사먹겠어요? 왜 그렇게 때깔이 안나지?
비 맞아 떨어진 복숭아인게 분명해. 그 꼬마한테 하나도 못팔고 짜장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고 할머니가 뭐라고 하시대.' 하는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한게 목이 아팠다.
바보 같이, 꼭 샀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