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더워.
부채를 부쳐보지만 더운바람이 불어 소용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민소매를 입었다던가.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던가...
샌달을 신은 발톱위로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여자의 다리는 참 하얗기도 했다.
쭉뻗은 다리를 따라올라가 가는 허리에서 시선이 멎고 등이 시원하게 파인 연두색 나시티위로 초록색 등모자가 참 세련되어 바라보는사람 상쾌하게 한다.
나도 저렇게 날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뻐라
아버지와 딸이 장바구니를 들고, 남자와 그의 아내도 장바구니를 들고, 아기를 업은 할머니의 뒤를 따르는 어린 손주가 "할무니 ,더워, 더워,나도 업어줘"하면서 할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가던걸음을 멈추고 칭얼거린다.
나는 심심잖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참견을 하기도 한다.
"아가, 할머니 힘들어, 아줌마가 껌줄께 "허리에 차고 있는 전대에 넣어 놓은 껌을 주니 받아 들고는 금새 조용해졌다.
내가 앉아있는 농협계단옆은 하나로 마트 입구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던 사람이 마트쪽을 바라보다 멈추고, 그 뒤를 따르던 다른사람이 또 멈추고 마트 내려가는 쪽을 바라보고 아까워라, 저를 어째, 한다.
한사람이 멈추니 두사람이 멈추고, 두사람이 멈추니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흘깃 흘깃 바라보고 순식간에 싸움 구경하듯 빙 둘러서버려 어떤이는 무슨일이냐며 까치발을 들고 소리질렀다.
이 더위에 무슨일인가. 나는 부채 부치는것을 멈추고 마트입구쪽으로 갔다.
열여덟, 열아홉은 되었을까, 갈래머리를 묶은 여학생과 교복바지를 입은 남학생이 마트에서 수박을 사가지고 나온모양이다. 아마도 나오면서 남학생이 들고있던 수박을 놓쳐 깨어버린 모양이다.
잘익은 수박이 계단 아래 빨갛게 쪼개져 놓여있다.
그 수박만큼이나 남학생 얼굴이 발갛다.
갈래머리 여학생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건지, "왜 거기서 끈을 놓아버려 수박을 깨느냐고"하고 같은말을 번복하며 소리친다.
남학생은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점점히 얼굴만 발개진다.
"왜 놨느냐고, 말해봐, 이 바보야."하는 남학생을 향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지나던 사람들이 겹겹히 둘러싸여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아무일도 아닌것을,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것을 저를 어째...
모르고 놓친 수박 얼른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될것을, 어차피 깨어먹을 수박인데 하는 생각이 들때, 갑자기 남학생이 바닥에 놓여진 수박을 들고 뛰어나온다.
마트옆으로 작은 철문이 있다.
그 철문앞에 반바지를 파느라 빨래줄에 걸어놓은것처럼 옷을 쭉 걸어놓았는데 남학생이 그 철문에 수박을 던진다.
순간 비명이 들리고 또다시 남학생은 계단으로 뛰어내려가 남은 수박한쪽을 들고와 철문에 으깨어 버린다.
옷장사 아저씨 깜짝놀라 옷버렸다고 "학생, 지금 뭐하는 짓이야"하고 달려온다.
비명을 지르던 여학생은 남학생가슴을 두드리며 "왜 네가 화를 내 이 바보야. 화낼 사람은 난데 왜 네가 화를 내느냐고"하며 남학생 가슴을 두드리며 욕을 하며 운다.
남학생의 얼굴이 얼마나 발개졌는지 차마 바라보기 민망했다.
더 바라보면 남학생도 금방 울것 같았다.
옷장사 아저씨, 옷 물어내라고 뒤에서 말한다.
나는 또 참견을 한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다른사람한테 피해를 입히면 안되지요."
수박을 집어던진 남학생 손등에서 철창문에 찍힌 상처가 깊어 피가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혀를 찬다.
"어린 놈이 싹수가 노래, 저깟일로 화를 내고 수박을 던지다니, 애시당초 저런것은 싹을 잘라내야지, 저런것과 사귀다간 평생 망친다." 누군가 그 남학생을 향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자리에 꿈쩍않고 서있던 남학생이 시장 반대편 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구경꾼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일도 아닌데 돌아가세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거지
울고 있는 여학생에게 비닐봉투를 건네주며 깨진 수박을 들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일부러 놓친것도 아닐텐데 그렇게 사람들이 보는데 면박을 주면 나 라도 화가 날거야, 상대방 입장에 서 생각해봐요. 얼마나 난감하겠어. 너무 속상해하지마요."하는데 자꾸만 그 남학생 손등의 상처에 가슴이 아파진다.
돌아가면서 얼마나 마음 아플까. 바보처럼.
여자친구가 그냥 뭐라 해도 씩 웃으면 될텐데, 그럼 그냥 넘어가는것을...
진짜 바보같이.
더위가 사라져버렸다.
왜 사람들은 작은일에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주는것일까.
조금만 배려하면 되는것을
정말 아무것도 아닌 , 가벼운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