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삼일을 밤마다 비디오를 빌려다 보거나 영화방송에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있으면서 시네마천국을 세번이나 보았고 CF에서 먼저 만난 스노우맨을 볼때는 커다란 눈사람하나 창가에 봄이 오도록 세워놓고 싶었다.
달력을 보니 일요일까지 휴일이다.
엊그저께 구정, 오늘은 금요일 영동장
얼마나 추운날인지 수도가 연이어 동파하고 있으며 거리는 물난리에 곧장 얼어버려 빙판이 되고있다는 뉴스와 9년만에 찾아온 설날 한파라고 요란스럽게 앵커들은 보도했지만 잠바를 입고 거리에 서니 약간 콧등만 시려웠다.
가방을 들고 놀이터를 가로질러 차가 있는곳까지 걸어가면서 겨울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는가. 혼잣말을 할때 내안에서 나온 하얀입김이 눈아래서 사라졌다 토해지고는 했다.
추운건가..?
영동가는국도는 명절 귀성길임에도 한적하다.
사람들은 뒷걸음질로 이만큼이면 보이지않겠지 하며 신발감추며 고향을 잊고자 하겠지만 아마 스스로의 마음속에 담아놓고 영원히 놓지 못할곳이 고향이라 한없이 외로움이 깊어질때 목놓아 그리워짐에 이만큼 거리를 두고 달려갈수 있는곳인지라 만만히 숨기고 싶어할지도 모를일이다.
내가 달리고 있는 큰길까지 남겨진 집에서 아궁이에 불지피는 냄새가 났다.
큰길차창을 통해 냄새가 피어오를때 창을 내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연기가 어디서 올라오는가 고개를 돌려 멀리 비어있는 논을 바라보기도 했고
산아래 낮은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것인지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잠깐 차선을 넘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주오는차는 하나도 없었는데 오분이 지나도록 깜짝놀랐던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고 있다 또다시 장작타는냄새를 만나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끔 마주오는 겨울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장터거리를 생각하며 달리며 멀리 기적소리도 함께 갔다.
돈이 될만한것이면 무엇이든 들고나오던 늙은어머니의 모습도,
가을볕에 말린 호박고지 한줄이라도 들고나오던 더 늙은 어머니도 ,
비가오면 검정비닐봉투를 머리에 쓰고 어깨에 투명 비닐을 질끈 동여맨 허리굽은 할머니도 그 어느장꾼도 나오지 않은 휭하니 빈장터.
나는 잠시 막막해졌지만 나온김에..라는 다짐으로 자리를 펴고 물건을 내렸다.
'오늘도 나왔네요.'하는게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였다.
'네.'하는데 맹추위가 얼굴을 치고 휘돌아 간다.
추위가 사람 꼼짝못하게 하는게 아니고 아무도 없이 장터에 혼자만 서있다는 그 사실하나가 나를 움추리게 하고 있었다.
햇빛이 간간히 내가 서있는곳까지 내려오는가 싶으면 금새 음지를 만들었고
나는 손난로를 무릎위에 얹어놓고 움직임없이 앉아있었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 만들면 안춥겠다 싶은 심정으로 거리에서 겨울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에 그나마 보이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귀해진다.
며느리가 이번 명절에 사올까봐 화장품이 떨어졌어도 기다렸는데 며느리는 오지않았다고, 그래서 사러왔다고 너무 추워서 애기엄마가 혹시 안나왔으면 어쩌나 했는데 나와서 다행이라 하며 한손님이 가고 삼십분만에 또다시 찾아온 손님도 똑같은말을 내놓았을때 그들의 주름진이마가 거친손등이 노여움과 어찌할수없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홀로 다독거리고 있음이 전해졌다.
그로 부터 두시간,
새로 구입한 책을 짧은시간안에 다 읽고 사진작가가 찍어올린 사진을 한참바라 볼때 또 한손님이 왔다.
도시에서온 형님이 화장품 사라고 부엌씽크대서랍에 봉투를 넣고 갔다며 언손을 내놓는데 나는 내가 화장품 장사하길 참으로 잘했구나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꼭 필요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디선가 '툭'소리가 가볍게 들린다.
어디서나는 소리일까 두리번 거리는데 또 들리는 소리
'툭'..툭..(어.머.나.)
바구니에 담아놓은 화장품용기가 길위에서 얼어 깨지고 있었다.
스킨병이 터지고 로숀병이 터지고.
나는 하나도 안추웠는데. 사람들이 춥지요?하는 염려를 줄때도 정말로 안추웠는데
이젠 안추워요. 했을때.
보일러 기름 떨어질일 이젠 없으니까...했던 내 친구의 말처럼 정말로 그래서 안추운것이였는지 모르지만 화장품에게는 미안한일이지만
나는 정말로 안추웠는데 달력을 바라보면서도 멀뚱하게 봄인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