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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줄 알았는데...


BY 손풍금 2004-01-26

내리 삼일을 밤마다 비디오를 빌려다 보거나 영화방송에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있으면서 시네마천국을 세번이나 보았고 CF에서 먼저 만난 스노우맨을 볼때는 커다란 눈사람하나 창가에 봄이 오도록 세워놓고 싶었다.

달력을 보니 일요일까지 휴일이다.
엊그저께 구정, 오늘은 금요일 영동장
얼마나 추운날인지 수도가 연이어 동파하고 있으며 거리는 물난리에 곧장 얼어버려 빙판이 되고있다는 뉴스와 9년만에 찾아온 설날 한파라고 요란스럽게 앵커들은 보도했지만 잠바를 입고 거리에 서니 약간 콧등만 시려웠다.
가방을 들고 놀이터를 가로질러 차가 있는곳까지 걸어가면서 겨울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는가. 혼잣말을 할때 내안에서 나온 하얀입김이 눈아래서 사라졌다 토해지고는 했다.
추운건가..?

영동가는국도는 명절 귀성길임에도 한적하다.
사람들은 뒷걸음질로 이만큼이면 보이지않겠지 하며 신발감추며 고향을 잊고자 하겠지만 아마 스스로의 마음속에 담아놓고 영원히 놓지 못할곳이 고향이라 한없이 외로움이 깊어질때 목놓아 그리워짐에 이만큼 거리를 두고 달려갈수 있는곳인지라 만만히 숨기고 싶어할지도 모를일이다.

내가 달리고 있는 큰길까지 남겨진 집에서 아궁이에 불지피는 냄새가 났다.
큰길차창을 통해 냄새가 피어오를때 창을 내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연기가 어디서 올라오는가 고개를 돌려 멀리 비어있는 논을 바라보기도 했고
산아래 낮은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것인지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잠깐 차선을 넘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주오는차는 하나도 없었는데 오분이 지나도록 깜짝놀랐던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고 있다 또다시 장작타는냄새를 만나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끔 마주오는 겨울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장터거리를 생각하며 달리며 멀리 기적소리도 함께 갔다.

돈이 될만한것이면 무엇이든 들고나오던 늙은어머니의 모습도,
가을볕에 말린 호박고지 한줄이라도 들고나오던 더 늙은 어머니도 ,
비가오면 검정비닐봉투를 머리에 쓰고 어깨에 투명 비닐을 질끈 동여맨 허리굽은 할머니도 그 어느장꾼도 나오지 않은 휭하니 빈장터.

나는 잠시 막막해졌지만 나온김에..라는 다짐으로 자리를 펴고 물건을 내렸다.
'오늘도 나왔네요.'하는게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였다.
'네.'하는데 맹추위가 얼굴을 치고 휘돌아 간다.
추위가 사람 꼼짝못하게 하는게 아니고 아무도 없이 장터에 혼자만 서있다는 그 사실하나가 나를 움추리게 하고 있었다.
햇빛이 간간히 내가 서있는곳까지 내려오는가 싶으면 금새 음지를 만들었고
나는 손난로를 무릎위에 얹어놓고 움직임없이 앉아있었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 만들면 안춥겠다 싶은 심정으로 거리에서 겨울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에 그나마 보이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귀해진다.

며느리가 이번 명절에 사올까봐 화장품이 떨어졌어도 기다렸는데 며느리는 오지않았다고, 그래서 사러왔다고 너무 추워서 애기엄마가 혹시 안나왔으면 어쩌나 했는데 나와서 다행이라 하며 한손님이 가고 삼십분만에 또다시 찾아온 손님도 똑같은말을 내놓았을때 그들의 주름진이마가 거친손등이 노여움과 어찌할수없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홀로 다독거리고 있음이 전해졌다.

그로 부터 두시간,
새로 구입한 책을 짧은시간안에 다 읽고 사진작가가 찍어올린 사진을 한참바라 볼때 또 한손님이 왔다.
도시에서온 형님이 화장품 사라고 부엌씽크대서랍에 봉투를 넣고 갔다며 언손을 내놓는데 나는 내가 화장품 장사하길 참으로 잘했구나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꼭 필요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디선가 '툭'소리가 가볍게 들린다.
어디서나는 소리일까 두리번 거리는데 또 들리는 소리
'툭'..툭..(어.머.나.)
바구니에 담아놓은 화장품용기가 길위에서 얼어 깨지고 있었다.
스킨병이 터지고 로숀병이 터지고.
나는 하나도 안추웠는데. 사람들이 춥지요?하는 염려를 줄때도 정말로 안추웠는데
이젠 안추워요. 했을때.
보일러 기름 떨어질일 이젠 없으니까...했던 내 친구의 말처럼 정말로 그래서 안추운것이였는지 모르지만 화장품에게는 미안한일이지만
나는 정말로 안추웠는데 달력을 바라보면서도 멀뚱하게 봄인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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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벌레 2004-01-26
    봄인줄 알았었는데 아직은 마니 추운 날이었습니다.
    님의 모습을 이곳에서 볼수 있다는게 다행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본듯한 모습을 설마하면서 여러날을 님의 훈기나는 삶을 이곳에서 묵묵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리도 눈살미가 없는가 하면서 자신을 나무라고 싶기도 하고, 왠지 반갑고 고맙고 함께 할수 있다라는게 .....
    이렇게 추운날 자리에서 묵묵히 책을 읽을수 있다는 님의 훈훈한 맘이 가슴에 찡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봄인줄 알았는데 료손과 스킨들이 담긴 그네들의 모둥아리는 아직은 추웠는가 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모습으로 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구 출판 기념 추카그리구요....
  • 농부아지매 2004-01-26
    안녕하세요?
    날씨가 엄청 추운데도 여전히 장터에 나오시네요.
    처음 인사드리지요?
    며칠전 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결혼한후 책 읽기가 힘들었는데, 단숨에 읽어내리만치 잔잔하게 마음을 끄는 글이 좋았습니다.
    운전조심하세요. 님이 영동장에 나오는 그날 10년무사고 울남편도 처가집가는 길에 시침떼고 멀쩡한 아스팔트위에서 앞차를 들이받고 말았네요. 멀리서 붉은 신호등보고 서서히 와서 사뿐히 설줄 알았는데, 브레이크가 안들을 만큼 살짝 얼어버린걸 몰랐던거예요. 시골길은 아직도 많이 위험하잲아요. 조심조심하세요.
    전 경기도 이천 장호원장에 가끔 가는데, 님을 알게되면서 그분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파는 화장품도요. ㅎㅎㅎㅎ
    건강하시고 힘내시고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 우영 2004-01-26
    영동장에 나오셨다구요...쯧.
    연락이나 해볼걸..우리가족 이번 명절땐 작은아이 등살에 눈구경 가자고 해서 나선길이 무주를 거쳐 수원 민속촌을 해서 잠실 까지 다녀왔는데 .......
    오는 길에 영동에 들릴걸..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무척 추운 열휴였습니다..그 와중 에서도 님은 책을 읽으며 할일을 하셨구려..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구리무들이..글세..그렇게 추웠나 보내요..우린 그냥 우리끼리만 춥다고 말만 하면서 추운것이 무엇인지 느낌없이 시간 보낸것이 못내 부끄럽습니다...건강하시구 ..꼭 뵈러 갈게요..ㅎㅎ
  • 산골향 2004-01-26
    사랑의 향기를 파는 님의 향기가 더 아름답습니다. 님의 글 읽기를 거듭할수록 님의 풋풋한 향기에 흠뻑 젖시곤합니다. 오늘같은 날은 님을 만나보고싶어집니다. 삼겹살에 쐐주를 걸치며...
  • 손풍금 2004-01-26
    함께 군불땐 아궁이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야기 듣고 있는듯,,, 참 감사합니다. 산골향님, 우영님, 농부아지매님, 풀벌레님, 읽어주신 님들, 올한해 기쁜일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밥푸는여자 2004-01-27
    풍금아..내 메일 주소 두고갈게 메일로 편지 한통 넣어줘 이유? 물음 죽음이쥐^^..올해는 춥지 않았음 좋겠다 ..logosgarden@yahoo.co.kr
  • 느티나무* 2004-01-27
    손풍금님! 요즘 자주 글 올려주셔서 반갑고 참 좋습니다*^^* 아컴에 오면 예전엔 속상해방에 먼저 들렀는데, 이젠 에세이방과 작가방으로 먼저 향합니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부지런히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날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님은 꼭 시인같습니다. 님의 장터 이야기 계속 들려주실거죠? 제 마음에 군불을 지펴주시는 사랑방 이야기말입니다~~.
  • 유나 2004-01-27
    명절날 이집 저집 보일러가 돌아는 가는데 방이 냉골이라고 난리던데 금욜날 움직이셧으니 그땐 아적 추웠을텐데.
    명절에 화장품을 예쁘게 정리해서 작은가방에 넣어놓구 컴퓨터책상에 놓고는 그냥 갔었답니다. 애낳구 나니까 잊어버리는 게 어찌나 많은지 원! 대전쯤 가다보니 에구 화장품가방을 통째루 놓구왔네요 글쎄! 시댁에 도착해서 토욜쯤 시엄니 사시는 시골집에 잠깐 들르러 갔는데 가는길에 문열은 가게에서 콤팩트만 사려다가 핸드크림이랑 화장품 떨어질때 쯤 됐다싶어서 사서 드렸지요. 그땐 이쁘지 않은 맘두 있었는데 풍금님 말씀듣고 잘했다 싶은 쑥스럽고 부끄런 생각이드네요. 맛난 글 따신 글 잘 먹구 갑니다.
    복 많이많이많이 받으세요 꾸~~벅 ^6^
  • 지금처럼만 2004-01-27
    안녕하세요?
    첨으로 님께 글을 올립니다.방송도 보고, 글도 읽고..
    소리없이 다녀가곤 합니다..저도 님의마음 압니다.얼마나 힘들까?
    그치만, 꿋굿히 이겨나가다 보면 밝은햇살이 님을 반겨 주실겁니다..
    용기잃지 마시고 행복하세요..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