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둔 단대목이라 시장이 모처럼 활기차다.
세모에 이천원하는 두부장사앞에 사람발길 끊이질 않고
가래떡 가지런히 썰어놓아 채곡채곡 올려놓은 떡집앞도 붐빈다.
어린 아이들이 먹는 튀밥강정앞에서 과자를 사려 어른들이 몰려있는것도 재미있다.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뜨거운 국물이 떠올라 모처럼 짬뽕생각이 간절해 점심을 먹으러 중국집 문을 여니 테이블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게 빈자리가 없다.
합석해 앉은자리는 할머니와 손주인듯한 어린이가 마주한 자리다.
할머니의 짜장면그릇을 넘 보면서 급하게 먹는 손주녀석에게
"천천히 먹어라. 이번 설에 아빠오면 그때 또 한그릇 사줄껴"하는 할머니의 손등이 낡은 가죽의 편린처럼 서럽다.
어린 손주를 챙기는것이 밤이면 할머니와 어린아이가 불밝히는 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자리도 할아버지와 어린아이다. 그 뒷편도. 그 옆편엔 이국여인과 한국남자와 눈이 똘망한 어린아이가 짜장면을 먹는게 맛있다.
시끌 벅적한 중국집에 들어와 앉아있으니 장거리에 펴놓은 내 물건앞으로 기다려도 오지않던 손님들이 행여 물건 사러 몰려와 주인을 찾는게 아닐까. 싶은 조바심으로 나또한 급하게 짬뽕을 먹고 물을 넘기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서니 흐릿했던 하늘에서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고 있다.
장터가 어수선해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빨라지고 명절 음식 앞으로 발길이 모아지고 있다.
앞자리에 마주한 옷장사 아저씨. 쌓인눈을 털이개로 털어내면서
"어서 빨리 날이 풀려야지.."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같으면 입는옷이 귀해 명절을 앞두고 사입었는데 요즈음은 흔한게 옷이라 대목도 없고, 사람 죽것네.. 하는데 공산품장사들은 한결같이 손님기다리며 내리는 눈에게 모든 탓을 돌린다.
눈이 오면 사람이 더 안나오지. 이 넘의 날씨까지 사람을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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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뭐꼬, 땅콩 아이가...땅콩...
갈길은 멀고 , 땅콩은 억수로 남았고
에잇. 모르겠다. 한바가지에 천원, 천원입니다."하는 땅콩장사 뒷꽁무니를 따라가니 해지는 저녁 하늘처럼 마음이 서운해진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화장좀 하고 있어요. 그래야 화장품이 팔리지, 곱게 하고 있어야."하며 말을 내려놓을땐 내모습이 초라했구나. 하는 게으름에 침잠했고 화장품에게 미안해 할때 전화벨이 울렸다.
올해부터 그동안 소원했던 소설을 쓰기위해 조심스레 작품을 보내드리며 문하생이 되고싶다 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부터의 화답이였다.
북적거리는 장터거리를 벗어나 환하게 열리는 거리를 뛰기시작해서 콩콩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처음으로 만난 골목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역에서 내려 종각으로 오십시요. 기다리겠습니다"했을때
"좋은소식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해보겠습니다"했다.
일과 병행해 공부를 하려면 좀더 건강을 지켜야 할것 같아서 아이와 검도를 시작했던 얼마전부터 나는 내나이가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골목입구에 서서 장터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저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더듬어 찾아내고, 내 마음속에 잠겨 빗장을 풀지 못한 이야기를 ,
아다다의 몸짓으로, 동구밖 살풋한 분녀의 속삭임으로 내리달리며,
메밀꽃피는 봉평장의 허생원이 동이에게 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를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고요하게 들려주고 싶다.
"눈이 오는데 물건은 덮지도 않고 구루무장사는 어디갔노"하며 두리번 거리는 늙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