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좌판에 앉아 바라본 그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스쳐 발끝으로 떨어진 햇살을 가지고 몇시간채 땅밟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면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키작은 그 남자는 쉬흔살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고 했다.
그남자의 아내는 키가 훌쩍 커 여름날 잎이 큰 후박나무처럼 시원해보였는데 벌써 몇장째 보이지를 않았다.
그 남자가 오늘 똑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장꾼과 싸우는것을 보았다.
생전에 남한테 큰소리한번 낼수없을것 같은 그남자는 거칠게 다가서는 상대에게
밀리면서 큰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철이르게 진열된 장갑과 목도리가 싸우고 있는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연보랏빛 스카프가 비웃듯 미끄러졌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릴 생각도 없이 싸움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 남자가 잘한일이라 해도 이미 승산없는 싸움으로 지고 말것이라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면서 그남자는 등뒤에 대고 욕하는 상대를 피하며 장갑과 목도리를 탁탁 털고 땅바닥으로 떨어진 스카프를 주워 올려놓고 자리에서 없어지고만다.
내 좌판옆에서 무주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한여자가 말한다.
'그래도 장사하는것 보면 신기해요. 요즈음 저남자 부인 나와요?'
'아니요. 안보이던데요.무슨일 있나요?'
'무슨일은... 무슨일이야 있겠어요. 하긴 일은 일이지.. 저사람 자식들이 갚을 능력도 없이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써서 정신도 성하지 않는 내외가 어지간히 속썩는 모양이던데..'
여자는 무주행버스가 오자 피해있는 그남자를 바라보며 혀를 차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점심을 거르고 약간의 허기가 느껴져 붕어빵을 사먹으러 가다
노란 대국과 소국이 올려져있는 꽃파는 손수레옆을 지나 그 남자의 아내가 걸어오는것을 보았다.
그여자의 시선은 오로지 그남자가 팔고 있는 장갑과 목도리 좌판쪽으로만 고정시킨채 양옆으로는 세상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다는듯 걸어오고 있었다.
자리에 없는 남자를 두리번 거리며 찾다 케이티지국옆에 서있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는 좋아서 활짝 웃는다.
활짝 웃는 여자의 얼굴위로 남자의 발치에서 놀던 햇살이 걸렸다.
남자의 우울한 얼굴로 봐서는 좀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듯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여자의 눈은 작아지고 금방 울듯 볼살이 내려간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낀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쯤에있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나는 그모습을 바라보다 내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느끼고 깜짝놀라 뒤돌아섰다.
그남자와 그 여자가 만난곳은 정신병원이라고 언젠가 내 단골손님이 이야기 해주었다.
키가 훌쩍크고 올곧은 몸을 지닌 그여자는 아주 예쁜여자였는데 결혼하고 남편한테 습관적인 폭행을 당하다 미쳤다고 했다. 그래서 미.친.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버려져 감금된곳이 정신병원이였다고..
얼마나 아팠으면 미쳤을까..
얼마나 맞는게 아팠으면...
이미 결혼한채 부인이 떠나버린 그 남자도 정신이상이 되어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두사람은 서로 깊이 깊이 아껴주어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남편의 두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이제는 성장한 아이들이 그 어미맘을 흩어지게 하는 모양이였다.
그 여자는 그남자에게 붕어빵 사달라고 해서 안사주면 쉽게 삐쳐버리고
신발사달라고 해서 안사줘도 삐치고 화장품 사달라고 해서 안사줘도 금방 삐치던 그 여자가 요즈음은 무엇도 사달라고 하지 않고 안사줘도 골부리지 않는다고
그 남자가 자랑했는데 그 말이 더 가슴 아리게 했다.
그 여자는 무슨생각을 하면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금방 울음을 쏟아놓을듯하며 위로해주었을까.
여자는 남자에게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걸어오며 연신 호호 불며 뜨거움을 식힌다.
남자앞으로 가서 남자의 입에 대어준다.
남자는 무심하게 커피를 마시다 깜짝놀란듯 뜨겁단 표정을 짓자 그여자는 몸을 흔들며 웃어대다 커피를 쏟는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에 꿀밤을 준다.
여자는 골부린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신용카드 돈 안갚으면 아이들도 잡혀가나요?'하고 더듬거리며 묻던 그 남자의 말이 생각난다.
남자는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을 받고 여자는 옆에서 무릎을 굽히며 남자가 들고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양주먹을 꼭 쥐더니 귀를 갖다 부치며 얼굴을 들이민다.
전화를 끊은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하니 여자는 말잘듣는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의 손을 잡는다.
아직 그 남자의 발치에서 놀던 해는 이만큼이나 남아 까치밥으로 남아있는 장터거리의 감나무 가지에 걸린 주홍빛감을 더할수없이 투명하게 만들고 소근거리고 있는데 남자는 리어카를 끌어다 물건을 싣고 장을 접는다.
허리가 길어 뒤에서 미는것도 엉거주춤한 그여자는 앞서 리어카를 끄는 남자를 자꾸만 불러 뒤돌아 보게 한다.
지나가는 이는
'신랑좀 그만 불러, 집에가서 얼굴쳐다봐도 되잖아, 그렇게 좋은가'하고
그 여자는 키득,키득, 입을 가리고
그 남자의 표정없는 얼굴은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