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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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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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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년이


BY 손풍금 2003-11-06

부지런히 서둘러도 아이들 학교갈 시간이나 되야 일나가게 되는데
다른 장꾼들에 비해 내 행동은 해가 중천끝에 달할만큼 게으를 따름이다.

장터에 나갔더니 지난겨울을 끝으로 보이지 않던 톱장사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내자리에 톱과 망치를 깔아놓으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는 다른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
할아버지 앞으로 가서 '안녕하세요. 할아버지'하자
'으응..'하시며 또 딴데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여기 제자리인데요. 이렇게 펴놓으시면 저는 어디가서 장사 한데요?'

'웃기는 소리 하덜말어. 내가 여기서 오년째 하는건디 농사일 끝나면 겨울마다 오잖여.여긴 원래 내자리여'하고 발끈 화를 내신다.

'할아버지는 겨울만 하시잖아요. 전 일년내내 하는건데...'

'그런소리 하덜마. 난 이젠 얼마 살사람도 아녀.
내가 애기엄마보다 나이가 먹었어도 갑절은 더 먹었을텐데 내가 일을 해야 얼마나 더 하것어.
 나 일하다 죽거던 그때 혼자 실컷 햐..'

'아이고, 할아버지..'웃음이 나오는통에 뒤에 할말을 잊어버렸다.

'지금 기력으로 봐서는 할아버지보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죽겠는걸요. '하자 화난얼굴을 하고 계시던 할아버지도 웃는다.

'그러지 마시고 그럼 자리를 조금 좁혀주세요. 저도 물건을 덜 필께요. '하자
'그랴. 그럼 그렇게 햐.'하곤 그제서야 적대감을 놓아버리고 친근하게 말을 하신다.

보는사람마다
'자리가 왜그렇게 바뀌었지? 앉을자리도 없네. 저 할아버지는 누구여?' 하면
내쪽으로 귀를 열어놓으신건지 나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여긴 옛날부터 내자리였어. 뭔소리들 하는겨?' 하면 톱가는 쇠소리가 더욱 삐걱거리고 높아져간다.

멀리 보이는 종탑은 감나무 뒷편으로 햇살을 받아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 한번 내어준다면 더없는 걱정도 한순간 녹아내려가지 않을까하는 가을하늘아래 농협계단 세째자리를 빼앗기고 물건놓을 자리도 좁고 서있을만한곳도 마땅잖다.

봄, 여름내내 들판에 나가 허리한번 펴보았으려나 하던 고된모습들이 노동끝의 수확으로 가벼워지는 걸음걸이로 가을걷이 끝나고 집안곳곳 손보느냐 녹슨톱과 연장을 들고 나오는 아저씨 뒤를 따라 어깨를 맞춰보느라 빠른걸음으로 걷던 아주머니가 내 좌판앞에 서성거리다 앞서가는 아저씨를 부르며 앉아
"이봐유,나 이 구루무 하나 사줘봐유, 이양반은 인정머리가 없어서 평생가야 이런거 하나 사들고 들어올지 모르지, 옆집 순자네는 순자아버지가 철따라 사주고  가을걷이 끝나면 농사짓느냐 애썼다고 옷도 사준다고 하더구먼, 이것좀 하나 사줘봐유"하고 푸념 섞인 목소리로 옆에서서 딴청 피우는 아저씨 바지자락 잡으며 말을 하자
"내 그런거 발라서 여뻐진다면 사주지, 왜 안하던 짓은 하고 그랴, 어여 일어나, 소쿠리사러 가야 한다며, 그런거는 젊은새닥들이나 바르는겨, 이 여편네가 생전 안하던짓을 하고 그랴, 뭘 잘못먹었나"하고 앉아있는 아주머니는 두고 혼자 앞서간다.

아주머니 민망한듯 아니면 화가난듯 아니면 체념한듯,
"내 다음에 사러올께유, 미안해유"하고 일어서는데 "끙"소리가 나는게 영 아주머니 보기 내가 다  죄송스럽다.
나는 무슨말도 못 해드리고
"네, 안녕히 가세요"하는데

그뒤를 따르는 벌건 대낮에 쌍코피 흘리고 가는 아저씨 , 잠바는 어깨에 걸쳤는데 티셔츠의 팔 한쪽은 찢어져 어디로 가 없어지고 바지한쪽은 둘둘말아 걷어 올려져 말로만 듣던 쌍코피를 보고 말았는데..
노인들도 엄마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코를 쥐고 역겹게 술냄새를 풍기는 쌍코피 아저씨를 피하는데
나는 그모습을 바라보다 狂년이처럼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수세미를 파는 아저씨는 양쪽 발가락이 다 절단되었는데 맨발로 다니면서 '수세미 팔아주세요. 이러고도 삽니다.수세미좀 팔아주세요. 발이 시려워요.'한다.
그뒤로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는 허리가 구십도로 구부러져 얼굴을 도통 볼수 없는데 땅만 바라보고 가다가 떨어진 빵조각을 주워 가방에 집어 넣는데 몸 움직임도 어려워 오분정도 걸리고
또 걷다가 빈비닐봉투 주워 가방에 넣는데 오분,
다 찢어진 신문지 주워 집어넣는데 또 몇분 , 

쳐다보는 내 허리가 더 아프고 힘들다.

나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갈곳없어 서성거리는 퐁네프의 연인처럼 걸인이되어 그 뒤를 따르고 싶다.

걸인도 아무나 걸인이 되는게 아니네.
되고 싶은 거지도 못되는 이 거지같은 세상.
차라리 狂년이나 될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