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여기 제자리 인데요. 여기 앉으시면 안되는데요"
"응? 처자는 누구여?"
"여기 제자리라구요"
"이거 살라구? 그려, 이거 사가봐. 괴기 한칼 잘라 넣고 이 고추 통새미로 넣어 푹푹 끓이며 맛나지, 어여 사가"하시며 침도 삼키신다.
"그게 아니구요. 할머니, 여기 제자리라 일어나셔야해요"하니
"장사하러 왔어? 장사하러 왔으면 물건을 펴야지, 왜 그렇게 서있어 추운디..
거기 서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 내 옆으로 쬐끔 피해줄테니께"
움직이기도 힘이 드신지 앉은채로 바닥에 깔은 신문지를 옆으로 당긴다.
귀가 어두우신지 손님이 와도 다른 말씀만 하신다.
할머니 연세는 아흔 둘이라고 했다.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듯 하얀 실타래모양 윤기잃은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은비녀대신 나무젓가락을 잘라 꽂으셨다.
"할머니 이 동부 얼마예요?"하고 손님이 물으니
"이 콩까서 괴기놓고 폭폭 끓이면 맛있어"하신다.
"할머니는 무슨 고기국에 콩을 넣어요. 이 콩 얼마예요?"하고 다시 물으니
"내가 이 콩 까느냐고 어젯밤 잠도 하나 못잤어"하신다.
"그러니까 이 콩 얼마냐구요?"
"이 고추 사갈텨? 밥할때 밀가루넣고 쪄서 무쳐먹으면 맛있어"
"아이고, 답답해,하며 발걸음을 돌리니
"사가지도 않으면서 왜 흉을 보고 그려, 나쁜여편네." 하고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린다.
쉬지않고 풀어내는 할머니의 말을 듣느냐고 한쪽귀는 열어놓고 있는데 손님이 앞에 앉는다.
손님이 화장품을 고르는데 할머니 내쪽을 쳐다보다가
"호박이나 사가서 식구들 맛나게 먹일 생각은 안하고 얼굴에 쳐바를 생각이나 하니 그거 쳐바르면 여쁘기도 하것다"하시며 노여운 말투로 소릴 지르신다.
(뜨아~~)
"할머니, 왜 손님한테 그런 말씀하세요?" 하고 당황해 말을 막자
"쳐발라도 그게 그거여, 그런돈 있으면 살림에나 보태지,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저런거 하나도 안발라도 이렇게 오래 살면서 못났다는 소리는 안들었어.."
나는 손님의 눈치를 살피며
"어휴, 죄송해요,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조금..이해하세요"하고 말끝을 흐리자
손님은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요. 할머니 우리 옆동네 살아서 잘 알아요. 대단하신 양반이예요. 지금도 집안일 다 하시고 혼자 사시는데 저렇게 벌어다 보일러 기름넣고 세금내고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한바퀴 다돌고 텃밭일구며 푸성귀파다 내팔고... 그런데 성질히 하 별나서 며느리쉬는꼴도 못보고 자식 결국 다 밖으로 내 보내고 외롭게 사시니 ..그 많은 재산 가지고 있어도 쓸줄도 모르고 먹을줄도 모르니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저 연세되어도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신지 셈하는데도 십원하나 안틀려요.
아무튼 대단한 할머니세요"하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지금 내 욕하는겨? 너 가만히 보니께 진영이 각시 맞지? 저년이 하라는 살림은 안하고 누구 흉보고 다니는겨"하고 지팡이를 휘두르신다.
손님은 혼비백산하여 저만큼 달아났고
"아이고 할머니, 귀 안먹었어요? "하는데 갑자기 휘두른 지팡이에 가슴이 얼마나 뛰던지 딸꾹질이 연신난다.
"가서 물한사발 들이키고 이리 어여와 내옆에 앉아 구루무나 팔어"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인자하게 웃으시는데 지은죄가 많은 나도 할머니가 갑자기 무서워 진다.
ㅡ.ㅡ;
나는 진담 반, 장난끼 반으로 "할머니. 무서워요."하고 다가가니
"뭐라고?? 호박 달라고? 내 새댁이가 사간다면 세덩어리에 천원줄텨, 두덩어리에 천원인데 세덩어리에 천원줄텨"하고 봉지에 담는다.
할머니의 달마상을 닮은 얼굴을 다시 바라보니 금새 마음이 풀어져 다정히 느껴져
"할머니, 사실 귀 안먹었지요?"하는 내말에
빙긋이 웃으시다가
"그려."하시는데...아이고.. 무시라..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