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살이 아무리 따사롭다해도 몇번씩이나 고개가 곤두박질치면서 잠이 든다는것은 바라보는사람조차 안쓰러워 깨우기조차 미안한 일이다.
"아줌마 이 올갱이 얼마예요?"
"네?.. 올갱이 한사발 육천원, 참, 어제가 육천원였지, 오천원유. 전에 비가 많이 올때는 잡기가 힘들어 비쌌는데 요즈음은 좀 내렸슈, 된장풀고 아욱놓고 해서 푹푹 끓여먹으면 맛있쥬"
언제 잠도둑을 했었느냐 싶게 아주머니는 손님을 향해 말을 쏟는다.
올갱이 두사발이 팔려나가고 얼음위에서 팔딱팔딱 뛰는 민물새우도 한사발 호박한덩이와 팔려나가고 아주머니는 다시 무릎을 세우고 앉아 턱에 잠을 고인다.
싸온 도시락을 펼쳐 모여앉아 먹으면서
"몇시에 주무세요?"하고 물으니
"집에가면 밤 열시되쥬.."
"그렇게 늦으세요?"
"대청댐 건너에 집이있어서 한시간을 기다려야 배가 오는디 그 배타고 집에 가야 하거든요
이것저것 집안일 하다보면 열두시야 되야 방바닥에 등붙이지 않것슈.
새벽 세시에 일어나 동네에서 잡아올린 민물새우 받아오고 중앙시장으로 가서 네시부터 올갱이 받아와야 해유. 그리고 대전기차역에 가서 시골서 팔러가지고 오는 채소를 받아내려면 통일호를 타고오는 아주머니들 물건받으러 뛰어가야하고..그럭저럭 하다보면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그래서 시장으로 들어오는거지유. 여기오면 한 일곱시 반은 될거유, 그러니 잠이 늘 부족해유"
...네
새댁은 우리보다 젊으니께 한살이라도 덜먹었을때 열심히 해유.
온몸 어디 하나 안쑤시는데가 없다니께, 겨울은 다가오는데 큰일이네.
.....네..
열심히. 열심히 해야겠지요.
그런데 사실 말이지 아주머니들 말씀을 듣자면 나는 공기놀이 하고 앉아있는듯 편하다는거다.
올봄 까지만 해도 물건을 하러 중앙시장으로 갔었다.
길을 찾아 나선다는것이 내겐 영 취미 없는일이라 아는길도 놓치기 일쑤였고
절절매다 뒤에서 클락션한번 울려대면 옆길로 새어버리고 마는 나는 번잡한 시내길은 울고싶을만큼 나서는게 싫었다.
복잡한 시장거리에 차를 주차해놓고 물건을 하러 갔는데 물건을 다해가지고 와보니 주차딱지가 붙여있었다.
눈물이 핑~ 돌아 앞이 금새 흐릿해졌다.
물건을 들고 따라온 종업원이 나를 슬쩍 바라 보더니
"아주머니가 사는동네가 톨게이트옆이라고 하셨지요?
그곳에 화장품 도매상이 있어요.
우리는 손님하나 잃지만 이제 여기로 오지말고 그곳에서 하세요"하고는 약도를 그려주었다.
약도를 받아들었는데 저절로 허리가 반이나 꺽이게 구부려졌다.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그리고는 금새 눈물이 걷어졌다. (히히히)
이젠 물건 하는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하고 오분거리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에이구.. 등신.
가는 장터마다 이웃한분들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 아이들 아침밥 챙겨주면서 함께 집을 나설수 있는 여유도 있다.
장터마다 단골손님들이 마음을 전하며 찾아와준다.
가까스로 열심히 일한덕에 남에게 신세진일들이 점점히 줄어들고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 지고 있었다.
올여름에는 얼마간의 보증금을 마련하여 옥탑방에서 이층으로 내려왔다.
얼마전 해결하지 못했던 일하나가 마음을 온통 조여오고 있었다.
지친탓인지 손끝하나 움직일 기운도 없이 앉아있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보다 더할때도 버텼는데..
지금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분명히 어딘가 길은 있을것인데..
내가 이렇게 기운을 잃으면 안되는데..
집 보증금.
한참을 월세로 살다보니 내게 얼마간의 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주인집에 올라가 월세로 올려줄테니 보증금을 좀 빼주었으면 했다.
다시 조금 가벼워져 멈췄던 피가 도는것 같았다.
일하러 가야지..
어제는 지난번에 인삼을 사러오느라 금산장으로 가끔 오신다는 수원서 오시는 노부부가 점심도시락을 챙겨오셔서 전해주며
"이쁘다"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시는데 옆자리에 있던 장꾼들이 모여들어 그분께 인사를 함께 나누어서 나는 정신없이 행복해졌다.
어떤이는 나보고 사는게 참 힘들다 했지만
나는 울먹이다가도 힘차게 "아니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