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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이야기. (9)


BY 손풍금 2003-09-30

요즈음 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젖은 빨래 가득 쌓아 놓고 사방 꽁꽁 문닫아놓고
그 음습함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던날들을
푸르고 깊은 하늘이 걷잡을수 없이 쏟아내는 햇빛을 향해 젖은날들을 말려볼까
모두 끌어내어 하나, 하나,툭, 툭 털어 걸어놓고있습니다.

가끔씩은 손님에게 냉정하고 무심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이건 제 못된 쌀쌀맞은 성격탓입니다.

한동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쇼핑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제게 화냄이였습니다.

굽이 높은 구두를 맞추기도 했습니다.
발소리조차 죽이며 걷는것을 멈추고 또각또각 소리내어 어깨를 쫙펴고 걸을 참인데 아무래도 그렇게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로마향수와 아로마 초를 사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다 스치는 어느여인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잠시 흉내내고 싶었습니다.

꽃집앞에 수없이 멈췄으면서도 꽃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생명있는것에 대해 생명의끝이 내안에서 멈추어지는게 싫어서입니다.

사람들의 시선 닫는게 싫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허공에 떠있는 글자에 눈을 두고 생각은 먼데 가있습니다.

사람들은 제무대에서 제역활을 충실히 하는 배우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어제도 그저께도 훨씬전에도 몇날을 일끝나면 돌아와
그동안 잠못자고 헤메던 사람처럼 방바닥에 등만 붙이면 잠들었고
(태양은 가득히)..란 주말연속극을 찾아보면서도 벽에 기대어 잠든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 녹차를 가득 따라마시고 화면을 보다가 다시 잠들어버리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나를 따라 말을 잊은건지 제각기 소리없이 있어주어 집안은 숲속의 절간처럼 조용합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큰녀석이 사라졌습니다.
스웨터를 걸치고 밖에 나가보니 놀이터에 앉아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세개의 그네에 나하고 아들녀석, 그리고 빈그네하나가 덜렁 거리며 줄을 맞추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는 갑자기 이 아이가 대학교 졸업하고 군대갔다올때까지는 어떤일 있더라도 아프지말고 살아야 하는데란 생각을 절실하게 하고 있는데
녀석은 "엄마, 오래 살아야 해" 하고 말해 얼마나 놀랬던지요.

왜?

"그냥.. 엄마 오래 살아야 해."
녀석을 쳐다보니 제 눈썹에 어둠을 모두 달아매고 있는듯 했습니다.

"........그래 엄마 오래 살을께. 착하고 바르게 그리고 좋은사람으로 성장해야해.
동생 하고 우애깊게..응?"
빈그네 쪽으로 발을 툭쳐 제멋대로 흔들리게 했더니 녀석은
"엄마, 심술 부려?"

"..응"

녀석에게 오늘밤 무언가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 해줄게 없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데..

"장터에가면 엄마따라 시장에 오는 어린 아이들 있잖아, 그 어린아이들 엄마가 다정하게 불러서 그 꼬마들 손톱에 예쁜빛깔 메니큐어 칠해준다."

"왜? "

"왜냐하면 훗날 어른이 되었을때 엄마따라 시장갔는데 화장품 파는 어떤 아줌마가 내 손톱 예쁘게 물들여줬다고 기억하게 하려고 추억만들어 주고 싶어서...
손톱에 칠해주고 나면 꼬마아이들이 엄마한테 얼마나 공손하게 인사하고 가는줄 아니?
그리고 열손가락을 쫙펴서 지나는 바람에 말리며 걸어가는 뒷모습 바라보면 꼭 너희들 어렸을때 모습 보는것 같아서 엄마 행복해한다"

"그럼 그 꼬마아이들 엄마는 뭐라고 해?"

"그냥 살짝 웃어.. 우리 아이 예쁘게 해줘서 고맙다는 표정으로..히히..
그건 엄마 착각이려나?'
우리 떡볶이 먹으래 갈래? 저기 (선영이네 떡볶이) 문안닫았다."
떡볶이 한접시 먹고 나니 녀석은 무슨마음인지 앞으로 공부열심히 한다고 집으로 들어가며 엄마는 강아지 구경하고 오라며 뛰어간다.

나는 애견센타 앞에서 놀고있는 강아지를 윈도우 너머로 오랫동안 바라보며 서있다 다른 애견센타로 가서 또 삼십분,
한군데 더 남아있는 애견센타를 향해 뛰었는데 문을 닫아 불이 꺼져 있었다.
다시 헐레벌떡 뛰어와 어미와 새끼가 한곳에 있던 전자오락실옆 애견센타쪽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주인이 문을 닫고 있었다.
어미와 장난치는 강아지 딱 한번만 더 보고 싶었는데  돌아서야 했다.

나중에 마당있는집으로 이사가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강아지 몇마리 키워야지,
꽃밭에서 뒹굴면서 놀게..
꽃 물어뜯기만 해봐라, 개패듯 패줄테니께...

나는 왜이렇게 나중에 할게 많지요?
아마 나중에 엄청 바빠서 늙지도 못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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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꽃 2003-09-30
    간만이시네요. 저두 가끔은 아들과 그런 시간을 갖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꼭 니가 하고 싶은일하고 살렴. 그럼 아들은 쑥스러운듯 아직은 하고 싶은게 넘 많다고 대답을 하지요. 강아지 좋아하시나보네요. 저두 집에 키우고 있답니다. 얼마전에 한마리 하늘나라보내고 지금은 두마리 키워요. 꽃 물어뜯으면 개패듯 패주신단 말씀에 웃음이 번집니다. 나중엔 바쁘시더라도 예쁘게 한마리만 키우세요. 꼭 자식같아요.
  • 키키 2003-09-30
    ㅎㅎ 정말 오랜이이예요.. 넘 방갑네요ㅎㅎ 엄마 따라 나온 아이들 소톱에 추억을 칠해주신다는 말씀 넘 이뻐요 ㅎㅎ 보통에 사람들이 거의가 지금 할수있는 것 보다는 나중에 해야하는게 많아요 ㅎㅎ 저 역시도 생각해보면 전 나중에 몰해야지 하는 바램조차 가지지 않게된게 훨씬 많지만 그냥 지금 이대로에서 만족하고. 행복해 할려고 노력해요.... 어떤 큰 기회가 어지 않는 한 제겐 나중에의 바램도 사치일거 같아서요 ㅎㅎ 노력하며 살 자신이 없어서 일거예요 그쵸? ㅎㅎ 엄청 게으르다 ㅎㅎ 저 말이예요 .......히힛
  • 27kaksi 2003-09-30
    아들과 그네타는 엄마가 그림처럼 보여요. 저는 막내가 곧 군대를 가요. 나도 그애와 놀이터에서 놀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생갇보다 빨리 자라는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 골무 2003-09-30
    지금부터 바쁘게 살아야지요.굽놓은 구두신고 눌러쓴모자 벗어던져 버리고 아로마 향내 풍기며 당당하게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보자구요..
    음악넣고 갈게요.


  • 아리 2003-10-01
    저는 여기서 아드님이 말한 '엄마 오래 살아야 해요' 이말이 제일 와 닿아요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그 각도에서 바라보거든요 ..아드님에게 엄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임에 틀림 없어요 ..그래요 우리 오래 살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늘 소리없이 지켜주는 따스한 울타리라하고 .. 늙으신 우리 친정엄마 오늘은 무사하실까 하고 가슴 조렸던 그 시절이 기억납니다 .아름답게 살아요 그냥 지금처럼 열심히 이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