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그해 겨울 신탄장에선
눈보라치는 철교근처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는 주인을 대신해 장사를 하다가
추위가 걷히며 봄이 천천히 다가올 무렵 자리주인이 나타나 화장품 펴놓고 장사할 자리를 잃게 되었다.
여기 저기 빈자리를 찾다 소나무 네그루에 벤치가 있던 역광장,
긴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기차역이 있는 그 계단의 중간 오른쪽에
창문이 반듯한 서점이 고즈녘하게 올려져 있어 노을이 질때나 비올무렵 바라보면
대책없이 계단을 뛰어올라가 기차를 타고 싶은 그런 풍경이 서있는 자리,
오로지 그 역 주변에서 정신없이 서성이다 여기 어디쯤서 장사를 해야겠다 하는 마음에 신호등을 건너는 그 맞은편 장 끝부분에 자리를 폈다.
와서 보니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편한자리였다.
하나도 안팔려도 눈치 챌 사람 없어 창피하지 않은 자리,
많이 팔려 저절로 웃음이 흘러 나와도 경박하다 흉이 되지 않는자리.
그 자리에 앉으면서 사람좋은 채소파는 공주아주머니와 친하게 되었고
상냥한 야쿠르트 새댁도 알게 되었고
봄이면 꽃을팔고 여름이면 과일을 팔고 가을겨울이면 붕어빵을 파는
빨간 머리앤이 떠오르는 주근깨 천안 아주머니도 알게되었고
알뜰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악세사리언니와 도 친하게 지낸 신탄장
바보같은 그여자가 앉아있던 그 자리.
서울서 찾아와준 우리 희망님도 알게된 그자리.
지금은 친구가 된 경자씨도 그곳으로 찾아와 알게 되었고
초등학교 친구 옥선이를 다시 만난 그자리도 신탄장이였고
종종 기차역 서점에서 책을 사들고 와서 싸인해달라고 두어발자국 떨어져 부끄럽게 말하는 남자손님들이 있던 그 자리도 신탄장이였다.
아주 가끔은 소주 한잔 하지 않겠느냐며 남이 볼새라 몰래 따라주며 안주로
떡볶이를 내놓는 포장마차 아줌마를 만나게 된곳도 신탄장이였는데...
추석 전 날,
원 시장통 중앙에서 장사를 하는 전에 몇번 뵌적이 있는 숙녀복을 파는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아주 좋은 자리가 하나 났는데 가계주인한테도 말을 해놨으니 다음장 부터 시장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이였다.
"저 자리 살돈 없어요. 그냥 여기서 할께요."
"사라는게 아니고 그냥 와서 하라는거지, 그리로 들어와요. 장사 잘될거예요."
장터를 떠돌다보니 몫좋은 시장거리엔 다 웃돈이 붙어있는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숙녀복 아주머니가 돌아가고 나니 주위에 함께했던 친해진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께서 서운해 하신다.
"왜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빼간댜... 아뭏든 화장품은 복도 많어."
나는 히히히. 하고 웃었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엇갈렸다.
장삿꾼들이 모여있는 시장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편하지 만은 않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조이며 앉아있는 자체가 사는게 급박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는 장사가 안되더라도 사람구경한다 싶은 마음으로 포기하며 나온 장터라 쫓기기 보다는 한결 여유로운곳이 이곳이였었다.
그 아주머니의 말대로 장사하러 나온 사람이 돈벌 생각을 해야지,
생활도 어려우면서 라고 말을 주신 걱정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어린아이가 들어도 백번천번 맞는말이다.
며칠 생각하다 이왕 장사하러 나온거니까 많이 팔수있는곳으로 들어가자 하는 결심을 하고
비오는날은 공치는날이지만 자리를 소개해준 아주머니에게 감사한 마음 보태려 일찍 서둘러 자리주인임을 알려야 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갔다.
**
내가 앉은 자리는 유명 브랜드를 팔고 있는 가계 앞 노상이었다.
비가 내려 파라솔을 쳤는데 윈도우에 진열된 옷가지와 가계의 간판을 가리게 되었다.
전에 앉아있던 농협담장은 누가 뭐라 하는사람 없이 내가 주인이였는데
여기서 파라솔을 치니 가계 주인 눈치보이고 피해주는것 아닌가 싶어 영 불편하다.
단골손님이 빗속에서도 하나, 둘, 옮겨온 자리로 찾아들어왔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들면서 내가 펴놓은 물건앞에 우산을 들은 손님들이
너나없이 밀려들어 그 상점의 출입문 마저 막아버린 형국이 되었다.
팔고 있는 나도 호떡집에 불난줄 알았다.
비가 와 장사에 손을 놓고 있던 장꾼들마저 달라들어 따라서 화장품을 산다.
오후 두시가 되도록 손님하나 들어가지 않는 그 가계 주인이 출입문 입구에 서있는데 눈치가 보여 어떻게 해야 할지 민망했다.
점심을 찐빵으로 떼우고 다시 손님을 맞는데 그때가 오후 다섯시.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리는데 주인남자가 나와서는 조심스럽게
'파라솔을 옆으로 좀 치워주세요. 간판을 다 가리니까 손님이 안들어오잖아요."한다.
"네. 죄송합니다."얼굴이 뜨겁고 내탓인것 같아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도저히 주인 미안해서 장사를 할수가 없었다.
파라솔을 걷고 집으로 돌아 가려는데 그 빗속에 다시 손님이 둘러앉는다.
길가던 아저씨 한분이
"오늘 우리 마누라 생일인데 여기서 꼭 사오라기에 저기 기차역 농협근처까지 가서 찾아봤는데 거기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이곳을 알려주길래 찾아왔네요. 하며 화장품을 고른다.
화장품을 포장해드리고 나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루루 따라 앉는다.
사람 심리라는게 참 재미있다. 누가 장에 가면 따라가는것 처럼 말이다.
걷어버린 파라솔때문에 비를 맞는 화장품은 비설겆이를 하고 손님들은 우산을 쓰고 버섯군단처럼 둘러앉는다.
주인 남자가 윈도우 사이로 내가 있는쪽을 내다보다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눈을 얼른 내리깔고 손님을 받았는데 모두가 돌아가고 나니
주위에 안면있는 장꾼들이 기뻐해줬다.
장사가 잘되니 좀 좋으냐며 잘 옮겨왔다고..여기서 이젠 아예 자리잡고 눌러 앉으라고..
나는 그게 아닌데,
장사가 좀 덜되더라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불편하지 않은 전에 있던 자리가 그리워져 당장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복두 많단다.
"화장품은 복두 많어.."
화장품(?) 뒤에 붙여지는 사람은 이미 생략된지 오래고 팔고있는 물건으로 불리는 장꾼. 히힛.
"맞어요. 나는 복두 지지리 많어요. 그치요?"
여섯시가 넘어서자 주위는 금새 어두워지고..
주인부부가 기운빠지고 초조한 모습으로 윈도우쪽에서 손님을 기다리다 내쪽을 바라본다.
나때문에 안된것처럼 느껴져 뒷꼭지가 땡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앉아있으니 주인집하고 안맞아 장사가 안되는것일거다,라고 둘이 대화하고 있는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불안하다.
설령 그런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해도 괜히...
이젠 어떻게 하지.
장사잘하고 간다고 인사를 해야하는데 표정이 굳어있어 들어가는것도 겁난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런데 "다음장에는 오지 말아요. 아주머니가 오니까 장사가 안되네요."
이러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차라리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포기하고 안오면 되니까..하고 용기내어 들어갔는데
"저.. 저때문에 오늘 장사 못하셨지요. 제가 간판을 가려서.
다음부터는 윈도우쪽으로 파라솔 안펼께요. 정말 죄송해요."하니
"개업하고 이런날은 처음이네요. 비가 와서 안되는 걸거예요.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이런날은 처음이네.."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저 청바지 하나 사입으려고 하는데 저한테 맞는것좀 줘보세요"
처녀들 옷집에 나한테 어울리는 옷이 어디있겠나. 어쨌든 침묵이 너무도 불편해 이것 저것 골라보지도 못하고 싸이즈 맞는것을 찾아들고 계산을 하려보니 8만원이다.
으허헉..(나 어떡해..)
이번엔 주인내외가 미안해한다.
"일부러 팔아주는것 아니예요?"
"아니예요. 일부러는.. 제가 이 청바지 꼭 사입을려고 했어요"
집에 돌아와 바지를 입어보는데 아이가 웃는다.
"엄마, 지금 엄마한테 그 옷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왜, 이상하니?"
"엄마. 배를 한번 좀봐. 날씬한 언니들이나 입는 골반바지인데..
엄마는 배가 출렁거리는데 억지로 껴입고.."하며 웃는 저 비아냥.. (나 왜이렇게 꼬였어요?)
"너무 웃기니? 이렇게 배 들어가게 숨 안쉬어도 웃기니?"
"응, 너무 웃겨..엄마"
으허헉...이 금 청바지 어쩌지..
아.. 머리 아퍼라..
기차역이 보이는 장끝으로 그냥 갈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