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869

손님


BY 손풍금 2003-09-06

가끔 먼데서 일하는 장터로 손님이 찾아오는적이 있다.
"오늘이 장날인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하면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장날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제가 오늘 일있어서 못나왔으면 어떻게 할뻔했어요?"

먼길 찾아왔지만 대접이라야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차한잔이 고작이지만 그것마저 무용해질때도 있다.
'오는길이 한적해서 참 좋았어요. 장구경 좀 하고 가려구요. 부담갖지 마세요'하는 배려는 한결같이 내놓는 말이다.
그들은 내 좌판앞에서 함께 쪼그리고 앉아 손님없는 중간중간 몇마디의 말을 나누고 그것이 전부인채 몇시간의 달려온 거리를 떠나간다.
아무런 손님대접도 받지 못한채...
그녀들이 떠난 거리에 휭하니 앉아있자면 빈자리에서 꽃이 피어난다.
그 꽃에서 향기가 묻어난다.
그향기가 가슴속에 차오르면서 난 괜스레 헛기침을 몇번하고 고개 숙여 혼자 쿡 웃는다.
사람이 하~ 아름다워서...


얼마 전 영동장이였다.
개학전에 장터에 따라와보겠다는 딸을 데리고 도매시장을 거쳐 국도를 타고 장터로 향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영동장 가는길이..'

'왜?'하는 딸에게

'인적없고 차량없는 한적한 이 길을 달리다 보면
전쟁이 나서 온동네 주민들이 멀리 남쪽으로 다 피난가고 동네에 사람하나 없이 그대로 비어진채 주인을 기다리는 남겨진 쓸쓸한 풍경 있잖아,
강아지는 빈마당에 앉아 인기척에 귀를 세우며 허공을 향해 짖어대고,
순한소는 눈을 꿈벅거리며 사람흔적을 기웃거리고,
저기 있는 저 맨드라미 좀 봐, 닭벼슬처럼 살아있어 꿈틀거리며 너무도 조용한거리를 시끄럽게 만들어보려 애쓰는것 같지 않니?
떠나간 주인기다리느라 벌써 코스모스는 계절을 앞당겨 발걸음을 돌리게 하려하는 저 마음좀 봐.'
재잘거리던 딸아이 조용한다.
(내 말하는데 감동먹은게 틀림없어.. 흠)
어때, 그렇치?

'아니, 이상해, 졸려, 그런데 엄마, 지금 때가 어느땐데 남쪽으로 피난을 가?'

'아니, 예를 들면 그렇다는거지. 너 진짜 그럴거여?'

'히히히, 재밌다' 딸아이의 그 웃음 한마디에 나는 금새 푸른하늘을 떠다니는 흰구름이 된다.

흰구름을 머리에 이고 장터에 도착해 물건을 펴자 마자 화장품을 구입하러 온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야, 오늘 장사 잘 되려나보다. 신난다.)
손님이 뜸해져 숨을 고르는데 내나이또래의 여자가 다가와 차한잔을 건넨다.
'누구세요?'하고 바라본 그녀는

'네, 이야기 좀 잠시 하고 싶어서요.'
인상이 선하다.

말하는 입술끝이 가볍게 경련이 이는것을 보아 나처럼 숫기없는게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말을 아낀다거나 냉정한기운을 보이며 외면이라도 한다면 금새 눈물을 뚝뚝 흘릴것 같은 슬프고도 착한얼굴이다.

'한달전에도 왔었는데 그날은 장에 안나와서 돌아갔는데 오늘도 혹시나..하고 와봤는데 이렇게 나와줘서 감사합니다.'하는 그녀.

'??? 한달전에도요? ..아이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들고 있던 신문을 펴서 땅바닥에 펴주고 앉으라 했다.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앉으며

"죄송해요. 이렇게 밖에 이야기를 못하겠네요. 자리를 비울수가 없어서요."하는 내말에


'아..이게 더 좋아요. 저도 장터를 떠돌며 장사해보고 싶어서요.  좀 도와주세요. 아이가 내년이면 중학교,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월급받아서는 못살것 같아서 장사라도 해보려구요.'

'.... 보기 보다는 쉽지 않아요. 일하는거야 어떻게 견딘다해도 처음부터 수입을 찾아내기를 기대하면 안되요. '

'알아요. 저도 그것쯤은 알고 있어요. 우선 시골로 이사오고 싶어요.
도시에서 두아이 키우며 혼자 부대끼니 힘들고 외로워 견딜수가 없어요.
사실 여기도 어제밤 아이들과 내려와 보니 새벽두시가 되더라구요.

'차에서 주무셨어요?  아이들도 왔어요?..아이들은 어디에?"

'...여기 농협안에 앉아있어요.'

보지 않아서 알수는 없지만 그 아픔이 얼마간의 깊이를 지니고 나락으로 떨어져 힘들어 하고 있는지 전이되어 왔다.

**

어느날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했어요.

남편은 내게 날마다 이혼을 해달라고 했어요.

"어떻게 이혼을 해요. 말도 안되요.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내 아이들은 어쩌라구요. 

그렇게 피말리는 일년이 지나고 남편이 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여자는 내 눈치를 보지않고 내 아이들과 우리가정을 휘두르기 시작했지요.

나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할줄을 몰랐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나와버렸습니다.

 

..........남편은 뭐라 하던가요?

 

그냥 나가달라고 빨리 나가달라고 하데요.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살아야겠기에 직장을 구해 다녔는데 아이들이 커가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중 우연히 님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동안 읽은책을 다시 읽고 하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트럭을 한대 구입했지요.

 

.........언제요?

 

한달 전에요.

"......한달 전에?...................장터를 떠도는일 절대. 절대로 ..쉽지 않아요 "

 

절대로 라는 내 말에 그 여자의 얼굴에 그늘이 내렸다.

"아니요. 어렵지 않을수도 있어요. 내 얘기는 쉽지 많은 않다는 이야기예요.

그정도는 알고 있을거예요. 그치요?"

다시 그여자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조금만이라도 모진구석이 보였다면.. 내가 이렇게 그여자의 얼굴을 자꾸 쳐다보며 안심하라는듯 말하지는 않을텐데..

 

"제가 알려 드릴수 있는것은 다 알려드릴께요. 내코도 석자인 내가 도와드린다는 자체가 어쩌면 우습기도 하지만, 아무튼 힘내세요. 산사람은 다 살게 되어있으니까요.

제가 겪어온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걸러서  시간을 벌게 해드릴께요.

물건구입요령과 장터를 찾아드는것과 .. 할수 있는대로 다알려 드릴께요."

 

그녀의 마음을 절실하게 받아드리고 두딸 아이와 멀어져가는 그녀를 배웅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두아이는 농협의자에 앉아 내가 도착하기 훨씬전부터 기다리다

자신의 어머니와 내가 이야기하는 세시간을 아무 말없이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던것을 생각하니

어쩜 이럴수는 없다 싶게 아이들의 슬픔이 전해와 내딸아이와 함께 우울해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내가 지내온 아픔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져 위태롭게 가슴이 부벼지고 있었다.

 

며칠동안 그녀의 그림자가 내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기로 한날 전화가 오지 않아 적어준곳으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어 실례인줄은 알지만

늦은밤에도...이른 새벽에도..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괜히 신문을 들추어 보고 뉴스시간에 귀기울여보고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소식이 전해질때마다 화를 내며 안절부절 전화기를 들어보았다.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약속날짜로 부터 사일째 되는날 무심히 눌러본 전화기에 그녀의 음성이 실렸다.

"어떻게 된거예요? 많이 걱정했는데.. 왜 안오세요?" 하고 반가움과 함께 소리를 높히자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한테 심적 부담을 주는것 같아서 전화를 할수가 없었어요.

신경쓰게 하는것 같아서요."건너오는 목소리도 어쩜 저리 조용조용 할까..

조금만 시끄러웠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 쓰이지는 않을텐데..

 

".....그래서 안했어요? 집에 전화는 왜 안받아요."하니

 

"산책 갔을때 했었나보네요."한다.

 

"늦은밤 , 이른새벽에요?.."

 

"네. 잠이 안와서, 잠을 못이루어서요."

 

나는 갑자기 그녀로 부터 약이 올라 괘씸해졌다.

일을 해야 몸이 고달퍼서 잠이 오지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니까 잠이 안오는거예요. 그러면 모든게 다 무서워져서 아무일도 못해요.

나쁜일 아니면 닥치는대로 일을 해요. 내려와요. "하는 내말에

 

"네, 고마워요. 여기 집 정리대는데로 내려 갈께요. 이번 일요일에 전화하고 갈께요."한다.

 

"꼭 오는거예요.  기다릴께요."

 

그녀와의 약속을 남겨놓고 며칠동안 머릿속에서는 그녀에게 내가 장터로 나온 날부터 알아낸 모든것을 정리해서 알려줘 내가 겪어온 힘든일은 하지 않게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메모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에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녀를 온종일 기다리던 나는 전화기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망설이다 결국 뒤돌아서 내 할일을 하였지만 그녀의 얼굴이 좀처럼 떠나지를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노트를 열다가 그녀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눈에 띄여 다시 전화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다.

"그날 종일 기다렸는데 왜 안왔어요? 다른일 찾았어요? 상황이 좀 나아졌어요?"

 

"아니요. 그대로예요. 언니한테 미안해서 안했어요."

 

"뭐가 미안해요............일은 할 참 이예요? "

 

"네. 해야 하는데.. 내가 다음주에는 꼭 갈께요."

그 다음주 약속한날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렸음에도 그녀가 시장으로 찾아온다는 말에  내가 없으면 여린 몸과 마음이 더 지칠까싶어 폭우속에 앉아 있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저 여자가 이 빗속 장꾼도 없는 장터에 혼자 앉아 있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말던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안오면 전화라도 하겠지 하던 내 바램과는 달리 그날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우산이 있었지만 집으로 오면서 비를 맞았다.

열발자국이나 옮겼을까 하늘이 구멍난듯 쏟아붓던 비로 인해 온몸이 다 젖었다.

그녀의 생각이 이대로 녹아지기를 바라면서였다.

 

어디에서든 기운잃지말고

어여쁜 아이들과 살아가는일에 힘들어하지 말고..

아무것도 없다 해도 좌절하지 말고..

너무 힘든일 생겨도 울지말고..

그냥 벌떡 벌떡 일어나 아무일 없다는듯 살아갔으면 좋겠다.

가다 보면 언제 내가 이만큼 왔나 하고 뒤돌아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부쩍 커있던데..

그녀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