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가 내리는가..
다닥 거리며 시끄럽게 차양을 두드리는 소리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니 밤새 울어대던 고양이가 일층담장위에 앉아 비를 맞고 있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게한 놈이라 잘 만났다 싶어
"가, 저리 가." 종주먹을 쥐고 때리는 흉내를 내보아도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 그만 겁이 나 창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래도 하늘이 뚫렸나 보다..
도대체 우리같은 사람 어떻게 먹고 살라고.
칠팔월이야 여름이고 우기라 비가 많이 내렸다 갖다붙여도 명절대목 며칠을 앞두고 구월첫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니..너무해. 너무해. 정말 너무해.
어제 금산장에 가서 물건을 펴고 앉아있으니 흐리던 하늘이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앞가계 처마밑에 앉아 비를 피하며 조금이라도 그쳐주길 바라고 물건을 접지도 못하고 앉아있는데 점점 빗줄기가 거세고 굵어져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갈등하고 있었다.
그때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빗속에서 몰고 가던 할아버지가 멈추어서며 뒤에 앉아있던 할머니께서 내리셨다.
빗속에서 담아온것은 복숭아였고 비를 가릴 어떠한 도구도 없이 큰 고무다라이에 담겨진 복숭아위로 비닐봉지 하나를 덮어씌우고 팔기위해 서계셨다.
거센 비로 점점히 거리에 인적이 끊기고 있었다.
우비를 입은할아버지는 맞은편 가계옆에 쪼그려 앉아계시고
할머니는 드문 드문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복숭아를 사라고 소리를 건네셨다.
지난 비에 햇볕도 보지못하고 그냥 떨어져버린 복숭아를 명절밑에 없애려고 가지고 나오셨다는데 전혀 팔려나갈 기미가 없다.
장터에 나온 장삿군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할머니는 연신
"아이고, 내가 주책이지, 이걸 뭐하러 팔겠다고 우리영감을 졸라서 나왔는지,
차라리 소나 주고 말걸. 지금 고추밭에 고추는 다 쓰러져 녹아내리고 있는데 ,
안되것네, 이럴때가 아녀. 시방, 고추따라가야혀.
내가 지금 여기서 이 귀한시간에 뭐하러 일품 죽이고 서있는감.
이 지랄같은 비는 도대체 어쩔려고 이렇게 쏟아지는겨. 누구 다 죽는꼴 볼려고 하는가."하시며 빗속에 대고 소리치는데 (내가 할머니 말씀 다듣고 있어요.)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에구, 젊은사람 있는데 별소릴 다하네, 그나저나 좀 팔았수?"하신다.
"아니요, 못팔았어요."하자
"안팔리제?"
"네.비가와서 사람이 안나와요."
"그냥 가야것네"
"복숭아 가지고요?"
"응, 차라리 소라도 줘야지, 지금 내가 이럴때가 아녀.
고추가 밭에서 녹고 있는디. 따지를 못해서 , 또 가자 하면 우리영감 화낼텐디. 어쩔까나.."몸이 달아 마른입을 손으로 문지르며
"고추 다녹는디, 어쩐댜"
"할머니, 저 복숭아 오천원어치 주세요"
"오천원어치?"
"네."
할머니 입이 금새 함지막하니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팔두 못했다며 .."
"아니요. 원래 사갈려고 햇어요. 아이들이 과일을 좋아해서요"
할머니를 바라보던 할아버지 다가와 큰 자루 하나 꺼내 담는다
"왜 그래유? 이 화장품 애기엄마가 사간다는디"
"그러니까, 다줘. 비오는데 누가 나와. 이애기엄마 다줘. "하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아이쿠, 이 냥반이. 또 알아유. 누가 사갈줄. "
"그러세요. 할아버지, 저희 식구수가 적어서 이거 다 못먹어요."
"먹다 남으면 얇게 저며서 설탕놓고 끓여놓으며 깐스메되니까. 그렇게 혀서 겨우내 먹어도 되고"하신다.
"그래도 너무 많아요. "
"가지고 가면 소가 먹어. 그러니 다 가지고 가.내 고마워서 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발만 구른다.
"그럼 만원드릴께요. 저 다른사람하고 나누어 먹으면 되요."하는 말에
할머니께선.
"그랴. 그럼, 만원이 뭐여. 이만원어치도 넘는걸."하며 아쉬운 표정 감추시는데
할아버지는 "이사람이. 지금 뭐하는겨. 일부러 팔아주는것도 모르나. "하고 소리를 지르신다.
"아이고, 할아버지, 일부러는. 제가 무슨 바보예요?.필요하니까 사는걸. 왜 할머니한테 화를 내고 그러세요. 필요해서 사는거예요."앞서 목소리를 높였더니
할머니는 "그거봐유. 내가 더 받는것도 아니고.. 지금 만원받아도 만원어치는 더 가는거유 , 괜히 소리는 지르고 그려유. 되나가나...."
비를 맞으며 꼼꼼히 복숭아 자루를 묶어 내 뒷자리까지 옮겨주시던 할아버지.
"이리와봐. 여기와서 구르무 하나 사, 내 하나 사줄께"할머니를 향해 손짓을 하는데
할머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저 장날마다 오거든요. 농사일 다 접으시면 그때 나오세요.
그때 오시면 싸게 드릴께요. "하니
"그려요. 그때해유. 지금 그거 바를 정신이 어디 있간디유. 빨리집에가유,
고추따야해유. 애기엄마, 고마워유, 내 담에 구루무 사러올거유. 이리로 와서 팔아줄께유.
다른데로 안가구."
"네. 네. 안녕히 가세요"
등밀려 경운기 잡으신 할아버지.
뒤에 앉아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머니,
나는 가슴이 울컥 뜨거워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하느님. 도대체 비는 왜그렇게 내린데요?.
자꾸 내리면 우리 밥 굶는단말예요..."
*****
오래전에 이런 생각해본적 있었어요.
밥대신 과일을 먹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야겠지.
과일을 참많이 좋아했었는데 이젠 부자가 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