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옛집 뒤로는 논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논을 가려면 기차길을 지나야 했다.
가을이면 쌍둥이오빠를 따라 메뚜기를 잡으러 칠성사이다병을 들고 논으로 가는데
앞서가는 오빠들 뒤에서 나는 양팔을 벌리고 기차길 레일위로 올라서
금새 떨어질듯 삐뚤빼뚤 걷는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작은오빠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내려와, 위험해."하고는 내가 다가 가도록 서있다 나를 앞세워 걷게했다.
뒤따라오며 코스모스를 한다발 꺾어 내게 건네주기도 했다.
오빠가 잡은 메뚜기는 우선 내 빈사이다병을 가득 채우고 난 다음에야
오빠들이 가져온 주전자로 메뚜기가 들어갔다.
해가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심지가 녹아
지독한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올라와 눈물을 흘리면서
불이 잘붙지 않던 석유곤로에 불을 붙이느라 애썼다.
빨간불꽃이 사라지고 비로서 파란불꽃이 올라오면
작은오빠는 후라이팬을 올려놓고 메뚜기를 구워주었다.
잘구워진 뜨거운 메뚜기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후후 불며 먹는
그 고소한맛이라니, "맛있지? 맛있다. "하며 함께 먹던 오빠가 참 정다웠다.
그 기차길이 기억도없이 메워지고 그자리에 길이 나면서 논들이 묻히고
집들이 들어섰다.
간혹 올려다봐야하는 삼층건물도 들어서고 이층건물도 들어서면서
우리집은 이제 골목끝집이 아니고 골목이 시작되는집이 되었다.
기차길은 오정목 정류장이 되었다.
*
오정목정류장은 아침마다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교모를 쓰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많은학생들 틈에서 정류장에 서있는 나는
제일 작은 중학생이었다.
오래입으라고 크게 맞춰진 교복소매는 손끝을 보이지않게 했고
책가방은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키가 작아 땅에 닿았다고 했다.
멀리서 시내버스가 달려 오고있는데 차장언니가 문도 닫지못하고 버스문에 양팔을 잡고 매달려있다.
얼마나 많이 탔는지 버스가 기우뚱거린다.
나는 버스가 다가올수록 뒤로 물러서는데 내뒤에 서있던 작은 오빠는 내손을 잡는다.
버스가 서면 기다리던 통학생들이 버스로 몰려들고
작은오빠는 한손엔 오빠가방을 다른 한손엔 내가방을 들고 나를 앞세우고 버스에 오른다.
문입구에 다달으면 짐짝 꾸겨넣듯 한사람한사람 버스안으로 밀어넣던 차장언니는
나를 보고
"안돼, 다쳐,깔린단말야."하고 나를 가차없이 문밖으로 밀어버린다.
만원버스안에 오른 오빠는 뒤돌아보며 나를 바라보고는
"타봐,. 발 먼저 올려놔."하고 소리치는 오빠의말에 힘입어 버스에 오를라치면
차장언니가 다시 밀어낸다.
나와 내 키만한 학생 몇명을 남겨놓고 차장언니는 버스몸통을 치며
"오~라이"를 외치는데 버스문쪽에서 나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근처에서 매달려있던 작은오빠는
"잠깐만요. 내릴께요"하고 사람틈새를 비집고 나오면
차장언니는 오빠를 짐짝 던지듯 밀어내고 버스는 휭하고 가버린다.
버스에서 떨어진 오빠의 책가방은 열려 책이 금방 쏟아질것 같았고
또 다른한손에 내책가방을 든 작은오빠는
"밥좀 많이 먹고 빨리 키 좀커봐"하고는 "학교늦으니까 빠른걸음으로 걸어"하며
앞서 걷는다.
나는 앞서걷는 작은오빠를 따라가다 철딱서니도 없이
"오빠, 차비 남았지? 그걸로 나 껌사줘."하면 오빠는 풍선껌을 사서 내손에 건네주었다.
어떤날은 하교후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나는 대장처럼 오빠에게 내가 들고있던 가방을 불쑥 내민다.
우리동네 순빈이는 이런 오빠를 둔 나를 참 많이 부러워해
종종 순빈이네집에 놀러가면 오빠이야기를 그녀의 가족에게 풀어놓는것을 들었을때도 나는 내가 오빠대장인줄 알았다.
오빠가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오빠는 내 책가방을 들고 십오리길을 걸어다녔다.
그덕인지 조금씩 다리가 단단해지고 오빠가 졸업할때쯤엔 맨앞줄에 섰던 나는 2학년이 되면서 앞줄을 벗어나고 버스도 타게 되었다.
*
서류가 든 가방을 들고 오빠사무실로 향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찾아갔음에도 내 표정부터 살피던 오빠는
"아무일 없지, 사는게 많이 힘들겠지만.."했을때
나는 오빠말은 아무상관 없다는 표정으로, 그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표정으로
책가방을 들어주는게 당연하였던것으로 알고있었던 그때처럼,
"아니, 힘들어.. 너무 많이 힘들어서 이혼하려고 해"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작은오빠는
"..이혼은..무슨 이혼을... "하고는 손을 더듬거리며 담배를 피워문다.
나는 작은오빠가 담배피우는것을 처음본다.
그리고는 "네 문제니까.."했다.
그래, 내문제다 이건 내문제니까.. 누구에게 말을 하든 그게 무슨 소용있으랴.
대신 살아줄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려고.. ."했을때
나는 지금도 내가 오빠의 대장인것처럼
"그래도 이혼해. 이건 내문제니까, 그러니까 구경들 하고 있었겠지,
이건 내문제니까."하고 오빠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소리를 듣고나니 서러움이 소낙비처럼 일제히 몰려왔다.
나는 그자리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이건 내문제다. 그래, 내문제여.
그러니까 오빠나 언니들하고는 상관없다. 그거지" 하고 나는 어린날처럼 떼그쟁이를 썼다.
"내가 왜 이날까지 참고 기다렸는줄 알아.
그사람이 바른사람이 될때까지.
내가 놓아버렸다가는 다른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시는 일어설수 없이
폐인이 될것 같아서 바른사람이 될때까지 기다렸단말야.
그런데 지금 숨이 막혀, 그래서 견딜수가 없어.
너무 많은 아픈상처들때문에 견딜수가 없어서"
나는 혼자 서러워지기 시작해 통곡했다.
"알아. 알지 왜 모르겠니
. ....그래, 네 문제니까 네가 알아서 결정 했겠지"
작은오빠는 끝내 그때처럼 내 가방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작은오빠가 정답지 않았지만 그곳을 떠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따뜻했던 지난날들에 대해 못견디게 부비고 싶어했다.
며칠전 작은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저번날 오빠한테 화낸것 미안해.
그리고 오빠가 내 책가방 들어다준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하고 멋쩍어 "히히" 하고 억지웃음을 웃었는데,
"형제끼리 감사하다는 말은 하는거 아니다. 대신 잘살아야해, 씩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