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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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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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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태어난 것이 축복이 아니라 업보였을까


BY 행운 2020-04-26

나는 그녀의 친구가 되어 보려 한다. 왜 그렇게 ,,,,그녀는 뒤돌아 보기 싫은 기막힌 삶에 말문이 막히는 모양이다.
그녀는 7살때부터 집안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그녀에게만
부모님은 단 한번의 사랑도 주시지 않았을까 그녀는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에 목말라 한듯하다.그녀 나이 9살때부터 부모님은 이른 아침에  밭에 가시면서 그녀를 불러 깨우시는데 그녀는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고 집안 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고 소 여물로 끓인 소 죽을 여물통에 부어주고 그리고 부모님의 밥상을 차려두고 학교를 갔다고 한다. 3명의 동생들에게 밥을 먹여 두고 학교를 가는데 정작 자신은 시간이 없어 굶고 가는 것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일을 많이 하고 멀리 있는 우물에 가서 양철통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녀서 그런지 그녀는 다른 친구들 보다 유난히 적어 학교에서 언제나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보리 타작을 하고 벼 수확 철이 되면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학교에 갔다 와서는 숙제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뒷날 새벽2-3시 까지 일을 할 때도 있었다니까 그래도 그녀는 공부에 있었서는 친구들보다 뒷처지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날은 새벽2시까지 일을하고 그 후 숙제를 하고 너무 잠이 와서 다리로 벽을 치며 영어를 외우는데 엄마는 잠 안자고 뭐하냐고 호된 야단을 치는데 그녀는 항상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해 볼수도 없었고 할 생각 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밤에 전기불을 켜 놓고벼를 탈곡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 잠이 와서 탈곡한 볏단을 쌓아 올리다가 그 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께서 죽일듯이 심하게 야단을 쳐 울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생각하면 아동학대 그 자체였다며 그녀는 많이 아파한다. 그녀가 국민학생인데도 쉴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오빠도 동생들도 너무 편하게 중학교 고등학교 다녔고 수학여행도 다 보내주어 갔는데 그녀만 보내 주지 않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수학 여행가는 날 대문에서 동네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부르는데도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혼자 숨죽여 울어야 했다니,, 그녀가 중학교를 가게 된 것도 어찌됐던 자신의 작은오빠 덕이라고 했다.자신의 작은 오빠가 공부가 하기 싫어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서울에 살고 있는 자신의 외삼촌에게 취직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 그녀의 아버지께  시골 5일 장날 우체국에 가시어 등기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그녀의 아버지께서 깜박하시고 편지를 보내지 않고 가져와서는 밤에 그녀에게 읽어보라고 하여 읽어보니 취직을 부탁한 내용인지라 부모님은 실망을 하시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가 뒷날 소 여물을 끓이고 있는 그녀에게 와서는 자신은 고등학교에 가기 싫으니 " 아버지께 너 중학교 보내달라고 하라고 일러 주는데 그말이 너무 고마웠다고"하며 노을 빛에 물드는 나이인 지금도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그때만큼 고마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전혀 공부를 시켜줄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작은오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어 소 두마리를 시장에 내다 판 돈을 가지고 진주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소 판 돈을 주면서 자신의 아들을 그 학교에 다니게 해 달라고 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절대 안된다고 하여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되돌아 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애원을 해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하시는 말씀이 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 줄수 없다고 하시어 그녀는 단식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중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그날부터 밥도 굶고 방안에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2일째 되는날 일할 사람이 없어 답답하시니까 그녀의 아버지께서 그래 내가 졌다. 내가 밥한술 들 먹고 학교 보내줄테니 일어나서 일 하라고 하시더란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학교를 가긴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러 논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길이 10리가 넘는 거리라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그녀의 부모님은 학교 마치고 나면 바로 걸어오라고 하여 언제나 그 작은 몸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녔다고 한다. 집에 도착하면 버스보다 30분 먼저 도착하니까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수첩에 적어 다니면서 등하교 길에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녀가 학교 다닐때는 우등반이 있었다고 하며 그녀는 뒤쳐지지 않을려고 발악을 한듯 하다. 중학생이면 교복을 입고 다녀야 하는데 교복을 맞춰 주지 않아 그녀는 상의는 분홍색 티를 입고 하의는 파란색 치마를 입고 6개월을 입고 다녔다고 했다. 아버지는 소 장사를 하고 농사도 많아 돈 주머니가 따로 있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돈을 두고도 교복을 해 주지 않아 언제나 선도부에게 잡혔다고 했다. 나중에는 선도부에서도 아예 자신을 바보 취급하며 그냥 교실로 보내주었다니,,, 그녀는 2학기에 교복을 입게 되었단다. 참으로 힘들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아무리 애원을 해도 안되더란다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돈 벌어서 학교 보내준 그 돈 다 갚겠다고 해도 절대 안된다는 대답에 그녀는 도시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닐것이라 마음을 먹었었고 마산으로 갔다고 했다. 마산에 있는 방직공장에 들어가서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마음먹고 방직 공장에 이럭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데 면접시험관 하는말씀 등치가 너무 적어서 안되니까 집에 가서 엄마 젓 더먹고 다음에 오라고 했다며  떨어졌는데 이후 또 다시 그녀는 이럭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데 그날 면접원들이 앞에 사람들을 너무 많이 탈락을 시켜 뒤에 몇명 남지 않은 인원으로 채워져야 하는 덕분에 그녀는 두번째 면접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중학교 졸업할 때 몸무게가 37키로 였고 키는 155라 떨어져 두번째 면접보는 날이 운좋게도 한 겨울이라  사촌 언니의 롱코트를 빌려 입고는 호주머니마다 10원 100원짜리 동전을 소리나지 않게  4만원을 테이프고 묶어 겨우 회사에서 원하는 48키로가 되어 합격을 했다고 하며 회한의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그녀의 부모님을 일할 사람이 없으니 가지 말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모든것 다 뿌리치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디어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다른 친구들은 야간 고등학교 다니는 것을 뿌끄럽고 창피하게 느끼는데 그녀는 3년 동안 집에 갈때는 언제나 교복을 입고 다녔다고 했다. 가슴속에 반발심이 있었고 부모님께 보란듯한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 쪼끄마한 덩치에 어디에서 그런 깡다구가 ,,,,,,그녀가 어렸을때 마을 어른들은 항상 그녀에게 너희 엄마 계모야 계모라서 너에게 그렇게 일만 시키는 거야 ,그런말을 너무 많이 하시어 그녀는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정말로 자신의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님은 사람들에게 일할 것이 아무리 많아도 걱정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 자야가 학교 갔다오면 다 할 것이라고" 했다는 그 말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직접 들었다고 하니 ,,,,,차라리 그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가슴에 더 깊은 상처는 주지않을 수 있었을 텐데 ,,, 물론 그 많은 일을 그녀가 다 했을까마는 몸도 마음도 상처뿐인 그녀의 굴곡된 아픈 삶을 글로서 잘 표현할수 있을까 ,,,, 그녀는 왜 그토록 아픈 삶들을 속으로만 삼키며 혼자 그 지독한 삶을 견더 왔을까 세상에 자신이 기댈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