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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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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로 가는 길목


BY 오늘풍경 2020-01-16



글을 올릴 마음에 로그인하여 하얀 화면을 띄우면 문득, 봄날의 아지랑이 피어오르 듯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얼핏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컴에서 글로 만난 누군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느지막히 아침나절에 눈을 떴고 가족들은 이미 자기들만의 공간인 일터와 학교로 가고 난 후이다.
보통은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나 국도 데우고 반찬을 꺼내어 아침상을 차리지만 오늘 따라 늦잠을 잤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인 것이 화근인데 요즘 자주 그런다.
불면증인 아내 혹은 엄마를 이해하고 알아서 준비를 하고 아침까지 해결하고 갔음을 늦잠이 처음이 아닌 그녀는 잘 알고 있고 고마움을 느낀다.

그 고마움에 보답이라도 하듯 어서 일어나 하루일과를 시작해야하는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만큼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지 않아서 한 동안 이불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오전 10시가 되었는데 배가 고픈건지 아닌건지 잘 모르겠고 또 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야할지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여전히 누워서 하루일과를 머리속으로 그려본다.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설거지도 해야하고, 구석구석 먼지뭉치와 머리카락이 숨어 있을 집안을 청소기로 훑어야하고, 어제 검은 색 계열의 옷들을 세탁했으니 오늘은 밝은 색 계열의 옷을 빨아 널어야한다. 밥이야 식은 국 데워 대충 말아, 얼른 먹어서 비워내야할 잔반들 꺼내 놓고 후루룩 마시듯 먹으면 그만이다. 그리고는 마트에 가서 식재료 사와서 나물도 무쳐놓고, 멸치도 볶아놓고, 식구 중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먹고싶다고한 과일과 견과류도 사놔야한다. 그런데 별로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누가 주부9단이란 굴레로 주부의 삶을 더 고달프게 했는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가 뒤척이며 모로 누워 밀려드는 잡념에 자신을 그대로 내어준다.
시댁, 친정, 남편 회사, 아이들 진학과 취업 등등 현실적인 고민들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엮여서 따라와 머리가 뒤숭숭하다.

그럴 때는 스마트폰이 최고다. 어젯밤 뒤척이면서 실컷 들여다봤지만 또 다시 사각화면이 알려주는 세상이야기가 궁금해 누운 채로 폰을 본다.

daum, naver 등 포털사이트 들어가서 뉴스 헤드라인을 스윽 읽어본다.
항상 시끄러운 정치계, 이 날 입때껏 어렵기만 한 경제계, 어두운 사회계 기사를 뒤로 하고 예쁘고 화려한 연예계 뉴스를 클릭한다. 아이돌이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한단다. 그러던가 말던가. 기생충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단다. 오르던가 말던가.

지금의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그런 톅스트는 없나? 하는 심정으로 블로그를 기웃거리고 카페 게시글을 살펴봐도 왜 그렇게 사람들은 로봇처럼 감정의 동요없이 질서정연하게 잘만 살아가는 것 같은지. 대변해주지 않아도 되고 위로해주지 않아도 되니 잠시 잠깐 어수선한 지금의 마음을 잊을 만큼의 편안한 글 없을까 하며 인터넷망에 올라타 유랑하는 그녀. 나그네 같은 그녀는 곧 나 자신이기도 하고 친정언니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이기도 하다. 이런 이를 위해서 잘 읽히는 글 한 편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아주 가끔 생긴다.

이런 욕심이 생긴 데에는 내가 갈수록 읽을 만한 글이 없다는 데 이유가 있다. 주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쉬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의 삶이 지나치게 단순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석연찮은 면이 있고 끌리는 글이 없는 이유를 굳이 진지하게 찾자면 이미 인생의 희노애락을 다 알아버린 것만 같은 착각이 원인일수도 있겠다. 소설 속 사람 사는 이야기나, 에세이에서 폼 잡고 들려주는 인생의 교훈이나,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배설한 듯한 글들이 시시껄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내가 꼰대가 되어 가는 반증일 것이다.

어, 나 너의 그 고통 알만해. 잘 알아. 아, 나 너가 말하는 그 행복 잘 알아, 행복한 척하는 그 가식도 너무 잘 알고, 불운과 불행을 숨기는 그 이면까지 다 보여, 너는 아직도 성찰할 줄 모르는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 너는 이래서 결혼 안 했고, 너는 이래서 아이를 안 낳았지. 너는 이래서 실패했고, 너는 그렇게 너를 합리화 해 나가는구나. 그래서 너는 틀렸어. 내가 옳아.

작두에 올라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무당이라도 된 것처럼, 세상만사의 이치를 다 통달한 사람처럼 구는 나 자신 때문에 점점 더 양질의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세상에서 홀로 따분해 하는 건 아닌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자기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도 내면화가 덜 되어 잘 정리해서 말 할 깜냥도 안되면서 피상적으로 알 것 같은
남의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속단하는 것이 꼰대가 아니고 뭐랴.


그래서 오전 10시에 일어나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잠시 힐링이 될 만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가당찮은 욕심이 생겼나보다. 그러기에는 우선적으로 지금보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