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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


BY 오늘풍경 2019-11-30

어제는 4분기 마다 한번 쓸 수 있는 휴가였다.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받은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같은 날로 정했다.

보통은 단풍이 절정인 가을, 금요일을 이용해 홀로 산행을 가곤 했다.

올 가을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서 미루다 11월 말이 되어서야 하루를 쉬게 됐다.

재택근무인데도 휴가제도를 만들어 준 회사에 감사하며 달콤하게 평일 하루를 보내게 되는 날이다.

날씨가 좋다면 일부러 노을지는 시각에 한강변으로 가서 붉게 물드는 하늘을 감상하곤 한다.

근무시간이 오후부터 밤까지이기 때문에 평일에는 그 시간에 바깥을 거닐 일이 없는 나로썬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건강검진할 때마다 남편은 위 관련 질환으로 위장약을 받아오곤 했었다.

이번 검진에선 어쩐 일인지 위가 깨끗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도 나도 놀랬다. 

근무시간이 예전보다 줄어들지 않았지만 업무상 받는 스트레스에 완전히 적응을 해서인지

요즘 남편은 그다지 힘들어보이지도 않았다.

불규칙한 식습관도 원인이겠지만 스트레스로 인해서 위에 문제가 생기곤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감사한 일이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 싶었지만 바로 집으로 왔다.

어젯밤에 절여둔 알타리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회사에 가서 일 좀 도와주고 오겠다고 하니

이거 완전 워커홀릭이 아닌가 싶었다.

공식적으로 받아온 휴가를 그렇게 쓰려고 하다니. 그대는 회사에 약한가, 아내한테 약한가? 물었다.

아내한테 약하지만 자기가 가서 두, 세 시간만 일을 해 줘도 다른 이들이 수월해진단다.

노노~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다.



부족했던 마늘을 사 들고 들어와 밀가루 풀을 쑤고, 식히는 사이에 양념을 만들었다.

생강을 쓰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넣어봤다.

지난 번 열무김치 담글 때 획기적인 발상으로 '갈아만든 배' 음료를 넣었는데 넣자마자

화학첨가제 투성인 음료수를 넣는 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후회했지만 요즘 별 탈 없이

시원한 맛에 아주 잘 먹고 있다.

이번 알타리 김치에도 뭔가 색다른 것을 넣어보고 싶었지만  알타리 무 자체의

고유한 맛을 믿어보고 싶었다.

별다른 장난(?) 안치고 기본 양념으로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풀이 너무 많았나보다.

물기 잘 빠진 다섯 단의 알타리 무들에게 양념을 쳐바르고도 많이 남았다.

풀만 많았던 것이 아닌, 젓갈과 고추가루도 많이 들어간 양념이라 남은 양념을 한 쪽에 잘 모셔두고

냉큼 옷을 갈아입고 시장으로 내 달려 큰 쪽파 한 단을 사와 미친듯이 까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타리 김치와 쪽파 김치를 담갔다. 조금씩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면서 이번 김치의 맛을 가늠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왜 김치를 담글 때 탄수화물을 넣는지 궁금해 하다가 이번에 알아보니

미생물(유산균)의 먹이감으로 쓰이기 위해서란다.

풀이 많으면 빨리 익고, 양념이 잘 붙어서 김치 색깔이 보기 좋단다.

오래 두고 먹을 김치에는 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런 소중한 정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번이 네 번째 알타리 김치인데 두번째 알타리가 왜 그렇게 계속 생무 같았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숙성기간도 상관 있겠지만 풀의 양하고도 관련이 있다 싶다.



소금에 절여서 만드는 김치를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혈압은 없지만 그래도 염분 섭취가 많으면 안 좋을 것 같은데

김치 없으면 밥 먹기가 힘들다. 포기김치를 주문하려다 포기했다.

상품평도 별로 좋지 않고 맛도 기대가 되지 않아서 남편한테 올 겨울엔 포기 김치 없어도 되겠냐고 하니

전혀 상관이 없단다.

이럴 땐 정말 누가 김장을 해서 선물로 주면 좋겠다.

친정엄마한테 얻어 먹을 상황도 아니도 시가쪽은 원체  결혼하면서부터 뭘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여담으로,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동네 언니는 지금까지 김치를 단 한 번도 담가보지 않았단다.

시가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매번 택배로 받아먹는데 거의 25년간이나 그리 하였단다.

매 해 이 맘 때 수십 포기의 김장김치는 기본이고 때때마다 나박김치, 동치미, 열무김치

알타리김치, 깍두기, 파김치, 갓김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여름에 금방 담가서 먹는 오이소박이까지 보내온다고 하니 사실 너무 부럽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부지런히 김치를 담가주면서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거...니 시부모 밥 해 먹기 귀찮아졌을 때 (나이 먹었을 때) 니가 밥 해주고 돌봐줘야하기 때문에 적금 드는거다.. 내가 꼭 타 먹을거니 그리 알아라"   ㅎㅎㅎ



그 언니는 김치 안 받아먹고 안 모시고 싶단다. 하지만  매번 오는 택배 반송할 수도 없고

얻어 먹은게 많으니 빼박이라고(빼도 박도 못한다고). 

시어머니의 요구사항이 무척 구체적이라고 한다.  아파트 같은 동 다른 층에 살거나,

같은 단지 내 앞동이나 옆동으로 이사갈테니 왔다 갔다하면서 밥 해 줬으면 좋겠다고 한단다.

같은 맥락에서 시어머니는 선물 공세도 많이 펴고 현금도 잘 준다고 한다.

그 시어머니 입장에는 정말 대단히 노후대책을 잘 세우고 있는 셈인데 과연 어찌될지...

그 언니가 나중에 비양심으로 모르쇠할지, 기브앤테이크 정신으로 받은 만큼 주는 삶을 살지.
 

석 달만에 돌아오는 나의 단 하루의 짧은 휴가는 두 종류의 김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잘 익어서 즐거운 밥상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라고,

다음 휴가 때는  꽃피는 봄에 연초록이 만발한 산에 꼭 가고 싶은데,

그 때도 왠지 깍두기를 만들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  새봄에는 꼭 봄 맞으러 산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