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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 데 안 낄 데쯤은 나도 알아


BY 만석 2019-11-10

낄 데 안 낄 데쯤은 나도 알아
 
오랜만에 오징어찌게를 끓였다. 영감이 좋아해서 끓였으나, 사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육류찌게보다 오징어찌게를 좋아한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육류를 넣어도 오징어를 넣어서 찌게를 잘 끓인다. 오늘은 영감만을 위한 오징어찌게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아래층 아들네 식구들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손녀딸아이 생각을 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다시마와 마른 새우로 육류를 만들어 건져낸 다음,  두툼하게 무를 썰어 넣는다. 고추장을 풀고, 오징어와 바지락조개를 넣고 가볍게 끓인다. 다음엔 버섯과 콩나물을 얹고 마늘과 파로 맛을 낸다. 불을 끄고 고추액기스와 후추를 약간 뿌리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식구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제 맛이 난다. 며느님들이 집에서 끓이면,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아들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맞장구를 친다.
 
“지지배배 찌르륵~♪♪”따뜻할 때 전하려고 서둘러서 전화를 건다.
“할머니!”대번에 할머니를 알아본다. 그렇겠지. 화면에 ‘할머니’라고 떴겠지.
“저녁 먹었니?”
“지금 짜장면 먹고 있어요.”
 
“왜 저녁에 짜장면을 먹어.”
“어머니. 얘가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요.”그새 에미가 전화를 받아서 답을 한다.
“무슨 일 있으세요?”왜 전화를 했느냐는 물음이겠다.
“아, 오징어찌게를 끓였기에 저녁 먹기 전에 갖다 주려고.”
 
며느님은  보이지 못할 나쁜 일을 몰래 하다가 들킨 양, 목소리가 움츠러든다.
“아. 그냥 내일 아침에 아버님이랑 잡수세요.”
“우리 먹을 것도 있지. 아침에 데워서 먹어도 되니까. 들어갈 때 갖고 가거라.”
“예. 그럴게요.”
 
김이 샌다. 찌개를 건네주고 만면에 희색을 띄우는 손녀딸아이를 보려다가 못 보게 되니 김이 샌다는 말이지. 축 늘어진 어깨로 식탁에 앉으니 영감이 묻는다.
“안 먹는데?”
“안 먹는 게 아니라, 지금 짜장면을 먹고 있대요.”심드렁하게 답을 한다.
 
나도 김이 새지만 손녀딸아이도 에미에게 걱정을 듣지 않았을까. 눈치도 없이 짜장면을 먹는다고 말했다고. 어제도 우리는 아들네 식구들을 불러서, 외식으로 샤브샤브를 먹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늘, 저희 식구들만 나가서 외식을 하다가 들킨 꼴이 되었으니. 공연히 전화를 했나 싶다.
그렇지만 어미야. 괜찮다. 우리는 ‘낄 데 안 낄 데’ 쯤은 아는 늙은이 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