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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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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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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죄송합니다.


BY 마가렛 2019-10-12

태풍때문인지 저녁날씨가 몹시도 을씨년스럽네요. 을씨년스럽다는 말을 좀처럼 쓰진 않는데
오늘저녁엔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아버님이 잠깐 1박2일 출타중이셨는데 처음에는 제가 휴가 받은 직장생인 줄 알았어요.
집에 계셔도 당신할 일만 하시고 잔소리는 하나도 안하시는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마음적으로
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나 봅니다.

아버님의 빈 방을 둘러보면서 옷걸이에 걸린 실내복을 세탁기에 넣으려 내리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좀 안되셨다는 기분이 드는거예요.
일찍 어머님이 세상을 뜨시고 혼자 생활하시는데 얼마나 깔끔하고 모든 일을 빈틈없이 하시는지
제가 특별히 신경쓸 일은 없어요. 식사가 제일 큰 일 중의 하나지만 그외에는 그닥 챙겨드리는 일도 없는데
아버님이 안계시는 방이 왜그리 쓸쓸해 보이는지  갑자기 콧등이 찡하면서
먼훗날 아버님이 돌아가신다면 제가 얼마나 슬프게 울까 싶어서 금방 눈물이 고였어요.

집에 계실 땐
괜시리 저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퉁퉁거릴 때도 있었는데
겨우 하루 비운 자리가 참 크게 와닿네요.
아마도 결혼해서 이제껏 함께 살았으니 더구나 어머님이 병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좀 딱하신 아버님이시죠. 아시는 분과 잠깐의 교제는 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고 하셔서
오래전에 헤어진 눈치였어요.

어제 저녁에 남편과 아들과 산책삼아 쇼핑몰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치킨을 주문하고 있는데
부재중 전화에 아버님이 뜨셔서 얼른 전화를 드렸어요.
오전에 전화를 드렸었는데 아마 잘 도착하셨다는 전화였다 싶어 전화통화를 했는데
모처럼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과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다고 기분좋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그런중에 옆에 계신 친구분이 저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다기에
조심스레 바꿔 주시라고 했어요.
아버님 친구분이 처음하시는 말씀이 대뜸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버님이 건강한 모습을 뵈니, 퍽 오래간만에 뵈었는데 여전히 건강잃지 않고 계셔서
다 며느님 덕분이란 말씀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어요.
사실 제가 착한 며느리 좋은며느리는 아니라는걸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보이지도 않는 사레질을 하면서 아버님이 워낙 소식하시고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그렇다고
제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까 계속 고맙다고 하시는데 정말 반성 많이 했어요.
마지못해 건성으로 하는 행동이 참 많았는데 말이죠.
아버님이 전화를 건네 받으시면서 끊은 줄 알고 우리 며느리 착하다는 말씀을 제가 듣고는
더 미안하고 울컥하더라구요.
아버님 죄송합니다. 좀더 챙겨드렸어야 되는데 말이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니 겨우 하루 비웠던 자리가 꽉 찬 느낌이예요.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