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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BY 마가렛 2019-08-16

세상을 살아가다가 세상과 하직할 때 우리는 그 시기를 알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모르고 살아간다.
오늘 돌아가신 분이 53세 형제분이신데 아직 중학교 아들이 있단다.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데 돌아가신 분도 불쌍하고
남아있는 가족도 참 안스럽고 생각만해도 불쌍하다.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갈까?

그러고보니 우리 시어머님이도 54세에 돌아가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곧바로 시댁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부터  어머님이 속이 거북하고
소화가 안된다고 하시면서 병원을 다니시다가 위암이란걸 알게 되었다.
위암3기라도 수술하고 치료만 잘하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어머님은 수술하시고 2년 만에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54세. 고생도 어느정도 끝났고 어른들 말씀이 살만한 나이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아버님은 어머님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셨다. 그 정성이 허무하다싶게
어머님은 먼 길을 떠나셨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이승과 하직하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참 허무했다.

아버님이 경상도 분이시라 장례식은 유교식으로 절차를 밟고
세 아들과 며느리인 나는 삼베옷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했다.
5월의 그날은 장미꽃도 만발했지만 앞마당의 화단에 빨갛게 핀 장미꽃이 슬픈표정을
하는 날이었다.
어머님은 유독 장미꽃을 좋아하셨다.
누워계셨을 때도 아버님이 화단의 장미꽃을 화병에 꽂아 어머님 머리 옆에 두곤 하셨다.
죽음이 내옆에서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무비카메라처럼 움직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님이 계셨던 자리에, 덩그마니 비어있는 자리가 아버님은 보기가 어려우셨는지
집을 내 놓으셨다며 이사가기를 원하셨다.
곳곳에 어머님의 손때가 묻어 있으니 뵐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앞서서 힘이 드셨나보다.
사람의 자리가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자리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며느리감을 데리고 왔을 때,
어머님은 정성껏 밥상을 차려 내가 함께 식사하기가 부담스러울까봐
남편 방에 따로 밥상을 차려주셨다.
손 끝도 야무지셔서 음식도 잘하시고 뜨개질도 잘하셔서 나에게 예쁜 쉐터도 짜 주셨다.
가끔 남편과 싸워서 내가 어머님께 고자질을 할 때면 항상 내편을 들어 주시곤 하셨는데...
딸이 없으셔서 나를 딸처럼 생각하고 잘 지내고 싶어하셨는데
죽음이 너무 빨리 어머님과 나 사이를 갈라 놓았다.

난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별 무서움이 없다.
누구나 세상을 떠나기에 살아가면서 잘 산다는게 어떤 삶인가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미니멀라이프에 많은 사람이 동참을 하고 있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 되려고 많이 노력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필요한 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해보았는지?
좀더 소중한 것에 촛점을 맞추고 싶다.
인생은 거대하게 살아 가는게 아니라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머님은 그때 철없는 내가 알려주셨다.

어느 형제님이 세상과 하직한 오늘, 나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분이시지만
 난 또한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