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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령의 추억


BY 정아네스 2019-08-13

2019. 6. 11.~ 2019. 6. 13. 태백, 고한, 사북, 정선, 영월여행
 
                               첫 발령의 추억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 중 하나는 담당 직원들이 직접 처리하기 힘든 고객민원을 해결하는 일이다. 역에서 표를 팔고, 고객 안내를 하는 일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담당 직원들은 스트레스도 많고, 크고 작은 민원도 빈번하다. 감정 노동자이긴 하지만 공기업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부당하고 억울한 경우에도 숨 한번 크게 들이쉬며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주, 야간 근무 때다. 매표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술 취한 고객이 매표창구 앞에서 횡설수설하여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근무 때마다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표창구 앞으로 갔다. 취객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 순간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아왔다. 다행히 잘 피해서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주위에 있던 직원도 나도 크게 놀랐다. 취객을 철도 경찰에게 인계하는 것으로 어수선한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난동을 부리는 고객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취객뿐 아니라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며칠 전에는 여객전무가 무표객이라며 젊은 남자고객 한명을 사무실로 데려 왔다. 표를 끊지 않고 열차를 탔는데 다시 안동으로 가야한다며 안동까지 가서 돈을 지불하겠다고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거였다. 우리말을 잘 하다가 갑자기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면서 대화의 흐름을 깨뜨리곤 했다. 전무도 해결 방법이 없어서 일단은 사무실로 데리고 온 듯 했다.

   전후 상황이나 말하는 태도로 보아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건들거리며 어이, 내가 안동 가서 돈 준 댔잖아. 내가 언제 돈 안준다고 했어?’하는데 덩치가 산만한 사람을 한 대 패고 싶었다. 일을 하며 정신 질환자를 대하는 최선은 적당히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에게 육체적 피해를 가하지 않기를 기대하며. 날이 갈수록 나 자신을 보호하며 업무 처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많아진다. 불행한 일이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지만 또 사람에 의해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여행은 업무 중 만났던 사람들과의 불쾌한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다. 램프 속의 지니가 이번 여행에서도 놀라운 만남을 선물하리라 기대하며 열차에 오른다. 이번에는 나의 첫 발령지였던 태백역을 비롯해 고한, 사북, 정선, 영월 등지를 둘러볼 생각이다.

   태백역에서 내려 매표실 쪽으로 걸어갔다. 평일인데도 창구 앞에는 줄 서 있는 고객들이 많다. 199812, 나는 강원도로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충북, 경북, 강원본부로 나누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영주지방철도청이 충북, 강원, 경북을 아우르는 거대한 조직이었다. 철암이 관리역이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신규자 몇 명은 일단 철암으로 가서 소속역으로 다시 발령을 받게 되어 있었다.

   철암역의 첫인상은 암울했다. 검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철암역 건물을 보자 석탄의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원래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듯 했지만 세월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석탄가루 때문인지 역사 건물은 붉다기보다 검은 빛에 가까웠다. 어느 역으로 가게 될까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동기들끼리 작은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가자마자 다른 소속으로 재배치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일주일 후 태백역으로 발령을 받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발령이 늦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원인은 나한테 있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태백역에서 받으려 하지 않아 다른 남자 동기들의 발령까지 늦어진 거였다. 20년 전에는 역무원이 아니라 수송원으로 신규직원을 뽑았다. 사실 수송원이 무엇을 하는 건지 정확히 모른 채 무작정 지원을 하고 시험을 봤는데 알고 보니 기관차와 화차의 연결· 분리 작업을 담당하는, 육체적 노동이 많은 업무였다.

   발령을 받고도 수송업무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남자라고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가 수송을 지원했다는 자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남자 직원들처럼 수송 업무를 배우겠다고 담당 계장님께 내 의견을 말씀드렸지만 나는 매표 업무와 전화 안내를 맡게 되었다.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는 나에게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를 썼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매표실 업무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나는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는 핑계를 대며 업무 익히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태백역은 관광객들이 유난히 많았다. 겨울이면 태백산을 찾는 사람들로 더 붐볐고, 관광열차 운행도 많았다. 표를 팔면서 두 대의 안내전화도 받아야 했기에 매표실 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야간 근무 때 나도 모르게 졸다가 고객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일, 술 마신 고객이 창구 앞에서 술주정 하는 게 탐탁찮아서 쓴 소리 했다가 호되게 당한 일, 너무 힘들어서 계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스쳐간다.

   얼마 전 본사 교육에서 태백역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기 한명을 만났는데 놀라운 소리를 했다. 내가 근무하다가 무전기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무전기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란 인근역 직원이 연락오고 난리가 났었더란다. 철도에서 무전기는 업무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신 수단이기 때문에 각 상황에 맞는 무선교신 요령이 정해져있다. 내가 그런 무전기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니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동기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둘기호 승차권을 파는데 고객이 상행 승차권을 달라고 했는데 내가 운임이 같은 하행 승차권을 주며 그냥 그걸로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선배들이 승차권을 그렇게 팔면 안 된다고 하니까 내가 오히려 돈이 똑같은데 뭐 어떠냐고 큰소리를 치더란다. 이 사건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동기 앞에서 내가 진짜 그랬나보다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옛 일을 이야기하며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소위 말하는 꼴통이 바로 나였다. 이제껏 직장에 몸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태백역 대합실에 앉아 있으니 새삼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소리 높여 싸우던 철없는 신규자에서 지금은 신규 직원들이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선배의 위치에 섰다. 태백역 계단을 내려오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앞으로는 다른 직원들을 좀 더 배려하는 직장 상사이자 선배가 되겠다고, 남은 직장 생활을 불평이나 불만으로 채우는 대신 행복과 사랑으로 채워나가겠다고. 미래의 어느 날, 다시 태백역에 섰을 때 후회 없는 직장생활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태백역을 나와 시내 쪽을 향해 걷는다. 낙동강 발원지로 알려진 황지연못을 찾았다. 황지연못은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태백역에 근무하며 가끔씩 찾았던 곳이다. 연못의 물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투명했다. 맑은 물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물의 순수한 영혼을 닮아가는 느낌이다. 일상 속에서 종종걸음 치다가 잠시나마 이렇게 멈추어 서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은 그 감흥이 남다르다.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한다.

   황지연못에서 태백의 실버스타 총출동이라는 작은 문화 공연 리허설이 한창이다. 어르신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자리였다. 하모니카 연주, 난타 공연, 농악까지 구경하며 나는 어떤 악기를 배우는 게 좋을까 고민해본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공연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텐데 실천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리허설도 열정적으로 하는 무대 위의 어르신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통리역으로 향한다. 영주에서 태백까지 열차로 출퇴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영주에서 새벽 550분에 출발하는 영동선 비둘기호 열차가 있었다. 영주에서 강원도 철암, 통리, 동백산, 태백으로 출퇴근 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직원들끼리는 통근열차라고도 불렀다. 530분에 일어나 대충 얼굴에 물만 적시고는 부리나케 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올라서면 겉옷을 덮고 몸을 웅크린 채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졸기에 바빴다.

    기차가 철암역에 도착할 때쯤 일어나 대충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졌다. 열차가 태백역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통리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했다. 기차가 올 시간이 되면 통리역 앞에는 늘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돈을 아끼기 위해 두세 명이 어울려 택시를 탔다. 겨울에는 그야말로 새벽별을 보며 출근을 해야 했기에 동기들끼리 새벽별 보기 운동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경북에서 강원도까지 2시간이 넘는 힘겨웠던 출퇴근의 기억조차 지금은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통리역 대합실 문을 열고 역 구내로 들어서니 줄지어선 레일바이크의 모습이 보인다. 예전에는 제법 큰 역이었는데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관광지화 되어 사람들이 아직까지 오가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통리역 근처에 있는 유명한 칼국수 집에서 멸치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행복감에 젖는다. 큰 애 임신했을 때도 이 집 칼국수를 많이 먹었다. 통리역의 광경은 많이 변했지만 칼국수 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칼칼한 김치 맛도 여전하고, 멸치 국물의 깊은 맛과 숭덩숭덩 썰어 넣은 감자도 그대로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내 기억속의 맛 그대로, 변하지 않는 멸치 칼국수 한 그릇을 나에게 내어 준 그 집이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