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커서 엄마와 함께 보려고 예매를 하다보니
아뿔싸 그 영화관은 주차가 복잡해서 주변에 있는 주차장 건물에 주차를 하고
영화관까지 가야한다는 정보에 취소버튼을 눌렀다.
엄마가 연세가 있어서 이 영화를 이해하시려나하는 우려도 조금 있었지만
엄마와의 데이트라는 목적에 망설이지 않았는데 많이 걷기가 힘들고
지팡이에 의지하는 엄마에게는 조금 무리다 싶었다.
남편은 친구부부가 작은 농사를 짓는, 그곳으로 봉사를 떠나며 함께 가자는데
난 별로 내키지 않아 나홀로 영화관에 갔다.
모두가 기대에 들뜬 얼굴로 영화가 상영하기를 기다리는 중에
옆에 앉은 커플이 내머리보다 더 큰 팝콘을 먹다가 엎질러 알바생에게 도움을 청하고
난 자리를 비켜주고 잠깐의 해프닝으로 이어지는 나의 생각은
왜 영화관에서는 팝콘을 먹어야 되는걸까?
그러면 영화가 더 재미있을까?
외국에서도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볼까?
물론 기호식품이니 뭐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작은 피해와 솔직히 느끼한 버터향의
팝콘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에겐 작은 곤욕이다.
난 커피하나 생수하나가 영화관에서의 필수품이다.
기생충.
난 이영화를 보면서 엣날 주택가에 살았을 때
우리집에 세들어 사는 반지하에 사는 엄마네가 기억난다.
부지런한 그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이부자리를 우리 층의 돌 난간에 널었다.
늘 변함없이 묵묵히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이들의 옷도 필요이상으로 자주 빨고, 샐내화, 운동화는 주말마다 꼭 빨아서
돌 난간 옆으로 조르륵 세워서 햇볕에 보슬보슬 말렸다.
햇살 좋은 날엔 그림이 되는 신발들의 행진..
참 부지런하고 성격좋은 그엄마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하고 이웃을 대했으며
간간히 맛난 음식을 하면 우리집에 가져오곤 하는 정이 많은 엄마였다.
알뜰살뜰하게 살던 그엄마는 인천으로 아파트를 매매해서 이사를 갔다.
해피앤딩이라 나도 기분이 참 좋았던 그날이 생생하다.
영화만큼 무례하게 허접한 반지하는 아니었지만
그엄마도 아이들 키우며 살아가기에 환경이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리 매일 소독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을게다.
빈부의 차이는 해소되는게 아닐까.
너무 안온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부잣집과
반지하에서 바퀴벌레와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가족과의 그 갭은 엄청나다.
어쩜 올라갈수도 없는 나무를 올라갔기에 그렇게 불행한 일이,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기에 계획대로 제대로 되는게 없기에 그런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반지하에서 사는 사람은 따사로운 햇볕아래 불어오는 미풍을 맛보며
단 하루라도 모든 근심걱정을 묻어버리고 그렇게 살고싶은 욕망도 있겠다.
스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영화는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각자에게 와닿는 메세지가 많이 다를것 같다.
한마디의 대사가 싸하게 와닿고,
장면에 걸맞게 고전음악이 흐르고,
한 장면마다 감독의 고뇌가 많이 느껴지는 영화.
계획이 뭐냐고?
무계획으로 사는게 가장 안전하다고?
어쩜 우린 오늘도 영화의 대사처럼 계획과 무계획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