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자유부인
젊은 사람들에게 타박을 들을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내 나름으로의 ‘이 시대를 사는 자유부인’을 좀 말해 보려고 한다. 뭐, 나에게 심오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주위에 보이는 얘기를 하자 하니 자연스럽게 딸아이의 친구들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이 보잘 것 없는 내 작은 안목에 무슨 주재 넘는 설전을 하겠는가. 그저 바라보고 느낀 이야기나 해야겠지.
내 막내 딸아이가 내놓으라 하는 서울 사대문 안의 대학을 다니며 흔히 말하는 삼총사를 결성했겠다?! 끼리끼리 만난다더니 동그란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셋. 오밀조밀 생김새도 닮았거니와, 하고 다니는 스타일이며 노는 물까지 다른 구석을 찾지 못하겠더라는 말씀이야. 밤낮 몰려다니며 지지배배 지지배배 풍월(?)을 엮더니 각자가 입맛대로 결혼을 했겠다?!
뭐 그리 대단한 물색을 하지도 않더니만, 제법 제 앞가림을 참하게 할 줄 아는 신랑들을 만났지. 하나는 대기업의 현장 감독으로 또 한 녀석은 재택크를 그럴싸하게 꾸려나가는 신랑을 만났다는 거 아니겠어. 그 와중에 내 딸년은 유난스럽게 늦은 결혼을 하며 다섯 살이나 연하인 신랑을 만난 건, 좀 특별한 케이스이기는 했지 ㅎㅎㅎ. 게 중에는 능력 있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았다지?
아무튼 이렇게 가정을 꾸린 그녀들의 생활이 이 나이의 내가 보기에는 도를 넘는 자유부인들이더라는 말씀이지. 손가락 걸어 맹세라도 한 듯이,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를 갖지 않는단다. 또 그런 그녀들의 의사를 정중히 받아들이는 시댁들이어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결혼생활에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더라는 말씀이야. 그야말로 새 시대의 자유부인 답지 않았겠어?
오늘도 세 여자가 모임을 갖는 다는 정보를 얻어서, 이 늙은이의 자판(字板)을 열게 했다는 거 아냐. 다른 그녀들은 모르겠고, 또 안들 내 상관할 바 아니니 내 딸년의 이야기나 거론하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이야기도 담게 되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여 누구라도 들어와서 내 글을 읽는다면 비껴 나갈 구석은 만들어야 하니, 익명으로 해 두자 ㅋㅋㅋ.
오늘이 개천절. 이 거룩한 날이 공휴일이었으니, 보나마다 세 남자가 휴일인 것쯤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딸년들이 왜 하필이면 이런 날 모임을 갖느냐는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세 여자 모두는 전업주부라지? 그렇다면 평일의 조용한 날, 남편들 출근 시키고 오손도손 만나도 족하지 아니 하겠는가. 구태여 남편의 손으로 점심을 챙겨먹게 해야 옳았겠느냐는 말씀이지.
물론 저들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겠지. 용납이 될만한 사연도 있었겠고 말이다. 풍문에 듣기로는 여간 야무지고 영악한 살림꾼들이 아니라 하니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모처럼의 휴일을 .... 그리 아니해도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아, 이건 아들을 둔 시어미로의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딸도 둘이나 둔 어미로서도 그녀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조금은 지나친 자유를 부추겼구나 하는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세 남자가 이 사실을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였다면 가히 내 생각이 잘 못 된 것일까. 그 와중에 내 사위는 손수 운전을 해서 모셔다(?)드리겠다고까지 했다 하니, 사돈이 들었으면 가관이라 하지 않았으려나. 몸이 시원찮은 제 댁을 생각해서 그리 했다면 허세는 아니었을 테고 (아니. 평소의 내 사위를 보건데 허세를 떨 위인은 아니지).
그렇다면 내 사위가 이 시대 남자들의 표준이라는 말이지? 나는 여지것 내 사위가 ‘특별한 위인’쯤 되는 줄 알았구먼. 보통의 남자들이 모두 내 사위랑 동일하다면,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아낙들은 모두 ‘자유부인’이로세. 1960년대, 캬바레에서 부르스를 당기고 지르박을 밟던 자유부인들과는 또 다른 면모가 있구나 싶기도 하다. 휴~. 나는 오늘도 내가, 내가 변해야 한다는 이유를 터득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