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친정을 방문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가주 친정에 가는 편이라 이번에도 죽이라도 준비해서 갈까 싶었는데
엄마가 아버지는 아무것도 못드시니 그냥 오라고 하셔서 냉장고에 숨어있는 두릅만 조금 가지고 갔다.
친정주변엔 특히 나무가 많은데, 모과나무와 목련, 동백꽃등이 많은데 동백은 거의 졌고 모과나무는 예쁜 꽃이 하늘을 향해
춤추고 있었다.
안방에 누워계시는 아버지의 등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앙상하게 굽어진 등이며, 나무껍질처럼 푸석하고 허옇고 마른 종아리를 보니
그 젊었을 때 동네를 주름잡고 미남소리 듣던 아버지와 오버랩이 되어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내가 큰딸 왔다고 주무시는 아버지께 인사드리니 눈을 껌뻑거리며 눈을 뜨시고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은 생기를 잃으신지 오래고 그냥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하셨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래도 아버지 통장을 정리하는게 낫겠다며 함께 은행을 가자고 하시는데
해약은 그리쉽지 않고 본인 없이는 해약이 안되는 걸로 알고 있기에 내가 알아보기로했다.
우선 아버지께 저금을 해약하실 생각이 있으시냐고 여쭈었더니
처음엔 무슨 소린가 하시는 눈으로 쳐다보시더니 몇 번 말씀을 드리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은행까지 가지를 못하신다.
겨우 부축여서 몇 발자국 걷는게 고작인데 거기까지는 무리다.
우선 은행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무조건 본인이 와야 된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정 힘들면 차라리 돌아가신 다음에 찾는게
어떠냐고 되묻는데 우리큰집 큰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통장에 돈을 정리 안 하셔서 형제들끼리
서로 얼굴 붉힌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건 안되겠다 싶어
"예금주가 이렇게 거동하기 힘들어 방에서 거실까지도 움직이지 못하는데
혹시 은행에서 방문해 주실 수 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책임자에게 알아보고 연락을 준단다.
다시 연락이 와서는 방문이 가능하다며 5시가 넘어서 방문할 수 있는데 괜찮냐고 묻길래
혹시 그전에는 힘드냐고 다시 물으니 얼마후에 또 연락이 와서 조금 후에 방문한단다.
예금주가 할 일은 본인 이름만 써 주시면 되는데 그정도는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아버지께 큰소리로 여쭈어보니 끄덕거리신다.
엄마말씀이 아버지가 목돈을 예금했는데 나중에 돌아가실 때 남동생에게 준다고 하셨단다.
또 적금하나는 조카들에게 주려고 매달 붓는 적금인데 그건 나중에라도 동생이나 올케가 찾을 수 있게
사전에 조치를 취해 놨단다.
내가 알기론 우리 아버지가 조카들 대학 등록금도 미리 준비해서 준걸로 아는데
이렇게까지 당신 친손주들을 위해 따박따박 적금까지 들고 계실 줄이야...
갑자기 그러면 안되는데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츨가외인이라고 아무것도 받는게 없구나.
새로 이사올 때 아버지가 갖고 계셨던 작은집도 처분해서 아파트를 동생이름으로 해주시고
중간중간에 올케에게 제법 몫돈을 건네준 것도 내가 알고있다.
물론 우리 딸들도 알게모르게 돈은 받았지만 돈에 욕심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내가 지금
현실로 느끼고 있는 시점이 조금 거슬리고 꽤씸했지만 그래도 큰딸인데 역시 아들이 최고다라는 생각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싶다가도 조금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모님 도움 받아야할 형편도 아닌데 이런마음을 가지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조금 섭섭했다.
큰딸로서 시집가기 전에 나름대로 집에 많은 보탬을 준 나란걸 엄마,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으실텐데...
갑자기 집으로 가고싶었다.
은행직원이 어련히 잘알아서 서류 갖고 와서 싸인 받고 가겠지 싶어 저녁을 핑께로 엄마와 인사를 나누었다.
저녁때 전화를 드리니 전화를 안 받으셔서 그냥 다음날에 전화를 드렸더니
은행에서 왔다 갔다며 엄마가 은행에 가시면 된단다.
그러면 여동생이 곧 방문할 때 함께 가시라고 햇더니 엄마는 기어코 나와 가고싶으시단다..
며칠 후에 엄마와 함께 은행을 방문하자고 했다.
그래..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시니 기꺼이 그리해드려야지..
그때쯤이면 나의 마음도 정리가 되어 온화해지겠지.....아니 마음의 정리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