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마누라
“얼마예요?”
“십만….”
“헉. 에구. 두 번에 나누어 주세요.”
약값이 생각보다 많다. 약국의 여 약사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알아들었다는 뜻이겠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할아버지는 아뭇소리 않으시는데 그냥 미안해서 말이지.”
“할아버지도 약 타 가실 때는 한 보따리씩 가져가지는데….”
“할아버지 약은 괜찮은데…. 말이 없으시니 더 미안하지.”
“괸히 할머니 혼자서 그러셔.”
그랬다. 생전에 말이 없는 영감인데 약값이 많이 나왔다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약값이 많이 나오면 영감에게 미안하다.
‘남의 마누라는 약 안 먹고도 잘 살아주는데….’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 손으로 영감의 약을 아무리 많이 받아 안아도 그건 괜찮다.
나는 못 난 마누란가?
“아닌 말로, 할머니는 약을 안 자신다 해도 보약이라도 드셔야 해요. 그동안 자제분들 잘 키워놓으셨잖아요. 그리고 가게 하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구요.”
오랫동안 한 곳의 약사로 있더니, 동네 집안 사정을 눈으로 본 듯 말한다.
“어떻게 알아?”
“한국 엄마들 다 그러시죠. 나 먹을 것 못 먹고 나 입을 것 못 입고 자식들 기르셨잫아요.”
“약이 육 개월치라 약값이 많이 나왔어요.” 집에 돌아오자, 묻지도 않는 말에 나는 장황한 설명을 하며, 약 보따지를 영감에게 내밀어 보인다. 영감은 말 없이 ‘누가 뭐래?’하는 표정이다.
“그래서 두 번에 나누었어요.”역시 ‘누가 뭐래냐구’하는 식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뭐라고 말을 좀 해야지.”
“아니. 누가 들으면…. 공연히 말을 만들어서 왜 없는 걱정을 하나.”
따지고 보면 그렇겠다. 그래도 나처럼 약을 보따리로 사다 나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지 않다. 약을 먹을 일이 없이 살아주는 마누라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이지. 시장가는 길가, 노점의 아주머니들처럼 이 나이에도 경제활동을 하는 어부인(?)이라면 더 좋지 않겠어?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서 파지를 줍는다는 ‘꼬마할머니’도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약보따리만 사다 나르는 마누라가 고울 리가 있겠는가 싶다. 여보~. 아니 그러하신가?
이럴 땐 차라리 ‘그러게…’라는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래도 저래도 말이 없으니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설마, 설마 ‘그러게 말이야.’ 하는 마음은 아니겠지. 나는 참 못났다. 왜 이런 일로 고심을 하느냐는 말이지. ‘어때!’하는 뱃장을 좀 부려 볼만도 한데 말씀이야. 아서라. 이건 뱃장을 부릴만한 일이 아니다. 남보다 많은 량의 약을 먹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뱃장을 부리랴. 필요한 때 필요한 약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이도 못하면 서러워서 어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