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라는 이유로
“엄마. 뭐하슈?”
큰딸 아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지난밤에 늦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뭐하누. 옴만 또 잠이 안 와서리….”라고 어제 한 밤중에 보냈던, 문자의 답이 이제야 온 게다.
“엄마가 이제쯤 잠이 드셨나 하고 바로 답 못드렸슈. 그러구는 좀 주무셨수?”
깊은 밤에 잠은 오지 않고 시각을 보니 미국은 오후 시각인 지라 문자를 넣었었다. 그러나 문자를 확인한 것은 두어 시간 지난 뒤라서, 혹 어미가 잠이 들지 않았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 시각이 오전 11시 30분. 그러니까 큰아이가 사는 워싱턴은 오후 10시 30분. 딸이가 저녁 강의를 마치고 들어왔을 터이니, 우리가 노닥거리기는 안성맞춤인 시각이다. 초저녁엔 미국의 다른 주로 유학을 간, 내게는 외손녀 딸아이들과 모녀가 대화하는 시간이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의 대화는 시간적으로 어렵다. 자칫하면 바쁜 딸아이의 잠을 망칠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딸아이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엄마. 우리가 모아서 엄마한테 보내드리는 용돈 있잖우.”
“….”
“그거 나만 일 년치 한꺼번에 드리면 안 될까요?”
“….”
염치는 없지만, 나는 사 남매에게서 달달이 일정금액의 용돈을 받아쓰고 있다. 그걸 한꺼번에 보내주겠다는 소리다.
“조금 송금하거나 많이 송금하거나 송금료는 똑 같아요. 그래서 달달이 드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거든요. 그래서….”
“한꺼번에 다 주면 한 번에 다 닦아 쓰고 말 걸?! 하하하.”
“보림이 아빠한테 한꺼번에 한국으로 보낼 테니 네가 달달이 드릴 때 갈라 넣어라 했더니, 걔도 한 번에 제가 다 쓰게 될까봐 걱정 하더라구요 호호호.”
“그러게 이젠 그만 둬라.”
“그만 두는 건 안 되구요.”
“어떻게 살게 되겠지 굶기야 하겠냐.”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 사정이 그럴 형편이 아니질 않은가. 영감도 나도 수입이 없으니 말이지. 모아 둔 것도 없고. 아이들도 우리의 사정을 감지했는지 영감이 사무실을 접자, 큰딸아이가 제안을 했단다. 그래서 우리 내외의 용돈을 아이들이 모아서 보내오고 있다. 그걸 큰딸아이가 한꺼번에 보내겠다는 게다. 끝까지 손사래를 치면 거금의 송금료가 들어도 이대로 보내 올 것이 뻔하다. 동생들과 한 약속을 먼저 그만 둘 아이가 아니질 않은가.
사실을 말하자면 큰딸도 시방 아이들 교육비가 적지 않게 든다. 큰 외손녀딸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외손녀 딸아이도 명성과 교육비가 만만찮다는 H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거기에다가 친정부모의 용돈까지를 얹어 주었으니 어미로서 면목이 없다. 아마 이럴 때면 장녀로서의 입지가 부담스럽겠다. 어렸을 때도 그녀는 가끔 그랬지.
“엄마. 나도 언니가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